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의 한 장면

유튜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의 한 장면 ⓒ BOXMEDIA

 
얼마 전, 12살 딸아이의 성화로 피자를 시켜 먹었다. 해당 브랜드의 어떤 메뉴를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에 정말 먹고 싶었나 생각했는데, 정작 배달 온 피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딸려온 광고 모델의 '포카'(포토카드)를 확인하며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내가 농담으로 그 아이돌을 희화화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삐진다. 딸아이의 용돈은 대부분 아이돌의 소속사로 입금되고 아이가 수집한 아이돌 굿즈는 보물이나 다름없다. 10대들에게 아이돌이란 과연 무엇인가. 거의 '신' 급이다. 

그래서 어떤 공인보다 아이돌의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는 10대들이 수천, 수만 명일테니 말이다. 좋은 얘기도 엄마가 얘기할 때는 귓등으로 안 듣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얘기하면 즉각 행동으로 옮긴다. 

담배는 '노담'이라면서, 왜 술은 괜찮나요?

최근 유튜브에서 '술방'이 많이 눈에 띈다.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신동엽의 짠한 형> <조현아의 목요일밤> <슈취타>(슈가와 취하는 타임), 지상렬의 <술먹지상렬>, 풍자의 <풍자애술>, 다나카의 <다나카세> 등. 이름을 읊자면 숨이 찰 정도로 다양한 술방이 인기다. 술방 그 자체로도 아슬아슬해 보이는데 아이돌이 게스트로 출연해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은 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BTS부터 아이브 유진, 에스파 카리나 같은 아이돌이 음주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유튜브의 조회수는 백만이 훌쩍 넘어선다. 방탄소년단 진이 출연한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영상은 현재 조회수 2178만 회를 넘었고, 블랙핑크 지수 편은 1970만 회 조회수에 육박한다.

물론 아이돌도 성인이면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다. 특히나 담배는 그렇게 '노담'(노 담배)이라고 외치면서 술은 아무렇지 않게 '예스 술'이라고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술과 담배는 똑같이 발암물질 1급으로 규정되어 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이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상이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TV에선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올 때, 화면의 우측 상단에 15세나 19세의 시청 등급이 표시된다. 하지만 유튜브에선 연령 제한이 없다. 어린 아이들도 제약없이 술 방송을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다. 국내의 주류광고에 아이돌을 기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근 카리나가 맥주 광고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딸을 통해 전해 들었는데 솔직히 썩 달갑진 않았다.

점차 늘어나는 음주 청소년 비율
 
 롯데칠성 맥주 '크러시' 광고 캡쳐

롯데칠성 맥주 '크러시' 광고 캡쳐 ⓒ 롯데칠성

 
카리나는 만 23세이다. 미국, 프랑스와 같은 외국에서는 25세 이하 주류광고 모델 기용을 자율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아이돌 등 젊은 연예인들이 술 광고에 나오는 곳은 한국을 제외하면 많지 않다. 지난 2015년 만 24세 이하는 주류광고에 출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화제가 된 적이 있으나,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법적 제재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은 우려될 수밖에 없다.

TV나 광고에서 치킨 먹는 장면을 보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켜게 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누가 먹는 걸 보면 따라먹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당연한 심리다. 술도 마찬가지다. 누가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는 장면을 TV에서 볼 때면 나도 덩달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술을 마시는 아이돌 멤버들을 보는 10대들에게도 아마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1년 기준,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술을 접하는 연령대가 평균 13세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음주 청소년 비율이 1년 새 21.5% 증가한 걸로 조사됐다. 광고는 광고일 뿐, 술방은 술방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술자리가 재미있듯 술방의 재미도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힘들면 술 한 잔, 솔직해지려면 또 술 한 잔, 재밌으려면 또 술 한 잔. 자꾸만 술에 기대도 괜찮다고 부추기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술 마실 자유는 존중하지만, 미성숙한 아이들을 염려하고 지켜주는 사회, 그런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술방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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