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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이 선사 측에 있다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나왔다. 6년 만의 결과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
 5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이 선사 측에 있다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나왔다. 6년 만의 결과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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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사고 관련자 폴라리스쉬핑에 시정할 것을 명령한다."

6년 전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와 관련해 선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주문이 나오자 미수습자 허재용씨의 큰누나인 허영주(46)씨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는 재결서가 낭독되는 동안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피고와 원고, 심판관이 모두 빠져나간 심판장 자리도 이내 울음바다로 변했다. 허씨의 어머니인 이영문(74)씨가 같이 눈시울을 붉힌 채 "고생 많았다"라며 딸을 얼싸안았다. 주변으로는 이들과 함께한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이들을 다독였다.

5일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은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으로 선사의 과실을 인정하고 시정을 명령했다. 배가 침몰한 이후 미수습자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사태의 진상규명에 목소리를 낸 지 6년 만에 나온 정부 기관의 결론이었다.

폴라리스쉬핑에 시정명령 내린 부산해양안전심판원

이날 오후 2시 부산지방해양수산청 5층 심판장. 유병연 심판관은 피고 격인 폴라리스쉬핑을 상대로 "설계상 승인되지 않은 격창양하(선박에 화물을 불균등하게 적재하는 방법 중 하나), 배 밑바닥에 미승인 선저폐수 저장장치의 설치, 그 외 선박유지·보수 충실 주의의무를 미흡 등이 맞물려 참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시정명령서를 읽었다.

이는 지난 2020년 2월 부산해심원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심판청구가 접수된 지 3년 10개월 만에 내려진 공적 판단이다. 부산해심원은 그동안 4차례의 심리, 진술 과정을 거쳐 이날 심판정에서 재결 내용을 공개했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과 비교하면 해양심판의 첫 판결이 나온 셈이다.

부산해심원은 선원들의 조종행위, 악천후나 다른 선박과의 충돌로 인한 사고 등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실제 원인은 선사의 관리 소홀에 따른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선사가 승인없이 구조적인 변경, 무리한 항해를 밀어붙인 게 가장 큰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유 심판관은 "폴라리스쉬핑은 보강수리를 하지 않고 격창양하가 이루어지면 격벽 하부의 부담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용 증가를 이유로 한국선급의 고지를 받지 않고 이를 진행했고, 바닥의 미승인 선적 폐수 저장장치 설치 또한 무단으로 설치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론을 말하면 이와 같은 폴라리스쉬핑의 행위와 이 사건 침몰 및 선원 실종 관계는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선박 검사기관인 한국선급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과실 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산해심원은 유사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선령 15년 초과 선박에 대한 현상검사 구체화, 미승인 장치 설치 개도 강화 등의 개선을 권고했다.

"이제 형사재판의 상식적 판결, 2차 심해수색으로 가야"
 
5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이 선사 측에 있다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나왔다.
 5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이 선사 측에 있다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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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극히 상식적 판단을 얻는 데 6년 8개월이라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 모임 등 스텔라데이지호 미수습자 가족들과 지금껏 함께해 온 이들은 이날 재결을 크게 반겼다. 이들 단체는 재결 직후 입장 발표에 나섰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 정책위원인 송경용 신부는 "가족들이 눈물 마를 날 없이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다. 폴라리스쉬핑의 책임을 인정한 이번 결론에 고마움을 느낀다"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을 지원한 박훈 변호사는 "상식의 승리이고 침몰 원인을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고 심판부에 박수를 보냈다.

참가자들은 한국해양심판 최초로 이해관계인이 참석하고 진술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고 봤다. 이상진 부산운동본부 집행위원은 "수십 번의 계절이 바뀔 동안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책임자 처벌을 위해 걸어온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작은 위안이 됐을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부산해심원 1심 결과가 이제 폴라리스쉬핑 등을 상대로 한 형사재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폴라리스쉬핑 김완중 회장은 선박안전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2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고, 지난해 3월 다른 관련자 7명과 함께 업무상과실치사, 업무상과실선박매몰 혐의로 법정에 선 상황이다.

아직 여러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한 허영주 대책위 공동대표는 "다시는 이런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 즉 국가를 향해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폴라리스쉬핑은 이에 불복할 것이고, 형사재판에서도 본인들의 입장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선원들의 과실이 아니었단 점이다. 이들은 생명 안전을 뒷전으로 한 선사에 의해 바닷속에 내동댕이쳐졌다. (중략) 공신력 있는 결과가 나온 만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침몰 원인을 과학·기술적으로 밝힐 방법은 2차 심해수색이다. 이를 통해 원인을 더 명확히 밝히고 반드시 선원들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달라."

과거 유조선에서 화물선으로 개조된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 2017년 3월 31일 철광석 26만t을 싣고 브라질에서 출발해 중국으로 운항하다가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했다. 전체 승선원 24명 중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됐을 뿐 22명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를 놓고 현재 책임을 가리는 재판과 해양심판이 이어지고 있다.
 
5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이 선사 측에 있다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나왔다. 이를 환영하며 부산해심원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연 미수습자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5일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이 선사 측에 있다는 부산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이 나왔다. 이를 환영하며 부산해심원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연 미수습자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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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양심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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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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