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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추석 앞두고 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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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앞으로 쉴 거야, 뒤로 쉴 거야?"

명절이면 함께 일하는 이에게 늘 물어보는 말이다. 차례상 준비하려면 명절 전날 쉬어야 하고, 가까운 친정에라도 다녀오려면 명절 다음날 쉬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모두 쉴 수 없으니 각자 쉴 날을 정해야 한다.

달력에 명절연휴 '빨간 날'이 며칠이든지 우리가 이어서 쉴 수 있는 연휴는 단 '이틀'뿐이다. 거기다 1년에 두 번, 번갈아가며 명절 당일에도 근무를 해야만 하는데 그 당번이 되면 앞날이든 뒷날이든 하루만 쉴 수 있다. 

마트에서 장장 15년을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음식만 해놓고 명절날 아이들끼리 먹게 했을 때도 있었고, 다른 친척 다 모이는 자리에 아빠랑만 다녀오게 하기도 했다. 

명절에 수도권이 아닌 고향집을 가려면 여러 동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런 양해를 구하는 것도 서로 부담스럽고 미안한 일이라 결국 포기를 하게 된다. 

명절이면 보통 2시간 이상 연장근무 해야

명절이면 대형마트 계산대는 호떡집에 불난 듯 정신 없이 바쁘다. 피크기간 일주일 전부터 매장 영업 시간도 늘어나고 보통 2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해야만 한다.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코드를 찍어대야만 한다.

나도 한 가정의 살림을 맡아 하는 처지라,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퇴근해선 차례 음식 장도 보고 어르신들의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언제나 여유가 없지만, 동동거리며 며칠을 준비한다. 정말 지치고 힘든 상태로 명절을 맞이하지만, 1박 2일의 연휴에도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내느라 바쁘다.

일주일여를 동동거리며 지내서인지 명절이 지나고 나면 꼭 병이 나고 만다. 몸살이 날 때도 있고, 어깨에 파스를 붙여야 할 때도 있었으며 언젠가는 팔이 안 움직이기도 했다. 정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는 몸이 되어버린다. 

명절 연휴에 매장 문을 열어야 하니, 오픈할 직원과 마감할 직원이 부서마다 필요하다. 신선과 비신선으로 나누어 최소 인원을 근무시키는데 각 층별로 관리자급인 팀장과 담당자급 사원 딱 한 명을 근무 시키고, 각 부서별로는 우리 같은 무기계약직 사원 위주로 근무를 시킨다.

연휴 근무를 원하는 사람에게서 신청을 받아 근무 조를 짜자고 건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본사 지침이라며 근무인원 대부분을 우리 같은 무기계약직 사원으로 채운다. 아마도 그건 인건비가 싸기 때문일 터였다. 

친지들은 명절이면 더 바쁘고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래도 대기업 다니니 돈은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다. 언젠가 한번은 "지금 그만두면 퇴직금은 얼마나 받냐"면서 "억도 넘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15년 이상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퇴직금 3천 쯤 된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어 쓰게 웃었다. 

사람에 치이고 물건에 치이고 일에 치이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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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고되고 돈은 적게주는 회사.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이다. 혹자는 갈 데가 없어서 다니는 거면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군소리 말고 일하라고도 한다. 

노예같은 삶이 '해결책'이었다면 우리 업무 환경이 이 정도나마 변화되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필요한 일터라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개선해서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나? 

나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 내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도 노동을 하게 될 일터라면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바꾸어가는 게 앞 세대들의 책임이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명절은 내가 근무 당번이 되었다. 독립한 아이들은 엄마의 명절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명절 출근하고 마감 근무하고 다시 오픈 근무가 나에게 놓인 일정이다. 다섯 식구가 모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은 10월에나 될 거 같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뿔뿔이 지내다가 명절이 지난 후에 갈비찜과 잡채를 만들어 먹게 될 것이다. 

민족 대 명절 추석, 누군가에겐 흩어진 가족들과 만나는 행복한 날이지만 대형마트 근무자인 우리에겐 사람에 치이고 물건에 치이고 일에 치이는 기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형마트 명절 영업이 꼭 필요한가 생각해보면 좋겠다. 명절 앞으로, 뒤로 충분히 바쁘고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 누구나 명절 포함 이틀은 연휴가 당연한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내 대형마트 직원입니다.


태그:#추석연휴, #마트,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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