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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좋아하는 색에 대해 쓰라고 한다면 당연히 보라색을 고를 것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상징하는 색이라 언제 어디서든 보라색만 보면 눈길을 돌렸으니까. 하지만 깊게 고민을 할수록 '무언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여름, 대학교 종강 이후 오랜만에 전시회를 찾아갔을 때였다. 푹푹 찌는 여름의 더위를 뚫고 1시간 가까이 지하철에 몸을 실어 도착한 곳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초록을 마주할 수 있었다.

<Towards>라는 전시회 이름과 간단한 설명이 적힌 팸플릿을 들고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지는 않은 공간이었지만 곳곳에 걸린 그림들은 시선을 머물게 하기 충분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나뭇잎의 줄기가 가득한 그림이었다. 마치 거대해진 식물을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넓은 벽면을 꽉 채운 그림이었다. 나보다 큰 캔버스에 각기 다른 녹색과 하늘,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아무도 모르는 숲의 비밀공간을 찾아낸 것만 같았다. 작가님이 바라보는 자연은 이런 모습이구나, 감탄하며 한참을 그 그림 앞에 머물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Towards
 Towards
ⓒ 한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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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미술작품들을 테마로 전시를 하던 체험관을 방문했을 때도 그 속에서 홀린듯이 클로드 모네의 <흰색 수련 연못>과 <엡트 강가의 포플러>, <수련> 앞에 멈춰섰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찾은 전시회에서도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오래 감상했던 그림에는 항상 싱그러운 녹빛이 가득했다. 인간과는 먼, 자연과는 가까운 태초의 색. 그래서일까, 내가 찾는 그림 속에서 숨쉬는 생명은 오직 동물과 식물 뿐이었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초록빛의 온전한 자연을 담은 그림을 좋아했던 것이다. 

사진 속에 담아내던 초록도 마찬가지였다. 멋있다, 아름답다라는 감상과 함께 촬영 버튼을 누른 곳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 속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흐르는 강과 나무, 풀숲, 들꽃이 전부였으니까.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녹빛의 자연에는 인간의 개입이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과 멀어지고 싶은 나의 무의식이 반영된 취향이다.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회와 멀리 떨어진 것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자연과 가까워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색이었던 초록이 어느새 나의 일상 속에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으니.

책을 읽다 무심코 시선을 돌린 곳에 놓여있던 책갈피 속에 초록과 자주 사용하는 핸드폰에 붙인 그립톡 속에 갇힌 초록, 꽤 오랜 시간 벽면을 채워주던 액자 속에 담긴 초록, 햇빛을 가려주던 커튼에 그려진 초록 등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녹빛에 물든 삶을 살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이 싫어질 때면 어김없이 초록을 찾아간다. 다시금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녹색이 가득한 산책로를 걸으며 치열하게 잎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들을 본다.

자연 역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그 모습이 마냥 추악하지만은 않다. 머리 아픈 뉴스와 기사로 보는 추악함만 남은 인간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자연을, 초록을 보고 있으면 눈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닐까.
 
청계천 어딘가
 청계천 어딘가
ⓒ 한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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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퍼진 휘황찬란한 색조들 사이에서 녹색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싱그러움을 잃지 않는 초록일테니.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초록, #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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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흘러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20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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