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8월 말, 전국 역사학도들을 대상으로 전개했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서명운동'을 기억하십니까? 당시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면서 455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그 결과를 국방부에 직접 전달했었습니다(관련 기사 : https://omn.kr/25f3m ).

해당 사실을 보도한 기사가 나간 뒤 추가 서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결과 누적 서명인원 952명(9월 5일 0시 기준)을 달성했습니다. 해당 명단은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와 육사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애초에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들이 '한민족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도 매일 진행해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3년 9월 11일 용산 대통령실(국방부) 앞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촉구 및 한민족 100만인 서명운동 참여 독려'를 목적으로 전개했던 1인 시위.
 2023년 9월 11일 용산 대통령실(국방부) 앞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촉구 및 한민족 100만인 서명운동 참여 독려'를 목적으로 전개했던 1인 시위.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전국 역사학도들의 공동성명을 준비하다

지난 13일 역사학계 51개 단체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역사단체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 것을 보고 무척 고무됐습니다. 선배 역사학자들이 목소리를 냈는데, 젊은 역사학도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에는 역사학도들이 모여 공동 성명을 발표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부랴부랴 성명서를 작성한 뒤, 전국 대학(해외 대학 포함)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연명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성명은 한국광복군 창설 83주년이 되는 9월 17일에 맞춰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전공한 지인들에게 일일이 참여와 공유를 부탁했고, 그들 역시 발 벗고 나서준 덕분에 전국 여러 대학의 역사학도들이 하나 둘 명단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 41개 대학 사학과 사무실에 이메일을 돌려 학과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참여를 독려해달라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학교에서는 적극적인 참여로 답을 대신해왔습니다. '경희대 사학과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비대위 이름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습니다.

한 역사학도의 질문

"과연 뜻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세상이 바뀔 수 있는가?"

공동성명 발표를 준비하던 와중에 어떤 역사학도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성명운동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1차 서명운동과 1인 시위 등을 전개해오는 과정에서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 역시 '과연 이런다고 독립이 올까?' 하고 끊임없이 회의와 마주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서도 언젠가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으로, 그래도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질문을 던진 분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침묵하면서, 정작 그때가 돼서는 학생들에게 부끄럽게 살지 말자고, 독립운동가들처럼 불의에 맞서 싸우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상상만 해도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1·2차에 걸친 서명운동과 공동 성명 발표를 통해 불의에 맞설 용기가 있는 역사학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공동 성명 발표에도 총 35개 대학, 164명의 역사학도들이 기꺼이 연명에 동참해줬기 때문입니다(9월 17일 오후 7시 기준). 이들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과 역사농단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분명합니다. 국회에 '홍범도장군흉상철거반대결의안'의 조속한 채택을 요구합니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도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을 당장 철회하고 이번 사태를 야기한 책임자를 색출해 처벌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대학(원)생 독자들께 추가로 제안합니다. 더 많은 학생들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아래의 성명서를 대자보로 출력해 소속 대학 캠퍼스에 부착해주십시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적극적으로 인증샷을 올려 우리의 뜨거운 의지를 널리 퍼뜨려주십시오.

또한 (사)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진행하는 1인 시위에도 함께해주십시오. 시위는 10월 6일까지 매일 낮 12시~ 오후 1시 사이에 릴레이로 진행됩니다(일요일 및 추석 연휴 제외). 한 명, 한 명의 참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참여신청 : https://forms.gle/5Cj1g7yz1tMiz6zN7 ).

그럼 이제 한국광복군 창설 83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역사학도들의 뜻을 담은 공동 성명서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성명서 전문]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는 역사학도들의 공동성명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시작은 육사 교정 내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흉상 철거였다. 그러나 거센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자,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하여 학교 밖으로 끌어내기로 한 것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평생 의병장으로, 독립군 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홍범도 장군에게 갖은 모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철 지난 '색깔론'을 들이밀며 그가 마치 동족을 학살한 주범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망언과 함께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정당화했다.

2018년 국방부는 육사 교정 내에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건립하면서 "독립군을 우리 군의 뿌리로, 신흥무관학교를 육사의 모체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니 언제 그랬냐는 듯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국방경비사관학교"라고 말을 바꿨다.

국방경비사관학교(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는 1946년 5월 미군정에 의해 설치된 사관학교로, 초대 교장 이형근 참령(소령)은 일본군 대위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다. 국방부는 우리 육사의 정신적 뿌리를 독립군을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가 아닌 미군정이 세우고 일본군 출신 친일파가 교장을 맡았던 학교에 있다고 본 것이다. 심지어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 자리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흉상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돌이켜 남한의 형편을 보면 그것도 아름답지 못하니 친일파의 블럭은 곳곳에 발호하고 있다. 민족반역자의 세력은 군부 방면에까지 벌써 뿌리를 깊이 박혔다. 그들은 표창까지 받는다." - 문일민, '동지동포께 일언함' (1947.12.20.)

76년 전 친일 군인들이 군부를 장악한 현실을 비판한 독립운동가 문일민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다.

단순히 육사와 국방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을 바꿀 수도 있음을 시사했으며, 국가보훈부 역시 홍범도 장군에게 수여된 건국훈장의 서훈 취소까지도 검토 중이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를 중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수수방관하며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윤석열 정권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사를 수놓은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런 홍범도 장군을 모독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뿌리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행위나 다름 없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7월 칠곡 다부동에 백선엽의 거대한 동상을 세우더니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의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기록을 지우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민족반역자로 만들고자 획책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역사농단'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질 셈인가.

우리 역사학도들은 독립투사들이 피로 쓰고 선학들이 땀으로 엮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이러한 현실 앞에 침묵하지 않겠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이번 폭거를 '역사에 대한 쿠데타'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하며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1. 국회는 '홍범도장군흉상철거반대결의안'을 조속히 채택하라!
2. 윤석열 정권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을 백지화하고 이번 사태를 야기한 책임자를 처벌하라!

2023년 9월 17일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대학원생 일동

김경준(한양대)·장예정(숙명여대)·전재선(조선대)·김대경(경북대)·황인재(전북대)·김남석(숭실대)·이한나(강릉원주대)·황지영(한남대)·전현우(대구대)·신화철(단국대)·이준설(경성대)·정석현(대진대)·조예진(단국대)·이정빈(충북대)·김종민(서울시립대)·김주찬(한국외대)·유샛별(충남대)·주영우(연세대)·박종원(한국외대)·양석민(서울대)·고주현(대구가톨릭대)·하민식(연세대)·강동원(서울시립대)·이윤희(국민대)·문주성(건국대)·홍미화(단국대)·조성진(중앙대)·이상민(동국대)·송치영(전북대)·강화랑(제주대)·조경민(전북대)·이혜린(전북대)·김혜린(전북대)·노유진(전북대)·박기범(전북대)·정현우(전북대)·김지수(전북대)·김유민(전북대)·김들(전북대)·소가영(전북대)·박다선(전북대)·정지은(전북대)·나은서(전북대)·고희경(전북대)·유연서(전북대)·송우린(전북대)·김주원(전북대)·안재홍(경북대)·강혁(서울대)·서준석(전북대)·양요완(전북대)·이정용(연세대)·곽민지(전북대)·김민정(강릉원주대)·윤형덕(고려대)·차지환(고려대)·공명진(고려대)·신성모(전북대)·성민경(서울대)·전상민(고려대)·김승호(고려대)·조은(경상국립대)·임세은(경상국립대)·김문정(경상국립대)·임홍주(경상국립대)·유승창(경상국립대)·정재량(경상국립대)·손지수(경상국립대)·박연진(경상국립대)·박민영(경상국립대)·김남훈(충남대)·김한경(경상국립대)·조대현(고려대)·이진영(안동대)·하준혁(경상국립대)·노정엽(경상국립대)·최진석(경상국립대)·박소연(경상국립대)·민조언(경상국립대)·서차수(안동대)·김찬미(경상국립대)·이주현(경상국립대)·신후영(고려대)·이재연(경상국립대)·김건재(UCLA)·임수빈(경상국립대)·김희주(전남대)·채영민(경상국립대)·팽승화(경상국립대)·김재형(고려대)·김현정(고려대)·문혜련(부경대)·서규범(전남대)·김민규(전남대)·김태희(전남대)·장애희(안동대)·박현우(전남대)·박혜린(경상국립대)·김유빈(경상국립대)·정윤혜(경상국립대)·김기쁜(경상국립대)·이도영(가톨릭관동대)·홍자연(경상국립대)·홍승인(가톨릭관동대)·송채원(가톨릭관동대)·박선우(서울대)·장시온(단국대)·우재준(경상국립대)·이준혁(경희대)·한지희(경희대)·최준영(경희대)·임다은(경희대)·양지인(경희대)·원치승(경희대)·이태준(경희대)·김정현(경희대)·탁현식(경희대)·신석주(경희대)·김주현(경희대)·성현찬(경희대)·장우혁(경희대)·박주원(경희대)·최현이(경상국립대)·김경엽(경상국립대)·이연서(경희대)·박원규(경희대)·김나연(경희대)·양민하(경희대)·강민지(경희대)·정예원(경상국립대)·박수빈(경상국립대)·이수현(경희대)·정담비(경희대)·김건우(경희대)·정창윤(경희대)·박가영(경상국립대)·진한솔(고려대)·오현경(고려대)·김하리(경희대)·박선희(영남대)·경희대학교 사학과 비상대책위원회·송하림(경희대)·김보영(성균관대)·이나래(경희대)·정유석(경희대)·안승규(경희대)·이건규(서울대)·박정인(서울대)·조효송(전남대)·이상봉(전남대)·김민석(성균관대)·박우진(대진대)·정유정(전남대)·이다은(고려대)·김승현(경희대)·고산이(전남대)·양세진(경희대)·권혁빈(중앙대)·이재훈(중앙대)·민채윤(강원대)·강태하(고려대)·최영현(전남대)·김태희(전남대)·김은지(충북대)·서지호(경희대) (*서명참여순)

태그:#홍범도, #역사학도, #공동성명, #대학생, #대학원생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