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순천만 흑두루미의 떼창
ⓒ 정수근

관련영상보기

   
뚜루뚜루, 뚜루루 뚜루루 ~~

그것은 지난 25일 성탄절날 순천IC에서 차를 내려 바로 지척인 순천만 입구로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듣게 되는 반가운 소리였다. 바로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와 큰기러기가 떼창으로 내지르고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너무 엄청나 차창을 살펴볼 수밖에 없고, 차에 내려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월동지 순천만의 장엄한 광경

녀석들이 내지르는 그 소리가 너무 커 탐조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소음으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필자에겐 너무나 반가운 소리였다. 그 장면 자체가 자연 다큐의 한 장면 같은 장엄한 풍경이었다.
 
순천만 흑두루미희망영농단지 논습지를 찾은 흑두루미와 기러기들. 이들이 내지르는 떼창이 신기하다.
 순천만 흑두루미희망영농단지 논습지를 찾은 흑두루미와 기러기들. 이들이 내지르는 떼창이 신기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이런 낯설지만 반가운 소리와 광경은 사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 명예회장께 수년 전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대구 달성습지에도 있었던 풍경이었다. 80년대 그 일대 주민들의 증언인 바 "철새들 소리 때문에 밤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80년대 말까지 대구 달성습지도 지금의 순천만과 같은 풍경이었다. 당시 달성습지는 국내 최대의 흑두루미 월동지였다. 그러던 것이 달성습지 인근 농경지에 80년대 중반 성서공단이 들어서고, 맞은편 고령군 다산면에 그나마 남아 있던 농경지가 빠르게 비닐하우스로 뒤바뀌면서 먹이터가 사라지자 흑두루미들이 서서히 달성습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들은 그들 나름의 대안으로 달성습지 대신 구미 해평습지를 택했지만 월동을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월동지인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기 전의 중간 기착지로서 해평습지가 이들에게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4대강사업의 여파로 낙동강에서 모래톱이 자취를 감추니 잠자리 터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던 흑두루미들이 해평습지마저 버리고 선택한 것이 순천만이었던 것이다. 이곳 순천만의 흑두루미 도래 역사와 달성습지와 해평습지의 흑두루미 쇠락의 역사는 그 궤를 같이한다 할 수 있겠다.
 
순천만 흑두루미희망영농단지 논습지를 찾은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들. 그 풍경이 장엄하다.
 순천만 흑두루미희망영농단지 논습지를 찾은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들. 그 풍경이 장엄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흑두루미들이 잠자리로 이동하려고 논습지 상공을 날고 있다.
 흑두루미들이 잠자리로 이동하려고 논습지 상공을 날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최근 순천만의 정확한 흑두루미 월동 개체수가 궁금했다. 26일 순천시 '순천만 보전과'에서 이 일을 전담하고 있는 황선미 주무관과 전화 통화로 최근 모니터링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순천만에는 흑두루미뿐 아니라 겨울 추위를 피해 남하한 수많은 겨울철새들이 머물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간 모니터링한 결과를 일러주었다.

"23일 기준으로 흑두루미가 최대 6400마리 정도까지 늘었고, 재두루미가 21마리. 그다음에 캐나다 두루미 2마리 그리고 최근에 노랑부리저어새가 180마리까지 왔었고, 그다음에 기러기가 지금 6300마리로 늘어났고요. 독수리 24마리 그다음에 오리류가 9천 마리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가창오리가 한 800여 마리 다시 보이더라고요".

이처럼 지금 순천만은 흑두루미뿐 아니라 다양한 겨울철새들의 멋진 월동지로 사랑받고 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머물고 있는 그 모습을 보려고 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순천만을 찾고 있었다. 물론 갈대밭의 풍경을 보려고 오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겨울 순천만을 찾는 많은 이들의 관심은 단연 겨울철새들 그중 흑두루미일 것이다.

망원 카메라를 장착한 사진가들뿐 아니라 삼삼오오 몰려든 탐조객들이 갈대 위장막 뒤에 숨어 흑두루미들의 먹이 활동을 여기저기서 지켜보고 있다. 이른바 생태관광의 진면목을 이곳 순천만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흑두루미희망영농단지 논습지를 찾은 흑두루미와 기러기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흑두루미희망영농단지 논습지를 찾은 흑두루미와 기러기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흑두루미 월동 개체수 변화 추이. 최근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흑두루미 월동 개체수 변화 추이. 최근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순천시

관련사진보기

   
순천만은 이렇게 생태관광으로 매년 많은 수의 탐방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로 인한 관광수입 또한 매년 증가해 2015년에는 연간 1747억 원에 다다랐다(고려대 행정학과 대학원의 <순천만 생태복원에 따른 경제적 가치 평가> 논문을 통해서).

이같은 수입은 흑두루미 1432 개체수가 월동할 2015년 당시 상황이었고, 2023년 지금엔 흑두루미가 6천 개체 넘게까지 안정적으로 월동을 시작했으니 흑두루미로 인한 탐방객 유입과 그로 인한 관광수입은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명실상부한 생태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순천시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야생동식물 보호활동을 하는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토건 세력이나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흔히 듣는 질문으로 "환경이나 새 혹은 야생동물이 밥 먹여주나?"였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곳 순천만이 제대로 들려주고 있는 것 같다. 즉 시쳇말로 "새가 돈이 되는" 그 현장을 우리는 순천만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순천만 습지 갯벌에 빼곡히 들어앉아 있는 흰뺨검둥오리들. 순천만은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다.
 순천만 습지 갯벌에 빼곡히 들어앉아 있는 흰뺨검둥오리들. 순천만은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흑두루미와 기러기들 사이에 독수리도 몇 마리 보인다. 오리들이 하늘을 날고, 그 오리를 쫓아 황조롱이도 뒤따라 난다. 갯벌에는 수많은 흰뺨검둥오리들이 장사진을 이루어 앉아 쉬고 있다. 겨울 순천만은 이처럼 다양한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다.

대구시, 제2의 순천만 만들어가야

흑두루미떼를 뒤로 하고 이어 순천만 갈대밭으로 들어섰다. 오후 5시 조금 넘은 시간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그 무렵의 햇살에 비친 마른 갈대들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 사이를 쌍쌍의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순천만을 만끽하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서산에 지는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변한 갈대밭 사이를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서산에 지는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변한 갈대밭 사이를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지는 석양빛으로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순천만 갈대밭
 지는 석양빛으로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순천만 갈대밭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이런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순천만 갈대밭의 모습을 보면서 대구 달성습지와 구미 해평습지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달성습지의 '오래된 미래'를 순천만에서 만나 보니 대구시가 순천시의 행정을 특히 본받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대구시가 대구의 젖줄인 국가하천 금호강에서 시급히 벌여야 할 사업은 '금호강 르네상스' 같은 '토건 삽질' 사업이 아닌 순천시와 같은 생태관광지로의 발상의 전환일 것이다.

이미 금호강에는 대구 3대 습지에 해당하는 달성습지와 팔현습지, 안심습지 같은 아름다운 생태적 자산들이 있다. 그런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런 금호강에 '삽질'을 가해서 어디에나 있는 흔해 빠진 교량과 산책로를 건설하고 수중보를 건설함으로써 그 가치를 떨어트리고 오히려 금호강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려 하고 있어서 금호강을 사랑하는 대구시민들의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순천시의 행보는 대구시와는 완전 차원이 달랐다. 즉 벌써 2009년부터 흑두루미와 같은 겨울철새들이 날다가 전선에 걸릴 것을 우려해 인근 농경지의 전봇대를 모두 뽑았고, 그 이전인 2006년부터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농경지의 볕집을 수거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먹이터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역시 농민들에게 겨울철새 먹이 나누기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이곳 순천만을 겨울철새들의 안정적 월동지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이란 슬로건하에 노관규 순천시장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그 노관규 시장이 8년 만에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순천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순천시를 더욱 생태적인 도시로 만들어가고, 그 결실을 흑두루미 월동 개체수 증가를 통해 서서히 보고 있다. 그 결과 올해 6400마리라는 흑두루미 최대 월동 개체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흑두루미희망농업단지의 논습지를 찾아 열심히 먹이활동 중인 흑두루미. 그 앞에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흑두루미희망농업단지의 논습지를 찾아 열심히 먹이활동 중인 흑두루미. 그 앞에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흑두루미희망농업단지 안 논습지 상공을 흑두루미가 비행하고 있다.
 흑두루미희망농업단지 안 논습지 상공을 흑두루미가 비행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관련사진보기

     
일본 이즈미뿐 아니라 순천만도 이제 안정적인 흑두루미 서식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곳 주민들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했다고 한다. 순천시는 이곳 농민들과 관계맺기를 통해 59헥타르에 이르는 '흑두루미희망농업단지'를 만들어 논습지를 관리하고, 그 너머 400헥타르에 이르는 배후 공간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순천만이 안정적인 서식지로 변해가니 덩달아 순천만을 찾는 개체들이 인근 고흥, 벌교, 보성 등지로 분산되는 효과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서식지의 자연적인 확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시나 구미시도 순천시를 본받아 더 노력해간다면 제2의, 제3의 순천만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서식지 분산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한 곳에만 겨울철새들이 몰리게 되면 그곳에 문제가 발생하면 멸종위기종과 같은 귀한 새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천만한 상황을 지난해 일본 이즈미 AI(조류독감) 사태로 목격했다. 당시 2천 개체 이상의 흑두루미가 희생당했다. 그 때문에 흑두루미들이 일본 이즈미에서 순천만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서식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서식지 분산을 통해서 새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각 지역의 바람직한 환경관리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생태관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고 말입니다. 순천시가 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순천만 갯벌이란 천연 잠자리를 찾은 흑두루미 무리들. 장엄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순천만 갯벌이란 천연 잠자리를 찾은 흑두루미 무리들. 장엄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 순천시

관련사진보기

 
황선미 주무관의 말과 같이 순천시의 사례를 잘 보고 배워서 제2, 제3의 순천만이 더 많이 생겨 인간과 자연이 진정으로 공존하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순천시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만의 공존의 사례가 널리 퍼져나가서 대구 달성습지나 구미 해평습지도 그들의 '오래된 미래'를 하루빨리 되찾게 되기를 그래서 자연과 인간이 진실로 공존하는 모델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4대강 보 수문 개방도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흑두루미 잠자리인 모래톱 복원과 같은 강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것이 공존의 질서 회복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흑두루미의 귀가
ⓒ 정수근

관련영상보기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훅두무미, #순천시, #순천만, #대구시, #달성습지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