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5 07:13최종 업데이트 24.01.15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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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지난 12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 슈테판 성당 근처 크리스마스 마켓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 한소정


2022년 말 나는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을 두고 오스트리아 정부가 다양한 정책으로 민생돌보기를 하고 있다고 썼다.(얼어죽을까 걱정... 정부가 국민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줬다, https://omn.kr/21m9m)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직후부터 오스트리아 물가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치솟았다. 지금은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인플레이션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정부가 나서서 월세 인상을 제재하던 것이 끝나면서 월세가 2022년 5월 전후로 한꺼번에 올랐다. 물가인상 문제는 그 이전부터 불거져 나온 것이라 월세와 에너지 가격 등에 캡을 씌우자던 논의가 있었지만 부결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이던 오스트리아 물가에 폭등 수준의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

1년 난방비 744만원+
 

지난 12월 비엔나의 한 슈퍼마켓 모습 ⓒ 한소정


아직 팬데믹 중이던 2021년 여름 빈으로 이사와 집을 구한 우리 가족의 경우, 팬데믹이 한풀 꺾이던 2022년 5월부터 월세가 대략 5.8% 올랐다. 2023년 5월에는 물가 인상을 반영한 금액을 새로 통보받았는데, 다시 8.6%가 인상된 금액이었다. 불과 1년여 만에 총 15%가량의 인상이 있었던 셈이다. 월세가 안정적으로 규제되는 편인 오스트리아에서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나마 시장가격이 규제되는 이른바 알트바우(1953년 이전에 승인된 '오래된 건물')에 사는 우리의 경우가 그런 것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 최근 지어진 집들은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없다. 세입자의 법적 보호가 잘 되어 있는 빈에는 할머니나 부모님의 월세계약을 물려받아 '옛날 가격'으로 세를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건물들은 이 같은 규제에서 자유로워 말 그대로 시장가격대로 움직인다. 지난 몇 년간 빈에서는 집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치솟는 시장 가격에 따라 엄청 올랐을 것이다. 


에너지 인상률은 한술 더 떴다. 우리는 중앙난방을 해서 집 안에서는 방별로 난방의 세기만 조절할 수 있고 가구마다 평방미터 기준으로 난방비를 나눠내는 형태인 건물에 살고 있다. 난방비는 매달 쓴 만큼 나눠내는 것이 아니라 매달 월정액을 나눠낸 뒤에 연말 정산을 통해 더 쓴 해에는 추가 금액을 내고 덜 쓴 해에는 돌려받는 식이다. 2023년 1월 이 월정액 난방비는 150%가량 올랐다. 매월 177유로 내던 것이 439유로를 내게 된 것이다. 한화로 따지면 25만 원쯤 내던 것을 62만 원가량 내게 된 것이다. 1년 난방비로 우리 세명 가족이 744만 원을 낸 것이니 에너지 비용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난방비가 오르던 무렵 우리는 겨우내 쓴 난방비 총액이 월정액으로 낸 돈을 초과했으니 추가 금액을 내라는 통보도 받았다. 우리 가구에만 1100유로(한화 156만 원) 가량의 추가 금액이 부과되었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아니더라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고 난방 자체가 불가능 해질지 모른다는 사회적 우려가 굉장하던 때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에너지 사용 절감을 위해 노력을 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던 겨울을 보내고 난 뒤라 이 추가 금액 통지서는 말 그대로 폭탄을 받아 든 느낌이었다. 우리 가족은 더구나 자주 쓰지 않는 방들은 난방을 꺼두고 최대한 아끼며 겨울을 난 터였다.

전기요금은 또 어떤가. 2023년 1월에는 당연히 전기요금도 올랐는데, 71%가 인상된 금액이었다. 핸드폰과 인터넷 가격도 대략 10% 올랐다. 종합하자면, 월세, 난방비, 전기비, 기타 관리비, 핸드폰과 인터넷 등 매월 고정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우리가 빈으로 처음 이사 왔던 2021년 여름과 2023년 1월을 비교해 무려 40% 증가했다.

최근 들은 좋은 소식은 올해 1월부터 다시 낮아진 에너지 가격을 반영해 난방비 월정액을 439유로에서 262유로로, 전기 월정액을 154유로에서 140유로로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24년에는 2021년 대비 고정비율 증가가 30%선 수준으로 낮아지게 될 것이다. 좋은 소식이지만 여전히 언론에서 말하는 물가 상승률과 동떨어진 체감물가다.

식료품 가격 확인할 때마다 '패닉'
 

지난 12월 비엔나의 한 슈퍼마켓. 커피빈은 1킬로그램 기준 10~22유로 사이이다. ⓒ 한소정


체감물가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내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나는 현재 빈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박사 후 연구원 동료 세 명에게 체감물가에 대해 물어봤는데, 편의상 A, B, C로 지칭하도록 하겠다. A와 B는 각각 아이 없이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고, C는 아이 두 명과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박사 후 연구원의 연봉은 이곳의 평균 연봉보다 높은 수준이다.

먼저 물어본 것은 '지난 1년여간 장 보면서 느끼는 체감물가상승률'이다. A와 B 모두 20-25% 수준이라고 답했다. A는 장 볼 때 가격을 늘 확인하고 뭐가 얼마나 올랐는지 따지는 습관이 있고, B는 그런 것 일일이 따지지 않는 타입이지만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C의 경우는 30% 라고까지 답했다.

이젠 모두들 한입으로 '뭘 사든 가격을 확인하게 되고 꼭 필요한지 생각해 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C의 경우 대체로 지출을 하고 가격을 확인할 때 '패닉'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덧붙인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어 돈이 들어갈 거리가 더 많은 입장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나만 해도 아이에게 들어가는 방과 후 비용이나 점심값 등 오른 것들이 많다.

이곳에 생긴 눈에 띄는 변화는 팁이 짜진 것이다. 팁이라는 문화는 워낙 주는 사람별로 다르고 방문한 식당과 바의 수준에 따라 기대치가 달라지는 것이라 논하기가 간단치는 않지만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는 대충 5% 수준이었다. 바에서 4.7유로 하는 음료를 한잔 마셨으면 5유로를 주고, 식당에서 80유로쯤 먹었으면 기분에 따라 83-85유로쯤 주고 하는 식이었다. 최근에는 간단히 마시고 먹은 경우에는 팁을 전혀 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혹시 팁을 주는 경우에도 이전보다 적게 준다고들 말한다.

식료품의 경우, 같은 걸 사더라도 20% 이상 오른 것이 많다. 대략 1년 반쯤 전과 비교하면, 1리터에 1.29유로 하던 포르밀 우유는 1년 반 사이 1.65유로로 올랐다. 1.2유로 선이던 250그램 버터는 1.95유로가 되었다. 500그램 한팩에 5.29유로 하던 순살닭고기팩은 6.29유로가 되었다. 1킬로그램에 0.99유로 하던 정제설탕은 1.59유로가 되었다. 500그램 한 상자에 7.49유로 하던 린트 린도어 초콜릿은 9.49유로가 됐다. 2.95유로 하던 욀츠 샌드위치 빵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식빵은 요즘 3.49유로가 됐다.

물론, 이전과 비슷한 것들도 있다. 특히, 철 따라 오르고 내리는 과일과 야채들 중 그런 것들이 더러 있다. 어떤 때는 개당 90센트도 하고 오르면 1.2유로쯤 하던 오이는 지금도 1유로 안팎으로 살 수가 있고, 개당 1유로 안팎 하던 큰 아보카도들은 요즘도 1유로 안팎에 살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드문 경우라서 장바구니 전체를 비교하면 20-25%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인플레이션 쓰나미"
 

지난 12월 비엔나의 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계산대 위에 올려 둔 모습. 모두 104.75유로, 한화로 14만 8000원 정도였다. ⓒ 한소정


다행히 1년에 365유로를 내면 빈 시내에서 트램과 버스, 메트로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연간이용권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빈시에 속한 회사이니 가능한 서비스다. 문화생활의 경우, 지난해 갔던 <마술피리> 오페라는 63유로에서 올해 75유로가 되었다. 20%쯤 오른 것이다. 빈 미술사 박물관을 비롯해 7개 박물관을 온 가족이 1년간 얼마든지 방문할 수 있는 가족 연간회원권의 경우 2022년 79유로였는데 2023년 84유로가 되었다. 6%쯤 오른 것이다. 이런 문화 관련 사업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되지만, 그 성격별로 물가상승 반영률이 꽤 달랐다.

매월 고정비용과 장바구니의 물가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물가상승지수와는 별개로 20-40%까지 널을 뛴다. 오스트리아는 노조활동이 활발하고 물가상승에 맞서 월급을 올리려는 협의가 계속된다. 협의가 된 곳 중에는 8% 수준의 인상을 한다는 곳도 있다. 우리가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어림없는 수준의 인상폭이지만, 그래도 그마저 없이는 지금 상황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임금인상은 또 다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게 될 테니까 임금인상 결정은 반가운 동시에 걱정도 함께 불러온다.

지난해 12월 12일 오스트리아 정부는 2024년 집세 증가에 캡을 씌우기로 결정했다. 4월 초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이 정책은 집세와 관리비 모두 최고 5%까지만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세부 내용이 아주 복잡하다. 알트바우와 정부 보조를 받는 새 아파트들 중 다수가 그 대상이며, 비영리 주택의 경우 정부 지원금의 비율과 건물의 준공일자 등에 따라 달라진다. 자유 시장으로 구분되어 임대 계약 카테고리가 다른 민영주택들의 경우에는 그나마도 이 혜택을 못받는다. 오래된 건물이라도 크기가 130 평방미터 이상이라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과 우익 포퓰리즘인 자유당(FPÖ) 등을 위시해 노동회의소, 연방 근로회의소 등 여러 단체는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보여주기식 쇼(PR stunt)" 혹은 "최악의 인플레이션 쓰나미가 지나가고 난 뒤에 집세 동결이 필요한 상황에서 5% 인상의 여지를 주는 것은 집주인들을 위한 결정" 이라는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늦은 조처일 뿐 아니라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팍팍한 걱정은 이곳 빈에서도 그리 다르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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