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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올랐단' 소리만 들리는 요즘입니다. 우유 가격은 14년 만에 가장 많이 상승했고, 빵은 2년 전보다 21.6% 올랐습니다. 정부는 최근 빵과 우유 등 28개 농식품 가격을 매일 점검하겠다고 나섰지만, 하루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서민들은 이례적인 '고물가'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고물가로 인해 바뀐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시민기자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천 원에 세 개나 주는 붕어빵 가게.
 천 원에 세 개나 주는 붕어빵 가게.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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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엔 11월이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붕어빵 가게가 있다. 벌써 수년째 같은 자리, 같은 아주머니가 파는 그 붕어빵 덕분에 나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붕세권'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11월도 초반을 넘어 중반을 향해 가는데도 붕어빵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아… 이대로 우리 동네 붕세권도 무너지는 건가?' 

'겨울 풍경' 하나를 잃는 것만 같아 아쉽고도 쓸쓸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동네에 수많은 가게가 야심 차게 문을 열었다가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고물가·불경기 시대이니, 붕어빵 가게 하나 사라지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생계가 걸린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차가운 공기를 타고 익숙하면서도 희미한 단내가 퍼졌다. 어제도, 엊그제도, 그 전날에도 있었다는 듯 붕어빵 가게가 그 자리에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로 줄이 길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나도 기꺼이 줄을 보탰다. 

일상에서 느끼는 고물가 시대

다시 돌아온 붕어빵의 가격은 작년 그대로 천 원이었다. 단, 천 원에 네 개던 팥소가 든 팥붕은 세 개로, 세 개던 슈크림이 든 슈붕은 두 개로 각각 하나씩 줄었다. 다시 말해 값이 올랐다. 그럼에도 가파른 물가 상승률에 비하면 값이 올랐다 말하기도 미안한 가격이었다. 천 원에 두 개, 이 천 원에 세 개 주는 곳도 허다한 요즘, 천 원으로 붕어빵을 세 개나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붕어빵뿐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서 우리는 고물가를 쉽게 체감한다. 올여름의 일이었다. 2년 전에 갔던 곳으로 두 번째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중학생인 두 딸이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2년 전엔 여행 와서 삼겹살을 두 번 먹었는데, 이번엔 왜 한 번밖에 못 먹어요?" 
"얘들아, 그만큼 물가가 올랐단 뜻이란다."


같은 장소, 같은 기간, 같은 예산이었는데 2년 전과 비교해 물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두 번 먹었던 삼겹살을 한 번, 그것도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여행지라 더 비싼 탓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삼겹살은 서민 음식이 아니었다. 가격을 생각하니 뇌가 지갑 사정을 걱정해 알아서 식욕을 조절했는지,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 못 먹는 건지. 아무튼 평소보다 덜먹고도 금세 배가 불렀다.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이해 못 했는데 '아, 바로 이런 건가?'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두 딸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나는 저절로 배가 불렀다. 

불과 2년 사이에 아이들도 느낄 만큼 물가가 폭등했다. 그만큼 우리는 '초초초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다. 

고물가가 바꾼 일상

오른 물가만큼 내 월급도 오르면 좋으련만, 세상 모든 것이 올라도 오르지 않는 딱 한 가지가 바로 내 월급이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지출만 커지는 야속한 현실 속에서 집안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나부터 달라져야지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줄일 수 있는 지출부터 줄여 나갔다. 

일단 외식을 줄였다. 가능한 집밥을 해먹으며 냉장고를 비웠다. 어쩌다 밖에서 맛있는 걸 먹게 되면 다음에 또 올 생각을 하기보다는 집에서 어떻게 만들어 먹을지부터 생각하게 됐다. 다행히도 유튜브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레시피가 친절하게 준비돼 있다. 어떤 음식이든 레시피가 없는 경우는 없었다. 덕분에 다채로운 집밥을 도전 중이다. 

그런데 꺾일 줄 모르는 물가는 집밥을 위해 장을 보는 일조차 두렵게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 가격이 됐다. 혹시 할인 행사는 없는지, 쿠폰은 있는지 꼼꼼히 따지고 챙겨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 노력한다. 예전엔 귀찮기도 하고 한두 푼에 벌벌 떠는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는데 이젠 세상 뿌듯하다.
 
구청으로부터 지원 받은 평생 교육 바우처로 천연 ‘기초 화장품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 중 직접 만든 나만의 수분 촉촉 세럼과 데일리 클렌징 밤.
 구청으로부터 지원 받은 평생 교육 바우처로 천연 ‘기초 화장품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 중 직접 만든 나만의 수분 촉촉 세럼과 데일리 클렌징 밤.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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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예전엔 할인하는 물건이 있으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사서 쟁여놓고 봤다. 그땐 그게 아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미련 없이 장바구니에서 뺀다. 요즘 들어 부쩍 대형 마트보다 동네 마트를 자주 가게 된 이유다.  

마트뿐 아니라 동네 지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도 자주 기웃거린다. 그러다 보면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덕분에 나는 구청에서 지원하는 20만 원 상당의 평생교육 바우처를 신청했는데 운 좋게도 추첨에서 뽑혔다. 그 바우처로 천연 기초 화장품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 

처음 시작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집밥뿐 아니라 화장품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고물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나의 일상이 전보다 더 흥미로워졌다. 

뜻밖에 좋은 일들 

지출을 줄이다 보니 덩달아 줄어든 것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매주 화요일마다 일주일 치 재활용 쓰레기를 일괄 배출한다. 전에는 일주일 사이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한 번에 다 들고 내려갈 수 없을 만큼 그 양이 어마 무시했다면, 지금은 현저히 줄었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캠페인이 있다. 1992년 캐나다에서 데드 데이브(ted dave)라는 광고인에 의해 처음 시도된 이 캠페인은 상품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 노동문제, 불공정 거래 등 물질문명의 폐단을 고발하고 유행과 쇼핑에 중독된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소비 형태의 반성을 촉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부터 녹색연합이 주축이 되어 벌이고 있는 이 캠페인을 어쩌다 보니 나는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소비를 줄이니 쓰레기가 줄었고 본의는 아니지만 환경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주게 되어 기분이 꽤 괜찮다. 다음엔 더 줄여볼까? 하는 도전의식도 생기고.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은 날'을 늘리는 나만의 챌린지도 일부러 도전해 보기도 한다. 어차피 줄여야 할 지출이라면 의미 있는 도전으로 바꿔 좀 더 유익하고 재밌게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필요도 없는데 사들인 물건들, 소위 말하는 예쁜 쓰레기들을 많이도 모았다. 그땐 꼭 필요해서 샀는데 어느새 쓸모 없어진 물건들도 참 많다. 그중 쓸만한 것들을 모아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려 하나 둘 정리하니 소소하게나마 돈도 생기고 집안도 정리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왜 중고거래 재미에 빠지는지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출을 줄이고 아끼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고물가 시대에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양육해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줄이고 아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수입을 늘리는 수밖에. 나는 전에 없던 경제에 관심을 갖고 나의 능력과 노동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더 많이 알게 됐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런 걸 좋아했네? 나 이런 것도 좀 잘 하는데? 등등. 

덕분에 돈의 가치뿐 아니라 나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푼돈과 사소한 일 따위는 무시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적은 돈과 작은 일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할 줄 알게 됐다. 얄궂게도 고물가를 통해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말을 했다. 

"아낄 줄 아니까 이젠 잘 살 일만 남았네." 

고물가 시대에도 계속되는 '붕어빵 낭만'
 
아무리 고물가시대라도 붕어빵 낭만까지 잃을 순 없다.
 아무리 고물가시대라도 붕어빵 낭만까지 잃을 순 없다.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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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우리 동네 붕어빵 아주머니는 천 원에 붕어빵 세 개를 주면 뭐가 남을까? 새삼 걱정됐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다시 붕어빵 가게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천 원에 세 개가 아니라 두 개라도 참 감사한 마음으로 사먹을 것 같은데 어쩌면 내년이야말로 우리 동네 붕세권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군고구마가 편의점으로 들어갔듯 이미 겨울 시즌 디저트로 붕어빵을 파는 카페들도 속속 늘고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사 먹는 붕어빵이 주는 정취 같은 게 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느끼는 붕어빵의 달콤한 온기. 그 맛에 종종 붕어빵을 산다. 아무리 고물가 시대라도 붕어빵 낭만까지 잃을 순 없으니까. 말 그대로 천 원의 행복이다. 

태그:#고물가, #붕어빵, #붕세권, #합리적소비, #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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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쓸모 있고 소모할 수 있는 것들에 끌려 그때그때 다른 걸 읽고 새로운 걸 만듭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오늘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매우 사적인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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