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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열린 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작가가 기자들에 질문에 답하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열린 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작가가 기자들에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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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날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꿨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 골목에서 불어나는 희생자를 두 눈으로 보며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사람.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간 사람. 자기 자신을 위해 펜을 들었지만 이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1990년생 김초롱씨는 이태원 참사 현장의 생존자이자 작가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김씨가 그동안 쓴 글을 모은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가 최근 출간됐다. 그는 지난해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현장을 목격한 당사자다.

그는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신간에 대해 "슬프고 우울한 얘기가 없진 않지만 마지막엔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책"이라며 "참사에 국한되지 않고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한번쯤 맞닥뜨릴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누구나 재난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어디까지 솔직하게 써야 하는지가 가장 큰 집필 기준이었다"면서도 "막상 책을 쓸 땐 일상이 무너지는 수준과 단계를 적나라하게 써내려갔다. 참사의 배경과 원인을 사회문화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부모님 세대가 이 책을 많이 읽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 앞에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작가의 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가 전시되어 있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 앞에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작가의 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가 전시되어 있다.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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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과 부채감... 사과하고 사과받고 싶었다"

김씨는 참사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상황과 심리 상담을 받으며 있었던 일들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태원에서 보고 느낀 것뿐 아니라 처참히 무너진" 자신의 세계를 누군가에게 토해내듯 썼다. 그 글은 <오마이뉴스>에 22차례 연재됐다. (관련 기사: 오마이뉴스 시리즈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그는 연재에다 새로 쓴 글들을 덧대어 이번 신간을 출간했다. 책에는 참사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겪은 트라우마와 그것을 극복하려 한 그의 애씀이 담겨 있다. 이것은 2022년 10월 29일부터 2023년 9월 12일까지 그가 통과해 온 319일이라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책은 참사 당일, 즉 10월 29일 18시 30분부터 10월 30일 새벽 이후까지의 타임라인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김씨는 책에서 그날에 대해 "앞뒤로 세게 압박이 가해지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몇 초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썼다. 그는 근처 식당으로 대피했으나, 자정 무렵 속보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 발생, 심정지 환자 20명.' 초롱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1년 전 그날 이후를 이렇게 떠올렸다.

"회복이 잘 되지 않았어요. 괜찮아질 만하면 원위치로 돌아갔어요. 이 모든 게 내 망상은 아닌가 반복적으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희망이 없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과연 끝이란 게 있긴 할까, 그런 생각이 가장 힘들었어요."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 후로 초롱씨는 좀처럼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고 싶어서" 병적으로 뉴스에만 집착했다. 지인의 권유로 한국심리학회의 전화 상담을 받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참사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담사는 그에게 말했다. '참사를 뉴스로 보고 간접적으로 겪은 우리 모두가 생존자나 다름없으며, 그 현장을 직접 겪은 당신이 더 힘든 건 당연하다'고.

이후 그는 전화 상담을 시작으로 구청 정신건강 복지센터를 방문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마주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고 여기면서 오랫동안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에 대한 분노도 들끓었다. 책에서 그는 "(희생자에게는) 사과하고, (책임자에게는) 사과받고 싶었다"고 썼다.

"그날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누군가는 돌아가셨고, 저는 살아남았어요. 한 발자국 차이로 사람들의 운명이 갈라졌어요. 제가 떠나가신 분의 삶 일부를 가져왔다는 책임감과 부채감이 생겼어요. 그러면서도 이 고통에 대해 누군가의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대다수 사람들은 저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렇다 보니 제가 유별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억울해질 때면 사과를 통해 이해받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진짜 잘못한 게 없었거든요."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열린 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작가가 기자들에 질문에 답하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열린 신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작가가 기자들에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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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이 가져다준 위로... 웃을 일 만들어가자"

참사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연결감'이었다. 그는 주변의 진심 어린 관심과 따뜻한 지지 덕분에 위험한 순간들을 넘길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가장 힘이 된 장면이 무엇인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해받고 지지받지 못하면 '왜 살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오고 그 끝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향해요. 그 단계를 겪고 있는 저를 잡아준 친구의 말이 있어요. '그런 생각을 했구나,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언제나 얘기해줘.'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꺼내는 것이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이라는 걸 그때 느꼈어요. '너랑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새해 인사 겸 연락했어', 이런 솔직한 말들이 위로가 돼요."

그는 참사 이후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가 됐다. 책 부록에는 이태원 참사로 예비 신부를 잃은 생존자 서병우씨, 동생 형주씨를 떠나보낸 누나 이현씨를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마음이 힘들 때 속에 담아둔 말을 적어보라'는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펜을 잡았지만, 이렇게 모아진 글이 우리 사회 모든 '생존자'들에게 깊고 넓은 위로를 가져다줬으면 한다는 게 초롱씨의 바람이다.

"아직 사람들이 유가족을 직접 마주하는 건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힘들고 아프다고 미루면 없던 일이 돼요. 자꾸 봐야 새살도 나고 극복이 돼요. 이 순간에도 참사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해 들었는데, 힘드시겠지만 웃을 일을 조금씩 만들어 가시면 좋겠어요. 어떤 형태로든 밝게 웃는 장면을 곧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이 건너온 319일의 시간들

김초롱 (지은이), 아몬드(2023)


태그:#이태원참사, #김초롱, #제가참사생존자인가요, #기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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