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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일이었다. 주말 아침 일찍부터 친정을 방문했다. 부모님이 가을에 이사하게 될 집이 있는데, 부모님은 남편과 함께 그 집을 한 번 더 보러 가길 원하셨다. 남편은 성격이 꼼꼼한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 집 구석구석을 잘 살펴볼 것이다. 부모님도 그걸 아신다. 그래서 혹시 당신들이 놓친 건 없나 걱정되어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부모님이 오전 10시에 이사할 집 방문을 약속해 놓아서 남편과 나는 9시쯤 친정에 도착했다. 9시 30분에는 출발을 해야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계셨다.

나는 좀 있으면 출발해야 하는데 뭐 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너한테 주려고 반찬을 만드는 중이라고, 이제 거의 다 됐다고 하셨다. 늦을까 봐 살짝 짜증이 났지만, 곧 집을 나서야 하니 꾹 눌러 참았다.

이사할 집을 보고 온 뒤, 친정에서 잠시 쉬었다가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엄마는 오전에 만든 반찬들을 용기에 담기 시작하셨다.

"그건 안 가져갈래."
"이건 많이 안 먹는 거야. 조금만 줘."
"제발 꾹꾹 눌러 담지 마. 몇 번 먹고 나면 잘 안 먹게 된단 말이야."


난 어느새 엄마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말없이 반찬을 담으시던 엄마는 냉장고에서 미리 사다 놓은 사과를 꺼내며 이것도 가져가라고 하셨다. 엄마의 그 말에 오전부터 쌓이기 시작한 짜증이 폭발해 버렸다. 나는 엄마에게 "사과는 그냥 엄마 먹어. 내가 사 먹으면 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가 손에 쥐여 준 쇼핑백을 풀어 보았다. 버섯, 감자, 멸치, 어묵, 양배추 볶음에서부터 무생채, 애호박과 배추 나물무침까지. 그 많은 음식들이 반찬통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거기에다 겉절이와 계란장도 있다. 그리고 사과까지. 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정성 가득한 반찬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정성 가득한 반찬들
ⓒ 최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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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반찬을 해 주는 것이 왜 그리 짜증 났을까? 엄마가 힘들게 요리하는 게 싫다.

엄마는 분명 큰 재래시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반찬 만들 재료를 한가득 사 무겁게 들고 왔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긴 하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불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나빠진 시력 때문에 음식 만들 때도 안경을 쓰고서 말이다.

재료를 사다가 다듬고, 씻고, 데치거나 삶고, 절이고, 양념하고, 볶고, 굽고, 찌고, 끓이고... 그 과정의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사과만 해도 그렇다. 내가 사 먹어도 되는 걸 굳이 엄마가 사서 준다.

엄마는 내가 맛있는 걸 사준대도 '싫다', 예쁜 옷을 사준대도 '싫다',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해도 '싫다', 싫다고만 하신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고 하면서 왜 모든 걸 주려고만 할까? 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나더러 언제, 어떻게 다 갚으라고.

반찬 든 쇼핑백을 내 손에 쥐여 주며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반찬을 만들어 줄 수 있겠니. 더 나이 들면 나도 못 해. 그냥 해 줄 때 받아서 먹어."

엄마의 반찬은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식 중 하나였다. 그냥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엄마 기분 좋게 말하고 왔으면 됐을 걸. 왜 그리 모진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는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하게 음식을 싸 주실 것이다. 이번에는 엄마가 주시는 음식들을 그대로 받아올 것이다. 감사한 마음도 많이 표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 실릴 수도 있습니다.


태그:#엄마표반찬, #추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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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으로 성장하다. 책에서 힘을 얻습니다. 어쨌든 읽고 무작정 쓰고 아무것이라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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