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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7일 창원 용호문화거리 앞에서 열린 '기후위기 행동'.
 2023년 10월 27일 창원 용호문화거리 앞에서 열린 '기후위기 행동'.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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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열이 1도만 올라도 병원을 찾는데/지구 몸에 열이 1.1도가 올랐다고 하는데/지구는 찾아갈 병원이 없단다/이게 모두 내 탓인가 하고 마음이 쓰인다/사실 나는 눈앞 밥 한 그릇에 목을 맬 뿐/지구가 아프다 난리를 피워도 별 관심이 없다/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공장을/폼나게 때려치우고 싶을 뿐이다/그런데 지대가 낮아 홍수 걱정하던 나라가/가뭄 걱정을 하고 사막에 눈이 내리고/바닷물 온도가 올라가자 물고기들이 숨 쉴 수 없어/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다고 한다/도망친다고 갈 곳이 있을까/이런 생각을 하다가/공장에서 밀려나면 나도 갈 곳이 없어/지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생각밖에 없는데/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매연이/공장에서 사용한 기름이 물이/사용하고 난 플라스틱제품이 문제라고 하는데/나는 동의할 수 없다/먹고 살기 위해 일 한 죄 밖에 없는데/지구가 이대로 가다가 다 죽는다면/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지구를 열받게 하는 이는 나 같은 노동자가 아닌데/나보고 쓰레기 줄이고 분리수거 잘하고/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라며 자꾸 양심에 불을 댕긴다/누가 자꾸 내 밥그릇을 빼앗으려 하나/신은 나를 착하다 등 두드리는데/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왜 가난한 나에게 해당하는지/억울하고 억울하다"

<당신이 전태일입니다> 등 시집을 낸 표성배 시인이 쓴 '나는 억울하다'는 제목의 시다. 지구 온난화·기후위기·탄소중립이 강조되는 시대에 시인은 공장 노동자로서 열심히 일한 대가가 오염의 주체라는 누명이어서 '억울하다'고 하면서도 누구나 '기후위기 대응'을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 시는 객토문학동인들이 펴낸 열 아홉 번째 시집 <설마, 우리 대까지는 괜찮겠지>(도서출판 수우당 간)에 실려 있다. 김성대, 노민영, 박덕선, 배재운, 이규석, 이상호, 정은호, 최상해, 허영옥 시인이 함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환경재앙"을 고민하고자 관련 시들을 창작해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객토문학동인들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기후위기의 지구촌 앞에 어떤 시도든 멈춰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문학적 외침과 호소를 세상에 내어놓는다"라고 말했다.

1부에서는 '기후위기와 환경'을 주제로 동인들이 모두 참여한 기획시를 선보였고, 2부 '시 마당'에서는 각자 시 세계를 펼쳐 놓았다.

객토문학동인은 "현세 지구촌의 한 사람으로 해마다 기후이상 현상과 자연재해 소식을 접하며 살고 있지만, 기후와 환경 전문가가 아니라는 일반적인 생각 때문이었는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다"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문학이 삶 속에서 피듯이 인류는 물론 온 지구생명 삶의 바탕이 되는 지구가 기후와 환경오염으로 위기에 닥쳐가고 있고, 재앙을 겪는 일이 해마다 빈번해가고, 그 강도도 더욱 거세져서 지구촌의 숱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시인으로서 무언가는 몫을 해야겠다는 시점에 이르렀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번 19집에서는 짧은 시의 부족한 한계가 있겠지만 지구와 생명의 공생을 위해 당대를 안일함을 되돌아보고 막연한 미래의 염려를 좀 더 가깝게 당겨보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기후위기' 고민 담아내... "혁명적 노력 기울이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김성대 시인은 '일상'에서 환경으로 인한 불편을 모두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사고에 대해 지적하고, '끝내 우리 꿈을 이뤄요'에서는 깨끗했던 과거를 오염을 줄이는 현재가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노민영 시인은 '어긋나는 순간'에서 맺고 피고 지는 생물들이 기후오염으로 어긋나 열매를 맺지 못해 농부가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미지의 세계'에서는 이제 기후 비상의 행동은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박덕선 시인은 '열탕지구'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과 이산화탄소 산업시설의 절제를 외치고, '또 그 소리'에서는 과학이 오염을 다 해결 해 줄 거라는 맹신을 우려하고 있다.

배재운 시인은 '망각'에서 4대강 공사로 수많은 생명을 묻은 강물 속에 보이지 않는 오염을 생각하고, '그들도 받은 만큼 돌려준다'에서는 강으로 흘러든 오염수가 밥숟갈에 오르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흔들리면 무너진다'를 쓴 이규석 시인은 흔들리는 인간의 양심이 지구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경고신호'에서 기후위기가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는다고 외면하는 의식을 꼬집고 있다.

이상호 시인은 '티브이 신'에서 해양오염으로 죽은 고래 사채 뉴스를 언급하고, '낙화'를 통해 불꽃놀이처럼 인간의 화려한 욕심이 화를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공포'라는 작품을 낸 정은호 시인은 문명도시의 사람들이 먼 네팔을 녹이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었고, 또 다른 시 '더운 몸'에서는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사라진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최상해 시인은 '명의'에서 오염의 근원을 치료할 비방이 없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담았고, '일방통행'은 좋아했던 바다가 오염으로 갈수록 난폭해지는 이유를 반성하고 있다.

표성배 시인은 '온 몸이 밀알이 되리라'를 통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곡식의 터전에 밀알이 되는 마음으로 대지를 품겠다고 했다.

허영옥 시인은 '환경오염 주범'을 통해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오염을 줄이는 일상을 안내하면서 정작 자신의 일상도 부끄럽다고 고백하고, '137일'에서는 북극에 얼음이 녹아 북극곰이 먹이활동을 못한 시간을 언급하며 기후재앙을 실체를 제시했다.
 
객토문학동인들이 펴낸 19집 <설마, 우리 대까지는 괜찮겠지> 표지
 객토문학동인들이 펴낸 19집 <설마, 우리 대까지는 괜찮겠지> 표지
ⓒ 객토문학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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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들은 "지구 온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지금, 위기에 무감각하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오늘을 지탱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제라도 어떤 형태와 방식이든 혁명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박덕선 시인은 인사말에서 "환경위기와 관련한 어떤 얘기를 시도해도 어디서 다 다룬 이야기이고 누구나 다 하는 주제들이어서 그 일반성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라면서 "동인지를 묶으며 우리의 외침을 듣는 독자들이 무릎을 치며 자각하고 각성하며 환경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깨달음의 글을 써보고 싶었으나 그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반성이 깊다"라고 말했다.

객토문학동인은 1990년 마산창원에서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시를 쓰는 모임으로 출발했다. 이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인들이 모였으며, 2000년 첫 동인지를 내고 꾸준하게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다.

객토문학동인들은 오는 16일 오후 3시 경남 창원 용호문화거리 앞에서 경남작가,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마창진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출판회·시화전을 연다.
 
일상

김성대

서리가 내린 뒤에도
애기똥풀이 꽃 핀 것을 그저 바라보았다
단풍 드는 가을에 산철쭉 꽃이 피어도 난 아무런 의문이 없다
11월 늦가을인데 낮 기온이 30.7도를 기록하여
반팔 입으면서도 '다시 여름인가' 물을뿐이다
여름에 많은 비 내리고 날이 따뜻하니
한겨울에 모기들 때문에 밤잠 설쳐도 아침이면 모기 탓만 한다
꽃은 꽃가루받이를 통해서 씨앗을 생산하는데
가루받이 꿀벌들이 줄어들고 있어도 난 아무 걱정이 없다
이상저온 냉해 우박이 많아져 농사짓는 사람들
한숨소리를 자주 듣지만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가뭄이 심해지고 태풍이 더욱 강해져도 난 아무 피해가 없으니 다행이다
산불이 늘어나 숲이 자꾸 사라져도,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양버즘나무가 잘려 나가도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바닷물 수온이 올라 산소 부족으로 정어리 떼가
마산만에 엄청나게 떠올라도, 어찌 되겠지
TV에서 북극곰이 줄어들고 빙하가 녹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 일이다
배꼽시계에는 민감하지만
기후 위기 시계를 보아도 난 아무렇지 않다 코로나19도 끝났고
온실가스 저감 없이 배출되는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우리나라 해수면 높이가 2050년 25㎝까지 오른다는 뉴스가 나와도 먼 미래 일이다
내 자식들이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이하든지 말든지 먹고
살기 바쁘다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 소리를 듣든지 말든지

태그:#객토문학동인,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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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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