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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머리어깨무릎발 안 아픈 데가 없다."

해맑은 동요가 한순간에 짠한 신세 한탄으로 변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도 못했기에 난데없이 웃음이 터져 한참을 깔깔 웃었다. 반면 잠자리에 들며 이 말을 무심히 내뱉은 주인공은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렇다. 남편은 지금 결코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왠지 모르게 초췌한 낯빛이 그의 말이 진실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40대의 몸

40대는 확실히 달랐다. 40대에 들어서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더니, 과연 이 나이에 도달한 그의 몸뚱이는 확연히 달라졌다. 툭하면 이곳저곳이 자꾸만 삐거덕 삐거덕 고장났다 아우성이었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 말해보자면 그의 발목은 지금도 투병 중이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고르며 한껏 신난 아들이 이리저리 아빠의 팔을 잡아끌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그는 편의점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저 발목을 접질린 것이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의 발목은 이제 40대의 발목인 것이다. 주저앉은 때로부터 한 달 후인 지금까지도 그는 몇 번의 병원 방문을 거친 뒤 매일 저녁 뜨끈뜨끈한 황토 찜질팩과 동거 중이다.

그런데 한참 웃다 보니 왜인지 슬그머니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사실 요즘 우리 대화의 마무리는 자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래, 우린 이제 늙었어"였다. 남편과 나의 나이 차이는 고작 한 살이다. 남 말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그의 몸뚱이뿐만 아니라 나의 몸뚱이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건강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그 시작은 일상생활 속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에서부터 찾아왔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대로 나는 일단 식욕이 채워져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맛있는 음식이 나에게 주는 행복은 그 무엇보다도 커서, 뷔페라도 갈라치면 네다섯 접시쯤은 거뜬히 먹던 건강한 위, 소장, 대장 등을 겸비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런 소화기관은 나에게 더 이상 없다.

예전에 비해 많은 양을 먹지 못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특히 좋아하던 매운 음식도 먹지 못하게 됐다. 어느 날은 마라탕을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몇 시간 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운 음식을 먹고 속이 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한 날이었다.

'입맛은 그대로인데 왜 먹지를 못하니', '어떻게 몸이 변하니?' 누구에게인지 모를 갖은 원망을 쏟아 봤자 소용없었다. 이제는 그저 떡볶이 가게를 지나치면서 '내가 왕년에는 OO떡볶이 제일 매운 단계를 먹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여자였다 이거야' 같은 슬픈 혼잣말이나 할밖에.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건강검진결과도 썩 좋지 않았고 단순 감기조차도 이젠 쉽사리 낫지 않는다. 꼭 하고 싶던 여행인 한 달 살기를 시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슬금슬금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참을 수 없을 만큼이 되고 말았다.

여행을 미룰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숙소도 예약해둔 터였다. 무엇보다도 얼마나 기다렸던 여행인데.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후두염은 한 달 살기 동안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재발을 반복했다.
 
오랫동안 함께 한 약봉지
 오랫동안 함께 한 약봉지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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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안 되겠다 싶었다. 수액을 맞았다. 뒤이어 그동안 양가에서 받은 뒤 그대로 찬장 또는 냉장고 구석으로 직행시켰던 각종 건강즙이며 프로폴리스 등 다양한 영양제를 하나, 둘 꺼내들었다. 건강식품 같은 건 굳이 왜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자진해서 찾게 된 것이다.

쓰디 쓴 약도라지청을 꿀꺽 삼키며 문득 인기리에 종영된 한 드라마의 대사를 떠올렸다. "너 나이 어린 거? 언제까지 어려? 내년에도 어려?" 이런 때가 올 줄 몰랐던 과거의 20대 때, 30대 때의 나는 오만했구나. 그런데도 왜인지 그때의 건강했던 몸만큼은 그립다.
  
좀처럼 낫지 않는 감기로 수액까지 맞은 어느 날
 좀처럼 낫지 않는 감기로 수액까지 맞은 어느 날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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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흐려진 한쪽 눈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눈앞에 검은 선과 점 같은 것들이 일렁이며 떠다니기도 했다. 이건 또 뭔가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자 '비문증'이란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유독 눈에 들어 온 단어 '노화'.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노화라니. 이제는 눈에도 노화가 오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때 역시 일주일 살기 여행 중이었던 나는, 노화에게 왜 하필 지금이냐 마음속으로 항의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문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된다는 인터넷 선생님의 말씀만 확인하곤 괜찮아지겠지 하며 그냥 넘겼다.

그런데 며칠 뒤,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서 안과에 갔더니 출혈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거라고 하시며 여행을 마친 뒤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의 한쪽 눈은 숙소 방바닥에 떨어진 작은 머리카락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 눈이 되었다. 오래 전 할머니가 씻은 그릇이 자주 뽀독뽀독 깨끗하지 않은 것을 보곤 내심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벌써 실감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렇다. 40대라는 나이는 정말로 그랬다. 남들이 흔히 말하듯 40대에 들어서자 자꾸만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커다란 당혹감이다. 불과 1년 전과 다른 내 몸이, 나는 너무 생소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러운 거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넓고 성숙한 마음이 나에게는 아직 없다. 그러니 점점 변해가는 몸과 친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아마도 꽤 오래이지 않을까.

다만, 그동안 주인의 큰 관심 없이도 나를 잘 건사해준 젊은 시절의 건강하던 몸에 대한 감사함은 이제 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 몸이 알려주는 신호들에 겸허히 귀 기울여보려고 한다.
 
결국 망막열공으로 찾게 된 안센터
 결국 망막열공으로 찾게 된 안센터
ⓒ 배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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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흐려진 한쪽 눈이 어떻게 되었는지 혹시라도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써본다. 일주일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안과를 찾은 나는, 망막에 구멍이 났단 비보를 접하게 됐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안과로 유명한 종합병원에 제출할 소견서를 써주시며 차분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지금 바로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길로 큰 병원을 찾은 나는 길고 지루한 눈 검사를 끝으로 그날 바로 방책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시술 자체는 짧은 시간 내에 끝나는 간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섭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쓰러지는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을 갖고 있던 나는, 예상치도 못한 눈 시술에 잔뜩 겁에 질려 시술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쓰러져 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놀란 표정의 선생님들이 나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었다. 건강적신호인 나이대에 접어들었음을, 다시 한 번 부인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40대, #건강적신호, #건강, #병원,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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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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