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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박찬운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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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경험과 소회를 담은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를 29일 출간했다. 지난 2월 6일 퇴임한 지 10개월여 만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법 학자이자 인권변호사인 박 교수는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기 앞서 20대에 법률가가 되어(1984년 사법시험 합격),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변호사로 일하면서 양심수, 사형수, 난민, 한센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올해 초 3년간의 인권위 상임위원 역할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그는 '인권' 분야에서만 40년 가까이 올곧이 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책을 출간하기 직전 서면 인터뷰를 통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인권 보장은 국가 의무 중에 핵심"

책에 대한 질문에 앞서 '한 국가에서 인권이 왜 중요한가'를 물었더니, "우리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특히 박 교수는 "대한민국은 우리의 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인권 보장은 국가 의무 중에서 핵심 중 핵심이다. 이것을 등한시하는 어떤 정부도, 우리 국민은 반대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3년을 기록한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박찬운 지음).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3년을 기록한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박찬운 지음).
ⓒ 혜윰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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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박 교수가 이번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어 첫 출근을 하는 날 결심한 게 있습니다. '공직에 나가 있는 3년 동안 내가 경험하는 일들을 모두 기록할 것이다. 내 경험을 그저 개인의 기억 속에 두지 않을 것이다. 기록하고 또 기록해 내 경험을 역사로 만들 것이다. 그것이 고위 공직에 출사하는 사람의 태도다.' 저는 이 결심을 임기 내내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가끔 피곤하고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이 기록만큼은 일상의 습관으로 확고히 만들었습니다. 집으로 퇴근하면 첫 번째 일은 그날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늦게 귀가하면 다음 날 새벽 어제의 일을 반추하면서 기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록을 하다 보니 3년 1개월 동안 200자 원고지 6000장 정도를 썼습니다. 실로 방대한 양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글을 쓴 사람도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닙니다."


평소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박 교수가 자신의 철학을 실천한 것이다. 박 교수는 인권위 상임위원에 몸담기 전 페이스북 등에 왕성한 글쓰기를 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른바 '프로 기록러'였던 그는 고위 공직인 상임위원(차관급)에 임명되자, 외부 글쓰기 중단을 선언하고 오롯이 인권위 활동에만 집중했다. 

-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난 3년간 저는 인권위의 사관(史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기록 속에는 3년의 제 경험 모두가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다룬 사건의 내막, 제가 쓴 결정문 중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들의 내용, 인권위 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에피소드, 인권위 사람들에 대한 평가 등등. 후일 이 기록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있는 문서로 평가받을 겁니다. 

만일 제가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면 인권위의 공적 기록물은 남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는 인권위 역사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록가'인 박 교수는 자신의 업무와 삶을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한 개인의 '일과 삶의 역사'란 기록을 넘어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2001년 인권위가 출범한 이래 20여 년의 역사가 흘렀고, 그동안 수많은 인권위원이 재임했었지만 인권위와 인권위원에 대한 자세한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이 책이 최초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사건 등 생생한 뒷이야기 담겨 

- 3년의 기록이 200자 원고지로 무려 6000장 분량인데, 어떤 내용을 담았나.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이 기록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기록은 있지만 그것을 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기록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들 이야기가 활자로 세상에 나온다면 피차 마음 편치 않을 일이 생길 것 같아 걱정됐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 책을 내는 의도와는 거리가 머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생각 끝에 남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줄이고 제가 한 일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3년간 무슨 일에 집중했고 무슨 고민 속에 그 일을 했는지 솔직 담백하게 보여주자! '인권위가 인생 전체'라고 생각한 사람이 3년 동안 어떤 분투의 삶을 살았을까. 그것은 인권위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라면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인생을 달관한 명사들이 노년기에 쓰는 회고록과 같은 인생론과는 거리가 멉니다. 인권위에 숨은 어떤 비사를 폭로해 세상의 관심을 끌 생각으로 쓰는 회고록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한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삶을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겨 그것에 기초해 쓴 '일과 삶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의의가 있다면 이런 기록은 인권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지요."
 
2021년 1월 25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인권위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했다.
 2021년 1월 25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인권위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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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책 곳곳에서 지난 3년간 인권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이슈에 대한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았다. 대표적인 것이 '박원순 시장 사건'을 처리하면서 경험했던 고뇌,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탈북어민 강제송환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논쟁, 평등법 제정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경과,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서 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인권위 내 갈등 등이다. 

특히나 책에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인권위의 인권위원 구성원이 바뀌면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이 시끄러운 인권위 운영에 생긴 큰 변화에 대해 일갈하는 제언도 담겼다. 많은 이들이 '인권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라고 할 만큼 걱정스러운 인권위 상황을 이해하는데 이 책이 요긴한 이유이기도 하다. 

-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 점은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저는 이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를 통해 인권위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인권위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 것인지 우리 국민들이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권위원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이 두 가지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제 경우를 들어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인권위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을 하기 위해 인권위원은 어떤 자세로 어떤 전문성을 갖고 일해야 하는지 이 책을 천천히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인권위의 문제는 이런 두 가지 요건을 갖춘 인권위원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이니만큼 그 의의는 충분하다고 할 것입니다."

박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라고 말한다. 책 곳곳에 인권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녹아있다. 퇴임 후 다시 페이스북 글쓰기를 시작한 박 교수는 "요즘 인권위 사태를 보면서 착잡하기 그지없다"고 안타까움을 전한다. 

그러고는 "이 책 출간은 저로선 숙제나 마찬가지였다. 인권위 미션이 이 책 출간으로 실질적으로 끝났다"면서 "3년 1개월 일하고, 10여 개월 그것을 정리했으니 사실상 제 임기가 4년이란 생각이 드는군요"라고도 적었다. 인권위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덧붙여 박 교수는 "마음이 후련하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라면서 "이렇게 해서 한 시절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프로 기록러'로서 숙제를 끝낸 후련함이겠지만, 아마도 박 교수는 이후 우리 사회의 불편 부당함에 직면하면 그 누구보다 먼저 주저 없이,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쓴소리를 세상을 향해 던질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신은 그가 40년간 법률가로 살아오면서 인권 분야를 개척해 오면서 몸소 보여준 행적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한 박 교수는 평소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인문·사회·과학·문화·예술 등 명저들을 틈나는 대로 읽고 세계를 여행하고 그 기록들을 기사로 남겼다. 아울러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담아 쓴 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100건의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 박찬운 기자 페이지 바로 가기 ).

이와 같은 삶을 살아온 '인권 전문가' 박찬운 교수가 '기록'한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에 어떤 기록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터뷰 ①] "인권위,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지금이 더 심각"(https://omn.kr/26kod)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 인권위 상임위원 3년의 기록

박찬운 (지은이), 혜윰터(2023)


태그:#박찬운, #기록하지않으면존재하지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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