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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참 작은 나라가 힘들게도 살았구나. 숱한 고난의 역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지켜냈구나. 무려 26년 동안 이어진 전쟁. 참으로 고달픈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 과몰입 중이다. 요즘 세태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묵직한 대사와 감동적인 명장면 속에 유독 마음에 들어온 대사가 하나 있다.

거란족을 피해 몽접을 떠난 현종이 공주 절도사 집에 머무를 때 절도사의 딸 원성이 절도사인 아버지를 위해 자청해 현종의 침소에 들었을 때 현종이 원성에게 소리 친다. "당신 자신을 위해 사시오! 아버지가 아닌 당신의 삶을 사시오"라고. 원성 역시 주체적인 여성이었기에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삶이 갸륵하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삶'을 살라는 현종의 말은 신선했다.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누가 전복을 보내왔는데 누군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셨다. 원산지에서 직접 보냈으니 몰랐을 엄마에게 막내 이모가 보낸 것이라고 알려드렸다. 사전에 이모가 주소를 물어왔던 터라 짐작할 수 있었다. 막내이모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도 촌수가 달라서 그런지 어른스럽다. 자식들인 우리보다 엄마를 더 살뜰히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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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이 살아있는지 꼬물꼬물 한다는 엄마에게 "엄마, 전복 냉동고에 잘 넣어뒀다 내가 가면 같이 먹어 알았지? 버터에 구워서"라며 들떠서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싫어, 나 혼자 먹을 거야. 이젠" 그러시는 것이다. 내 딴엔 엄마가 전복을 또 예전처럼 그대로 둘까 생각해서 건넨 말인데 엄마가 갑자기 그렇게 진지하게 말씀하시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멋쩍게 웃으며 "하하... 엄마 잘 생각했어. 이젠 엄마 혼자 다 드셔 싱싱할 때 바로, 그래야 맛있어"라며 상황을 수습했다.

엄마가 각성하신 걸까. 엄마는 이제 자식들 주려고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이제 그걸 알았어?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구만. 자식들 줄려고 애쓰지마. 이젠 엄마만 생각하고 살아 엄마만"이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좋은 것이 생기면 자식들 주려고 먹지 않고 기다리는 엄마. 까탈스런 자식들은 냉동고에서 오래 된 건 먹지도 않는데 꽁꽁 보관하고 계시다 결국 혼자 드신다. 자식들은 밖에서 더 좋은거 먹으니 안 그래도 된다고 하면 괜히 신식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위축 된다.

그런 엄마에게 툭하면 "엄마도 엄마 인생 살아"라고 핀잔 했었는데 어느날 엄마가 "내 인생 살으라고?" 반문하면서 언짢아 하셨다. 다 컸다고 늙은 엄마에게 엄마 인생 살라는 말은 교만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그 후로 엄마 인생 살라는 건방진 말은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 인생이 순전히 내 것이었는지 단언할 수 없다. 엄마는 내게 늘 말했다. "너야말로 네 인생 살어, 엄마도 생각하지 말고" 그럴 때마다 "응 난 내 인생 살고 있는데"라고 대꾸 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충고했다. 엄마는 당신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듯 어느 날부터 가능한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셨다.

엄마를 돕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렇게 엄마에게서 분리되었을 때 미안하게도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엄마가 희생했기에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일은 없었다.

가끔 TV속 아이돌을 보면 돈 벌어 고생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종종 본다. 부모님을 위해서 연예인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가 되겠다는 삶이 조금은 더 가벼워 보인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무거운 짐 지기를 원치는 않을 테니 말이다.

지난 번 엄마가 만들어 놓은 반찬을 눈치도 없이 다 들고 왔다고 말하자 지인은 내게 "잘하셨어요. 안 가져가면 엄마들이 오히려 서운해 해요"라고 했지만 선뜻 동의 할 수 없었다.

나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식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엄마의 삶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엄마가 당신의 삶을 살겠다고 하는 순간, 엄마가 주는 혜택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꿈틀거리는 이기심이 잠시 솟았다. 그렇지만 "전복 나 혼자 먹을래"라고 말씀하신 엄마의 삶도 이제 조금 가벼워지면 좋겠기에 엄마의 해방을 진심으로 열렬히 응원한다.

태그:#전복, #나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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