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8 18:18최종 업데이트 24.01.0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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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독일 베를린의 베를리너 스트라쎄 전철역 인근에 위치한 에데카 슈퍼마켓 매장의 과일, 야채 코너 ⓒ 최미연


2023년 4월 한 달 최저 식비 기록으로 147유로(20만 9000원)를 썼다. 식비가 최대 마지노선인 200유로(28만 5000원)를 넘지 않는데 이는 친구들을 만나도 좀처럼 외식보다 집에서 함께 요리를 해먹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한 지 1년하고도 5개월 차. 이곳에 살며 가장 만족스러운 점을 꼽으라면 단연 저렴한 식자재비와 교통비다. 현재 독일에서는 2022년 여름 석 달간 실행했던 9유로(1만 3000원) 티켓의 후속으로 한 달 49유로(7만 원)를 내면 독일 전역을 지역 기차로 무제한 다닐 수 있는 요금제가 진행 중이다.


200유로 식비가 가능한 배경을 부연 설명하자면 물가가 높은 외식비와 한국만큼 풍요로운 길거리 음식, 분식의 부재를 꼽겠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음식이 그나마 커리 부어스트, 훈제 소시지, 여름엔 딸기(딸기 가판대가 따로 열린다) 정도다. 일례로 독일 병원에서는 환자식으로 햄, 식빵, 버터, 토마토가 나오니 독일만큼 풍미에 대한 욕심이 없는 나라도 없어 보인다.

독일 베를린의 외식 시장은 베트남 식당이 주름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일 자체 음식이라고 할 만한 식당이 많지 않다. 길거리 음식으로 한 끼니를 간단하게 때우기에 가장 용이하고 흔한 되너, 케밥마저 튀르키예 이민자들에게서 유래 된 경우다. 하나에 4.5~6유로(6000~9000원) 사이인데 2023년 12월 기준 독일 최저시급은 12유로(1만 7000원)다.

쌀국수 하나에 10~15유로(1만 4000원~2만 1000원)라고 하면 그 돈으로 1인 기준 일주일치 장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많은 식당의 메뉴에서 김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소박한 한 접시에 무려 5유로(7000원)를 받는다. 참고로 양배추는 1kg에 1.79유로(2500원) 정도다.

물론 쌀국수 국물을 내는 데 필요한 각종 향신료며 김치가 흔하지 않은 유럽 국가에서 아시아산 배추를 사다 조리하는 여러 과정과 노동을 고려하면 나름 합당한 이유로 책정된 가격일 것이다. 다만, 한 번 외식을 하면 못해도 음료와 함께 20유로(2만 8000원) 안팎의 돈이 드니 이 금액으로 장 볼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해 볼 수밖에 없다.

며칠 전에는 2인 가구인 친구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셋이서 5000원이 안 되는 단호박 하나를 사서 400㎖에 1.89유로(2700원)인 코코넛유와 소금을 넣어 수프를 끓였다. 빵과 곁들여 비건 슈니첼(독일식 돈가스)도 2팩 사서 구웠는데 6000원이 안 되었으며 양도 많아 오히려 1개가 남았다. 수프 양 또한 친구 둘이 두 끼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남았으니 2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세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한 끼를 먹은 셈이다.

어느 마트를 갈 것인가
 

독일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건 대체육 코너로 빵에 얹어 먹는 대체햄부터 발라먹는 스프레드, 비건 슈니첼, 소세지 등이 있다. ⓒ 최미연


빵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답게 종류와 유기농 인증 여부에 따라 빵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500g 기준으로 유기농 치아바타는 2.89유로(4100원), 호밀식빵은 1.79유로(2500원)다. 나는 운 좋게도 빵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웃 덕분에 여기서 적지 않은 돈이 절약된다.

이웃 베티나씨는 비오 컴퍼니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해 판매할 수 없으나 먹기에는 하자 없는, 온갖 종류의 빵을 구해오는 자원봉사자다. 유기농만 취급하는 마트인 데다 독일에서 재배한 곡물들로 만들어진 빵으로 종류가 다양한데 그런 빵들은 500g 기준 5유로(7000원) 선을 웃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으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식재료 나눔은 다른 지역 단체나 개인 봉사자들을 통해 제법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슈퍼마켓은 대표적인 대형 체인으로 '아란툴라, 비오 컴퍼니, 에데카, 레베, 리들, 네토, 알디, 카우플란트, 페니' 등이 있는데 순차는 가격이 높은 것에서 낮은 순이다. 집 앞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는 아란툴라와 비오 컴퍼니지만 가격이 너무 높기에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에데카나 네토를 주로 이용한다. 두부나 쌀, 참기름 등을 살 때는 아시아 대형 체인 마트 '고 아시아'나 '빈 로이' 혹은 지역별로 있는 다른 아시아계 마트를 간다.

비건으로서는 자사 비건 제품 개발에 가장 활발하며 지난 10월 비건과 논비건 제품의 가격 동일화를 적용한 회사 방침이 마음에 들어 리들을 선호한다. 아침 주식으로 즐겨 먹는 바닐라 콩 요거트 500g을 일주일에 두 통 정도 먹는데 최근 들어 가격이 1.59유로(2300원)에서 0.85유로(1200원)로 하향되어 부담이 또 한 번 덜어졌다.

우유는 에데카 마트 자체 상품이 1ℓ에 1.25유로(1800원), 비오 마크가 붙은 것이 1.89유로(2700원)며 귀리유는 비오 인증에 자사 제품이 0.95유로(1400원)다. 카페 라떼 거품 만들기에 용이한 오틀리와 같은 제품은 2~3유로(2800~4300원) 정도지만 다양한 가격대와 종류의 대체유들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계란은 6개입 기준으로 유기농 제품이 3.79유로(5400원), 자사 상품은 1.89유로(2700원)다. 유기농의 경우 2000년부터 대체축산업협회에서 시작한 계란의 추적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바코드가 찍혀 있다고 적혀있다. www.kat.eu에 들어가 바코드를 입력하면 농장주의 이름과 산란 농장의 최신 사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그에 위치한 에데카 슈퍼마켓의 감자 코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감자들'이라고 적힌 문구 아래 갖가지 종류의 감자들이 진열되어있다. ⓒ 최미연

 
독일은 감자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모든 끼니에 갖가지의 감자 요리를 곁들인다. 에데카 슈퍼마켓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감자들'(Unwiderstehlich frische Kartoffeln)이란 문구와 함께 감자가 진열된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구이, 샐러드, 수프 등 요리의 용도에 따라 품종과 크기가 다른 감자 코너가 따로 있는데 평균 2.5kg에 1.99유로(2800원)다. 저렴한 가격에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이만한 완전식품도 없다. 그릴용 감자는 웬만한 햄버거 빵만 할 정도로 큰 것들도 있는데 이런 감자는 베를린에서 또 하나 사랑받는 패스트푸드 쿰피르(Kumpir)에 주로 사용된다. 이 요리는 튀르키예에서 유래했으며 구운 감자 안에 요거트, 올리브, 쿠스쿠스 등 다양한 토핑을 올려 먹는다.

이외에도 감자샐러드, 피클인지 조림인지 알 수 없는 유리병에 담긴 알감자, 물과 우유만 부으면 바로 매시트포테이토가 되는 감자 가루, 파스타처럼 볶아 먹는 감자면 등이 있다. 이미 반조리 된 독일식 감자전 또한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간편식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간장에 찍어 먹지만 이곳에서는 사과퓌레와 곁들여 먹으며 겨울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먹는다.

통계와 가격으로 보는 독일의 물가
 

에데카 슈퍼마켓 내에 품종별로 진열되어 있는 사과 코너 ⓒ 최미연


유럽의 중심지답게 사과의 품종 또한 다양한데 가격은 대체로 1kg 기준 2유로(2800원) 중후반이다. 오렌지는 2023년 3월 당시 1kg당 2.49유로(3500원)였던 것이 10월 2.99유로(4300원)로 50센트 인상되었다. 바나나는 1kg 기준 1.49유로(2100원)로 유기농은 20센트 비싼 1.69유로(2400원)다.

돼지고기 중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용은 1kg 기준 10.98유로(1만 6000원), 슬라이스는 1kg당 7.98유로(1만 1000원), 스테이크 부위는 1kg에 18.72유로(2만 7000원)다. 송아지 로스트비프는 1kg에 14.90유로(2만 1000원), 닭 1마리는 1kg당 7.99유로(1만 1000원)이지만 복지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통계 전문 사이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3년 10월 잠정 수치를 기준으로 독일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3.8% 상승했다. 독일 통계청은 2023년 11월 발표한 소비자 물가 통계 자료에서 올리브 오일이 전년에 비해 가장 높게 상승한 43.5%, 과일과 야채 주스는 18.6%, 설탕 16.9%라고 밝혔다.

케이크, 비스킷, 빵류는 15%, 감자칩은 16% 인상됐다. 오레오는 한 봉지에 1.69유로(2400원), 감자칩은 대체로 100g 기준 2~3유로(2800~4300원) 선이다.
 

에데카 슈퍼마켓에 진열된 신라면으로 독일의 다른 슈퍼마켓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최미연


1인 가구인 토비아스씨는 한 달 기준 식료품이나 외식비로 여름에는 대략 250유로(36만 원) 정도를 쓰지만 겨울 동안에는 50~100유로(7만 1000원~14만 2000원)를 쓴다. 이는 한 달 생활비의 5~10%를 차지하며 식료품 구매에 있어서는 영양소의 다양성과 가격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했다.

1인 가구이지만 룸메이트 2명과 함께 사는 니콜라스씨는 토비아스씨와 비슷하게 한 달 식비로 200유로(28만 원) 정도를 쓴다. 가계의 10%를 차지하고 대체로 비슷한 재료들을 반복적으로 구매한다고 했으며 휴지나 일부 조미료들은 같이 사는 사람들과 공유한다고 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식료품 구매에 있어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건강하지만 저렴한 가격', '다양성', '맛', '가격과 질' 등의 답변들이 따랐다. 신선한 식재료에 대한 접근성이 곧 복지의 척도이기에 물가 상승과 함께 여러 고민들이 엿보이는 대답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독일 통계청 사이트 출처  : https://www.destatis.de/EN/Themes/Economy/Prices/Consumer-Price-Index/consumer-prices-mess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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