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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의 며칠을 끝으로 북유럽 여행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동유럽으로 향할 차례입니다. 여행 경로를 두고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갈 수도 있었겠죠. 탈린을 거쳐 발트 3국을 여행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발트 3국을 여행한다면 그 다음으로 갈 곳이 막막했습니다. 전쟁은 참 많은 길을 막아세웠습니다. 결국 이번에는 비행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단스크로 향하는 비행기
 그단스크로 향하는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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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향한 곳은 폴란드의 항구도시, 그단스크입니다. 북유럽을 떠나 중부 유럽의 역사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로 향하는 저녁의 골목에서만 봐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오래된 시청, 노란 가로등, 그 아래를 다니는 트램. 길목마다 있던 거대한 성당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단스크는 깊은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중세 시절에는 포메라니아 공국의 중심지였죠. 당시에는 폴란드 북부 지역을 포메라니아라고 불렀습니다. 포메라니아 지역은 넓은 평원을 끼고 있습니다. 덕분에 높은 농업 생산력을 가진 부유한 지역이었죠.

13세기 그단스크는 대규모 항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중부 유럽의 농산물이 북해로 수출되는 중요한 통로였죠. 이 항구도시의 부를 두고 폴란드와 독일은 자주 분쟁을 벌였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을 폴란드어인 '그단스크'가 아니라, 독일어인 '단치히'로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단스크 시내
 그단스크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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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메라니아 공국을 다스리던 공작 가문은 1637년 후사 없이 단절되었습니다. 포메른 지역은 때로 폴란드에, 때로 독일에 속하게 되었죠. 자유로운 항구 도시였던 그단스크는 독일에도, 폴란드에도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근대 독일을 결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프로이센도 이 인근에서 성장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단스크 옆의 쾨니히스베르그가 프로이센의 중심지였죠. 프로이센은 쾨니히스베르그를 시작으로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국력을 과시했습니다. 물론 그단스크는 그 첫 번째 희생양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독일 제국의 멸망을 함께한 도시가 또 그단스크였습니다. 독일 제국이 1차대전에서 패전했을 때, 프로이센의 발상지였던 쾨니히스베르그와 단치히는 러시아에 병합됐습니다. 독일 제국은 곧 멸망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죠.
 
그단스크 중앙역
 그단스크 중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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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후 조약에 따라 쾨니히스베르그는 다시 독일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독일로서는 쾨니히스베르그라는 상징적인 도시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쾨니히스베르그와 독일 본토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쾨니히스베르그로 향하려면 반드시 폴란드를 거쳐야 하는 형태였습니다.

독일이 패전국이 되면서, 그단스크에 폴란드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단스크를 폴란드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에는 독일이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결국 그단스크는 '단치히 자유시'라는 독립 도시가 되었습니다.

단치히 자유시에서는 독자적인 화폐와 국기, 헌법과 의회가 존재했죠. 폴란드 영토에서는 '폴란드 회랑'이라고 불리는 아주 좁은 통로만이 바다로 연결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독일은 단치히 자유시에 끝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결국 1933년, 단치히 의회를 나치당이 장악합니다. 나치가 장악한 단치히에서는 폴란드인과 폴란드어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폴란드인 학교가 폐교되었고, 폴란드어 신문도 폐간되었죠.

독일의 요구는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1939년 독일은 단치히를 독일에 합병하고, 단치히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고속도로는 독일이 관리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죠.

폴란드는 물론 이를 거부했습니다. 독일은 폴란드가 자신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류사 최대의 비극이었던 세계 2차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단치히는 다시 한 번, 독일 팽창의 첫 번째 목표물이 된 셈이었습니다.
 
그단스크의 크레인
 그단스크의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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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영토는 크게 재편되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그는 러시아의 월경지가 되어 칼리닌그라드라 불리게 되었죠. 그단스크는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단스크는 항구도시답게 조선업 등의 중공업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해 나갔죠.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단스크는 여전히 자유와 변화의 선봉에 선 도시였습니다. 1970년에는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 문제로 시위가 발생해, 결국 서기장이었던 고무우카가 실각하기도 했죠.

1980년에는 레흐 바웬샤가 이끄는 자유 노동조합이 그단스크에서 결성되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에는 물론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모두 정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제 노동조합에 불과했습니다.

레흐 바웬샤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익을 위해 모이는 자유로운 노동조합을 구상했습니다.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의 탄생이었습니다. 폴란드 '자유노조'나 '연대노조'라 불리는 단체였죠. 그단스크의 항구 노동자들은 이 연대노조 구성의 주역이었습니다.
 
 연대노조를 기념하는 꽃
  연대노조를 기념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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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협상 끝에 연대노조는 합법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1981년 폴란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죠. 노동자 5천여 명을 포함해 그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온 인사들 대부분이 체포되었습니다. 레흐 바웬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하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폴란드 국민 대부분이 믿고 있는 가톨릭이 반정부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죠. 폴란드인으로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2세도 자유와 민주를 위한 목소리에 몇 번이나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단스크 곳곳에는 여전히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찾아볼 수 있더군요.

결국 1989년 전국적인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가톨릭의 중재로 공산당, 정부, 노동조합, 지식인 등으로 이루어진 55인 원탁회의가 구성되었죠. 이 회의는 자유 노동조합을 다시 합법화하고, 직접선거를 실시하는 등의 개혁안을 내놓았습니다.

얼마 뒤 실시된 자유선거에서는 연대노조 세력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직접선거로 치러진 100석의 상원의석 중 99석을 차지했죠. 하원에서는 전체 460석 중 직접선거를 치른 161석을 모두 연대노조가 차지했습니다.

그렇게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가 총리 자리에 올랐습니다. 옛 공산권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공산당이 아닌 세력이 이끄는 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연대노조의 지도자 레흐 바웬샤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폴란드의 사회주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단스크의 노동운동 기념탑
 그단스크의 노동운동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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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출발한 도시가 바로 그단스크였습니다. 그단스크라는 자유로운 항구 도시는, 연대를 통해 만들어 낸 권위주의 붕괴의 선봉이었죠.

그단스크의 항구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여러 크레인이 아직 작동하고 있고, 그 사이로 연대노조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자유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도착한 그단스크 공항의 이름도 '레흐 바웬샤 공항'이었습니다.

때로 자유와 연대가 서로 반대편에 위치한 가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각자의 의지를 원하는 대로 펼치는 자유와, 서로의 의지를 존중하고 한 데 뭉치는 연대는 다른 성질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단스크의 노동자들에게는 달랐습니다. 그단스크는 자유의 도시였고, 그렇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연대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유에 기반한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권위주의적 정부라는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때로 한 명의 개인은 너무도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늘 폭력과 침탈을 가장 먼저 맞아야 했던 그단스크에서도 그것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일 제국도, 나치도, 폴란드의 권위주의 정부까지도 그단스크의 시민들은 겪어냈습니다. 그단스크의 시민들은 서로를 위한 연대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승리를 증명해냈습니다. 자유에 기반한 연대의 힘이, 이 도시의 역사에는 새겨져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폴란드, #그단스크, #연대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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