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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외곽 내가 사는 동네에는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걷기 좋은 둘레길이 있다. 그 길을 일주일에 5일 이상, 한 시간씩 걷는다. 때로는 뛰기도 한다. 삶의 루틴처럼 걷기를 시작한 지는 8년쯤 되었다. 첫 시작은 다이어트를 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갑자기 불어난 몸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유산소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움직이지 않고 살이 빠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기에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걷기 루틴을 스스로 담금질하기 위해 핸드폰에 걷기 앱을 깔았다. 하루 만보 이상을 걸으면 100원이 적립되는 앱이다. '100원을 모아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커피 쿠폰이 해소시켜 주었다. 그동안 하루 만보씩 걸어서 모은 포인트로 마신 커피만 20잔이다.
 
밤 달리기하며 찍은 그림자사진
▲ 밤 달리기하며 찍은 그림자사진 밤 달리기하며 찍은 그림자사진
ⓒ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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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도 여전히 걷기에 몰입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체중 감량을 위해서다. 그러나 웬만한 운동으로는 목표한 체중 감량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땀을 흠뻑 흘리고 온몸을 뻐근한 감각이 지배할 때까지 뛰거나 걷지 않으면 그냥 다리만 아프고 끝날 뿐이다.

탄수화물 과다 섭취 후에는 백날 뛰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더 이상은 찌지 않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목표를 낮추면 만족도는 높아질 수 있다. 더불어 '난 오늘도 걷기를 멈추지 않았어'라는 성취감이 내일도 걷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다.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을 이용하지 않고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열리고 긴장되어 있던 근육들이 유연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던 복잡한 생각과 고민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의식적으로 '무'의 세계로 빠져들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다.

가을바람이 머릿속을 통과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들이다 보면 무겁다고, 버겁다고 느꼈던 일상의 문제들이 한결 가벼워진다. 리프레시 된 마음가짐으로 다시 힘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세 번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실제로 여러 가지 사례들과 개인적으로 얻어낸 성과들이 이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걷다가 갑자기 떠오른 기획안으로 업무와 관련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일도 있고, 반짝! 하고 떠오른 네이밍이 신박하다고 동료들이 탄성을 내지른 경우도 있다.

사무실에 앉아서 아무리 연필을 굴려봐도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들이 걷는 동안 갑자기 떠올랐던 경험을 자주 했었다. 빈틈 없이 꽉 채워진 공간엔 새로운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 비워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홀로 걷는 시간이 유일하게 비워내는 시간이다.

네 번째는 집중해서 음악을 듣기 위해서다. 카페에서, 상점에서 스치듯 듣는 음악이 아니라 가사를 음미하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음악에 오롯이 투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올해 1월 <꿈의 거처>라는 정규앨범을 낸 최애 가수 이승윤의 음악은 빼놓지 않고 듣지만, 되도록이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가수 허회경의 노래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고 있다. 허회경의 노래는 지난달 열렸던 모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들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음색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해서 듣고 있다.
걷기 앱 포인트로 마신 커피
▲ 걷기 앱 포인트로 마신 커피 걷기 앱 포인트로 마신 커피
ⓒ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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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무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걷는 것인지, 걷다 보니 무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인지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차곡차곡 쌓여가는 포인트가 계속 걷게 만드는 동기부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는 26000점. 이 정도 포인트라면 커피와 함께 케이크도 먹을 수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걷는다고 하면서 케이크를 떠올리다니, 명백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와 케이크의 유혹은 강력하다.

긴긴 추석 연휴를 마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도 있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연휴의 절반을 설거지 지옥에 갇혀 지냈다. 탈출하자마자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이어폰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밖으로 나온 순간, '와~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내가 바라는 행복은 이렇게 작은 거였다. 내리 두 시간을 걸은 뒤 핸드폰 걷기 앱에 찍힌 숫자는 '20,000'이었다. 내일은 30,000 고지를 목표로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 봐야겠다.

태그:#걷기, #달리기, #걷기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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