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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차기 교황 물망에까지 올랐던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이 바티칸 법원에서 징역 5년 6개월 형을 받았다. 혐의사실은 공금 횡령, 직권 남용, 위증 교사다. 이거 뭐 속세의 잡범 수준이 아닌가? 원래 바티칸 검찰은 그에게 징역 7년 3개월을 구형하고 그가 가진 개인 재산 1400만 유로(한국 돈 약 200억 원)를 몰수하고, 벌금 1만 유로(한국 돈 약 1500만 원)를 부과할 것을 법원에 요청했었다(관련기사: '교황청 실세' 베추 추기경, 투자 비리로 징역 5년 6개월 https://omn.kr/26s1s).

올해 75세인 베추는 한때 교황청의 최고 실세인 국무원 장관에다가, 일반인을 거룩한 성인으로 만들 수 있는 시성성 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런 그가 부동산 투기꾼들과 놀아나면서 돈 잔치를 하다가 감옥에 가게 것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기가 차기보다는 이상할 것이다. 처자식도 없고,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돈은 무한히 쓸 수 있는 교황청 장관 추기경 자리에 있는 사람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런 불법을 저질렀을까? 

베추가 더 문제가 되는 점은 그가 유용한 돈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코 묻은 돈을 모은 '베드로 성금'이라는 사실이다. 이 헌금은 교황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도록 모은 돈이다. 그런데 그 돈을 국무원 장관이 교황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쓴 것이다.

게다가 베추는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1년 7월 24일 교황과 통화하면서 몰래 대화를 녹음하는 짓까지 저질렀다. 자기 재판에서 교황을 걸고넘어질 심산이었을 것이다. 이 대화의 주요 내용도 돈 문제였다. 베추는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 중개업자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준 것으로도 밝혀졌다. 결국 그런 식으로 빼돌린 돈으로 20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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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자영업, 가톨릭은 프랜차이즈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는 정기적으로 교황청에 돈을 보낸다. 개별 성당에서 신자들에게 교무금 명목으로 돈을 거두는 것에 더해 특별 성금 명목으로 수시로 별도의 돈을 거둔다. 그렇게 모은 돈의 일부를 교황청에 보내게 되어 있다.

가톨릭은 개신교처럼 십일조에 목을 걸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무금도 수입의 10%로 정하지 않고 자유 재량에 맡기고 심지어 안 내도 개신교처럼 닦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신교의 헌금, 특별 헌금, 건축헌금, 감사헌금 등등 돈타령이 지겨워 가톨릭으로 전향하는 신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가톨릭도 돈타령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개신교식으로 그래프까지 그려서 공개하고 목사가 수시로 단상에서 돈타령하는 식으로 직접 강요는 안 하지만 은근히 돈을 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톨릭이 개신교와 다른 점은 교황청의 존재다. 개신교는 개교회주의로 결국 그 모든 돈이 목사를 정점으로 사용되지만, 가톨릭은 수입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교황청에 낸다. 말하자면 개신교는 자영업이고 가톨릭은 프랜차이즈인 셈이다. 본사에 일종의 '로열티'를 내고 가톨릭이라는 상표를 사용하는 것이다.     

교황청은 이렇게 개별 국가의 성당에서 로열티만 거두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포함한 사업도 한다. 특히 바티칸 자체가 주요 관광지이기에 그 수입만 해도 엄청나다. 게다가 돈놀이도 한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다. 건물 임대료 수입도 짭짤하다. 여기에 자잘하지만 우표와 동전, 관광 기념품 판매로도 쏠쏠한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바티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하느님도 모른다. 역시 가장 큰 수입원은 헌금과 각국의 성당에서 정기적으로 교황청에 보내는 '로열티'다. 그 가운데 베드로 헌금은 교황이 직접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고 맹세하고 거두어들이는 돈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베드로 헌금이라는 말은 서기 1031년쯤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런 명목의 돈을 거두어들인 것은 더 오래되었다. 서기 725년 색슨의 왕인 이나가 로마 순례를 가면서 교황청에 돈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 돈은 자기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서 헌금을 받은 것이다. 다만 이때만 해도 땅이 있는, 즉 돈이 좀 있는 자들에게서 이 헌금을 거두었다.

이 돈이 베드로 헌금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 돈을 모으는 날이 빈쿨라(vincular)의 베드로 성인의 축일인 8월 1일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직제자인 베드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교황이 '제1대 교황'인 베드로의 후계자이기에 당연히 이 헌금을 교황이 맘대로 쓸 수 있다고 여긴다. 말도 안 되는 기원이자 믿음이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이 돈을 그만 보내도록 명했지만 그 뒤에도 왕의 기분에 따라 이 돈을 보냈다 말았다 했다. 그러다 마침내 이혼 문제로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와 성공회를 세운 헨리 8세 때 영국은 이 돈을 완전히 보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현재 영국의 가톨릭은 이 돈을 교황청에 꼬박꼬박 보낸다.      

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라고 정확히 용도를 지정하고 게다가 교황만이 사용해야 한다는 교회법이 있는데도 국무원 장관으로 이 돈에 손을 대고 마음대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바로 베추다. 문제는 이런 돈과 권력, 세속적 탐욕과 관련된 교황청의 비리 역사가 매우 길다는 사실이다.

가톨릭 교회의 세계 본부인 교황청은 정치적으로는 바티칸 시국과 동일한 기관이다. 어느 국가든 권력과 돈이 모이고 소수의 권력자가 그것을 주무르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다. 교황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예외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바티칸의 부패는 오래전부터 심각한 수준으로 이어져 왔다.

예수는 돈과 세속적 권력을 혐오하고 제자들에게 하늘나라가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바티칸의 최고 권위자들은 돈과 권력에 맛들어 마피아나 다름없는 짓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정말로 하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교황이 바티칸의 구조적 부패 고리를 끊어버리려고 노력한 일이 종종 있어 왔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도 시도한 바가 있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도 2013년부터 10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베추가 보여준 것처럼 바티칸은 아직도 이 모양이다.

어떤 조직이든 한번 부패로 물들면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 집을 짓지 않는 한 부패 척결은 불가능하다. 부패의 고리는 그만큼 질기기 때문이다. 그저 프란치스코 교황이 더 힘을 내서 버텨보기만을 기원해 본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늙고 병약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해낼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1월 29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 참석해 신자들을 만나는 도중 기침하고 있다. 교황청은 전날 교황이 독감과 폐 염증 등 건강 문제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2023년 11월 29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 참석해 신자들을 만나는 도중 기침하고 있다. 교황청은 전날 교황이 독감과 폐 염증 등 건강 문제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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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불복종 정신으로 무장한 신자들이 교회 개혁해야  
   
가장 거룩해야 할 교황청이 썩은 조직이라는 이 현실 앞에서 가톨릭 신자는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 물론 많은 신자는 비록 성직자가 부패해도 예수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가톨릭교회에는 이른바 인효성(Ex Opere Operantis)에 대비되는 사효성(Ex opere Operato)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7성사와 관련되는 중요한 개념이다. 7성사에는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그리고 혼인 성사가 있는데 마지막 혼인성사 이외에는 모두 가톨릭 성직자가 거행해야 그 효과가 있다고 교리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초대 교회 때부터 이 효과와 관련하여 성직자의 '품질'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과연 범죄를 저지른 성직자가 거행한 성사가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곧 첩을 두고 재산을 빼돌리거나 실정법을 위반한 신부가 거행한 세례가 구원의 효과가 있냐는 것이었다. 결론은? 있다는 것이었다. 초대 교회부터 부패한 성직자가 넘쳐난 기독교의 현실에서 성직자의 비리가 나중에 드러났다고 해서 그 신부에게 받은 세례가 무효가 된다면 세례를 또 줘야 하고, 세례받은 신자의 신앙도 흔들리는 대책 없는 대혼란이 발생하기에 이런 조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사효성의 원칙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설사 바티칸에 베추 같이 타락하고 법을 어긴 추한 추기경이 넘치더라도 예수에 대한 신앙은 변함이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그런가? 성직자는 타락해도 신앙은 건전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논리적일까? 그런 논리로 교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은 이미 나왔다.

유럽의 기독교는 지금 붕괴 과정에 들어섰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차이가 없다. 그 붕괴의 원인은 바로 성직자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그런 사달을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언론에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 가톨릭교회만 해도 지난해에 약 50만 명이 교회를 떠났다. 이 추세는 가속화되는 중이다.

개신교도 다름없다. 그래서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였던 독일에서조차 기독교 신자는 독일 인구의 5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예배와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의 비율은 4%도 안 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기독교 성직자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막고 은폐해 온 교회 자체의 비리다.

이제 바티칸의 타락과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일이 점차 가속화될 것이다. 기독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예수가 직접 와도 교회를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한다. 과연 교회가 제정신을 차릴 날이 오기나 할까? 그런 날이 오기보다 프랑스대혁명을 일으킨 민중이 보여준 시민불복종의 정신으로 무장한 신자가 종교 개혁을 먼저 하는 것이 빠를 지도 모르겠다. 

태그:#베추추기경, #바티칸, #종교타락, #베드로헌금,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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