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방학 마지막 날에 몇 십 편의 일기를 급하게 몰아 쓰던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일기를 왜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숙제'로만 여겨 귀찮은 마음에 일기를 쓰는 것을 미룬 것이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영어학원에 갔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영어 수업을 들을 때 너무 피곤해서 졸았다. (...)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TV를 조금 보다가 자러 갔다.'

이처럼 어릴 적 일기는 단순히 나의 일과를 기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집중하여 일기를 적은 것이다.

일어난 일보다는 감정을 적기... 고3 시절의 일기 보니 

초등학생 때는 '일어난 일'에 집중하여 일기를 적었던 것과 달리, 고등학생 시절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나는 '일어난 일'이 아닌 '감정'에 집중하여 일기를 적는다.

'10시 반에 첫 수업이 있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기가 너무 힘들어 늦잠을 잘 뻔했다.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하는데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수업 중에도 피곤해서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고 걱정된다. 이런 걱정 때문에 더 집중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수업 때는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단순히 내가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밥을 먹으러 간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닌, 수업을 들을 때 집중을 하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동기들과 밥을 먹으며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지에 집중해 일기를 적는 것이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엔 힘이 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엔 힘이 있다.
ⓒ Unsplash의Aaron Burden

관련사진보기

 
'9모(9월 모의고사)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제 와서 공부 좀 할 걸 후회가 된다. 머리로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공부를 안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 요즘은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싶기도 하다. 대학은 갈 수 있을지...'

'학원에서 상담을 했다. 9모를 끝내고 하는 상담이었는데 선생님께 한소리를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많이 속상했다. 그래도 얼른 다시 정신 차리고 공부에 집중해야 할 텐데 겁이 난다.'

'학원도 가기 싫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에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독서실도 가야 되는데 안 가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대학은 갈 수 있을지도 너무 걱정돼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다.'


이 내용은 모두 내가 대학 입시를 했던 고3 시절 실제로 적은 일기다.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나의 모든 불안과 걱정이 담겨 있다. 기분이 좋거나 재밌는 일기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한 글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일기를 통해 나는 위로를 받는다.

대학 진학이 가장 큰 목표였던 그때의 나는 매일매일 걱정과 불안, 자책과 함께 지냈다. 입시 마무리까지 세 달을 남긴 때였고,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결국에는 버텨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힘든 시기를 버텨낸 나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때와 같은 시련이 와도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고 잊혀 결국 '고3 때 힘들었지' 정도로 단순하게만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기를 통해 그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함으로써 그 당시의 나를 떠올리고, 지금의 내가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별 것 아닌듯한 일기, 왜 중요하냐면 
 
다이어리 사진
▲ 일기 다이어리 사진
ⓒ Unsplash의Joyful

관련사진보기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일기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이 미래의 나에게 많은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친구의 추천으로 휴대폰으로 일기를 쓸 수 있는 어플을 다운받게 되었다. 그 후 하루가 너무 지치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일기를 쓰곤 했는데, 문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감정을 절제하여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최대한 솔직하게 옮겨 적는 것에 초점을 두고 썼다.

순간의 감정은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힌다. 다시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일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감정, 기분, 생각을 모두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도움에 더해, 솔직한 일기는 단순히 행위를 나열한 일기보다 일기를 썼던 당시를 더욱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가 힘들었을 때 적어놓은 일기를 한 달쯤 뒤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 써둔 일기를 보고 나는 '이때 이렇게 힘든 일이 있었는데도 이겨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에 일기에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놓은 덕분에 현재에도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일기는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이 다시 나에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때의 나처럼 다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해주었고, 이 생각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일기쓰기는 내게 많은 변화와 용기를 줬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일기를 쓸 것 같다. 4년 전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일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면서 어떤 일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했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 두려움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매일 쓰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가끔 기록해두고 싶은 날 또는 감정이 있다면 어디든지 적어두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분명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의 본인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태그:#일기, #발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주가영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