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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8월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인터뷰 내용.
 지난 2021년 8월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인터뷰 내용.
ⓒ YTN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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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보다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라고 말한 과거 인터뷰가 알려져 지탄받은 적이 있다.
  
당시 윤 대통령도 밝혔듯이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밀턴 프리드먼의 대표적인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의 내용이다(과거 이 책을 번역 출판한 적이 있는 자유기업원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대통령이 읽은 경제교과서"라는 타이틀을 추가해 2022년 개정판을 출판했다). 프리드먼은 개인이 정부 등의 간섭없이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과연 나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는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대표적인 문제는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을 먹을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최고급 호텔의 뷔페를 (매끼) 먹을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노동자가 어렸을 때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크기로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강남 '아크로비스타'에서 사는 것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이 '선택할 자유'를 노동문제에도 가져와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한 뒤 쉴 수 있도록"하자며 감사하게도 노동자에게 시간선택의 자유를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말대로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 편히 몇 주간 회사를 떠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노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휴식시간에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자유'를 선택한 노동자에게는 일터에서 쫓겨나 '굶어 죽을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노사관계에서 노동자는 '선택할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애초부터 노사간 힘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가(사용자)는 일정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있고 사업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버틸 여력이 있지만 노동자는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노동법이다.

노동법의 기본 정신은 자본가와 노동자 간 처음부터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사회가 개입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사간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에게 단결해 싸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노동법의 보호를 받더라도 현실에서는 노사간 힘의 불균형이 해소되진 않는다. '재벌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세라젬 특고노동자의 '선택할 자유'
 
지난 11월 15일 세라젬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침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세라젬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침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 가전통신서비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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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헬스케어 업계 1위라는 세라젬은 고객 집을 방문해 안마의자 등을 점검해주는 서비스를 축소하겠다며(종국적으로는 폐지) 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HC(힐링컨설턴트) 매니저들과의 계약을 해지해 나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HC 매니저들은 가정을 방문해 제품 원리와 사용법을 안내하고 제품 점검, 가죽 클리닝, UV 자외선 살균 등의 업무를 수행해온 방문점검원(특수형태근로종사자, 아래 특고노동자)이다. 현재 300여 명 정도 되는 HC 매니저들은 회사의 방침이 변함에 따라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HC 매니저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주류 지배층)는 특고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있는 노동법이라는 보호 수단을 박탈한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사용자 측과 특고노동자가 대등한 지위에 있다는 것이며 그런 관계 속에서 계약이 체결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특고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계약(위수탁계약서)이 과연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에 의해 이뤄지는 계약인가.
 
세라젬 본사 앞에서 구조조정에 항의하고 있는 세라젬 노동자들.
 세라젬 본사 앞에서 구조조정에 항의하고 있는 세라젬 노동자들.
ⓒ 가전통신서비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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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HC 매니저 앞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놓여있다. 회사와의 계약을 유지(혹은 연장)하려면 영업만을 하는 HC 프로(pro)로 전환을 하든지 아니면 회사가 주는 200여만 원 정도 되는 사례금을 받고 합의계약해지 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회사는 '며칠까지'라는 시한을 정해두고 이를 넘기면 사례금도 없다고 압박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집에 낯선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고객들이 늘어 정기방문점검 서비스를 줄이고 대신 HC 직원들이 안정적 임금을 챙길 수 있도록 높은 영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HC 프로는 아무런 기본급이 존재하지 않는 영업직이다. 영업을 하지 못하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방문점검을 통해 조금이나마 확보했던 안정적인 소득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무런 네트워크나 기반 없이 200만원 이상 하는 안마의자(주력제품은 500만원 이상하는 온열치료기) 등을 몇 건씩 판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가전통신서비스노조 세라젬 지부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HC 프로로 전환하겠다는 HC 매니저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이들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HC 매니저들에게는 회사가 선심 쓰듯 주는 사례금을 받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든지 아니면 영업직으로 전환해 결국에는 손가락을 빨고 있을 '자유'밖에 없다.

세라젬을 업계 1위로 키워낸 1등 공신 중 한 명인,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가며 세라젬 제품을 알려온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버려져야 하는 존재인가.
  
세라젬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세라젬 본사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세라젬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세라젬 본사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가전통신서비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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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자유'를 그렇게도 중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선택할 자유'는 정부의 개입을 배제한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와 장치들이 필요하다.

매번 연설 때마다 수십 번 강조하는 그 '자유'를 특고노동자에게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노동법의 보호로부터도 배제된 특고노동자는 '선택할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헌법 32조의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태그:#세라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고,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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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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