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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빈대떡 한 상
▲ 빈대떡  막걸리와 빈대떡 한 상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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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먹고 싶은 음식 한 가지만 얘기하라는 말에 남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딴 거 다 필요 없고 떡국과 빈대떡이면 충분해"라고 했다. 그의 대답에 속으로는 '빈대떡이 얼마나 손이 가는 음식인데' 하며 코웃음을 치면서도 "그러지 뭐"하고 쿨한 척했다. 요리에 재능은 없지만 관심은 있어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눈길을 끄는 음식이나 새로운 조리법이 나오면 유심히 보는 편이다. 요리 공책에 적어 두고 틈틈이 따라 만들기도 한다. 손님이 오면 한식이나 양식으로 제법 그럴싸한 상차림을 해서 칭찬받는 재미에 폭 빠지기도 했고, 반찬이나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어 지인에게 나눔을 하는 부지런을 떨기도 했다.      

몇 달 전부터 급격하게 요태기(요리 권태기)가 왔다. 평소 청소나 빨래 등 집안일에 부지런을 떠는 성미는 아니지만 집밥에는 비교적 진심이었다. 그런데 주부 노릇하기가 싫증 났다. 그중 음식 만드는 일이 제일 귀찮게 여겨졌다. 예전 같으면 한 달에 두어 번은 별식을 만들거나 새로운 음식을 선보여 예쁜 그릇에 담아내고 자기만족에 빠졌을 것이다.

요즘은 요리는커녕 밑반찬 만드는 일도 게으름을 피운다. 국이나 찌개 종류만 준비하거나 카레, 볶음밥 등 일품요리로 때우던 참이다. 그래도 명색이 설인데 명절 음식 한두 가지는 준비해야지 싶던 차에 빈대떡을 주문하니 귀찮음이 내 안에서 꿈틀대긴 하지만 뭘 만들지 고민은 덜었다. 
    
나는 2남 2녀의 맏며느리다. 결혼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27년간 차례를 지냈다.
5년 전, 가족회의를 거쳐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면서 명절 증후군에서 해방됐다. 어머님을 모시고 살 때는 온 식구가 다 모였다. 차례 음식은 물론 가족들이 먹을 요리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부터는 명절 전날 시동생 가족 4명만 왔다. 명절이 다가오면 괜스레 부산스럽고 마음이 갑갑했다. 장 보는 일부터 차례 음식 준비는 물론 전날 저녁 먹을 음식도 마련해야 했다. 어른들이 먹을 술안주와 아이들이 좋아할 음식을 매번 다르게 준비했다. 단호박 크림 파스타나 폭립을 보고 아이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걸 보면 흐뭇했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제 명절 연휴 기간에 시누이네와 시동생, 우리 집 세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한다.   

명절 당일은 우리 세 식구가 오붓하게 보낸다. 객지살이를 하는 아들이 모처럼 오니 그냥 넘기긴 서운해서 남편과 나, 아들이 각자 원하는 음식 한 가지씩을 준비했다. 이번 설에는 아들이 오지 못했다. 둘만 보내는 명절은 처음이다. 겉으로 무심한 척 하지만 남편의 옆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빈대떡과 막걸리 한 잔이 위로가 될지. 

빈대떡은 간 녹두에 고사리, 파, 숙주, 신김치, 고기 등을 넣어 팬에 얇게 부쳐낸 전통음식이다. 비 오는 날 막걸리와 곁들여 파전과 함께 많이 찾는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노랫말이 있다. 1950년 가수 한복남이 노래한 '빈대떡 신사'에 나온다. 돈이 없는데도 요릿집에 가서 허세를 부리는 이의 모습을 그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가사를 통해 빈대떡이 그당시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주재료인 국산 녹두 가격이 1kg에 대략 만 칠팔천 원 하는 데다 부재료 가격까지 더하면 빈대떡 만드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전집에서 파는 것은 대부분 수입 녹두를 쓰고 크기가 아담하다. 둘이서 몇 장 먹다 보면 몇 만 원은 금방이다. 빈대떡은 더 이상 막걸리 안주로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먹던 음식이 아니다. 

이왕 하는 것, 푸짐하게 먹을 요량으로 녹두 4컵을 불렸다. 양푼에 담긴 반죽을 보고 남편은 '큰 손 0여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시작했다. 지글지글 기름 튀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했다. 역시 빈대떡은 기름 맛인가. 건강은 잠시 접어 두고 맛을 위해 전집에서 하는 것처럼 기름을 넉넉히 둘렀더니 겉바속촉. 이번엔 제대로다. 완벽한 맛을 재현했다고 뽐내며 요태기를 날려 버렸다. 무려 15장. 엄청난 양을 보고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렸다. 빈대떡 접시를 앞에 두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서로에게 덕담을 건넸다.

'새해에는 좀 더 행복해집시다.'     

빈대떡 만들기    

재료 : 녹두 1컵, 찹쌀가루(멥쌀가루) 3큰술, 부침가루 5큰술, 물 1컵(200ml), 신 김치100g, 간 돼지고기 200g, 숙주 100g, 
돼지고기 양념 : 다진 마늘 2 작은술, 다진 파 2큰술, 소금, 후추, 깨, 참기름 조금
양장: 진간장, 식초, 깨, 다진 청양고추, 다진 양파    

 
4시간 불린 녹두
▲ 녹두 4시간 불린 녹두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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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
1. 녹두는 4시간 이상 불린 다음 껍질을 깨끗이 씻는다. 
  (반드시 깐 녹두를 구입하기를 권장한다. 단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이는 상관 없음 )
2. 믹서기에 분량의 물을 붓고 거친 입자가 만져질 정도로 간다. 
   곱게 갈면 빈대떡 고유의 식감이 살지 않는다.
3. 2에 찹쌀가루와 부침가루를 넣어 섞은 후 국간장 또는 참치액으로 간을 한다. 
4. 3에 송송 썬 배추김치, 양념한 돼지고기, 다진 파, 숙주를 넣어 섞는다. 
   숙주는 생으로 넣어야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있다.
5.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천천히 굽는다. 빈대떡은 두툼한 게 씹는 맛이 있다.

 
간 돼지고기, 신 김치, 숙주, 다진 대파
▲ 빈대떡 재료 간 돼지고기, 신 김치, 숙주, 다진 대파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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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빈대떡, #녹두전, #설, #명절, #명절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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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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