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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자료사진).
 졸업식(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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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걸까. 알 듯 알 듯 모르겠다. 우리 딸은 곧 중학생이 된다. 작년 12월, 다른 학교들보다 조금 이른 졸업을 한 아이에게 말했다.

"내년 3월 입학 때까지 학교 안 가도 되네? 엄청 좋겠다."

내 말에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좋긴 뭐가 좋아. 학원 가야 하는데."

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와 수학 학원에 간다. 내가 보기엔 최소한으로 다니는 것 같은데도 아이는 틈만 나면 한숨을 쉰다.

학창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몸은 학원에 있으나 마음은 딴 곳에 있을 때가 많았다. 학원에 있는 시간은 길었으나 정작 공부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좋든 싫든 6년 동안 공부해야 하는데 초반부터 힘을 빼면 안 될 것 같다.

"그래, 앞으로 공부할 날이 많은데 뭐. 학원 다니지 마. 좀 쉬어. 신나게 놀아."

그리하여, 우리 딸은 중학교 입학 전에 룰루랄라 자유시간을 만끽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되었다. 난 아이에게 자유시간을 준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핸드폰 보는 시간을 준 것이었다. 아이는 종일 핸드폰을 끼고 살았다. 결국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이와 타협을 했다. 하루에 3개씩 영어 문법 유튜브를 보고 정리하기로.

그런데 아이가 공부하는 걸 자세히 보니 아이는 가짜 공부를 하고 있다. 나에게 검사받기 위해 그저 노트를 채우고만 있다. 딸을 불러 말했다. 네가 하는 공부는 나에게 보이기 위한 가짜 공부 같다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래, 맞아. 가짜 공부 같아. 차라리 영어 만화를 보는 게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겠어."
"그래, 그럼 영어 만화를 보자."


아이는 넷플릭스로 쉬운 영어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날 하루만.

달력을 보니 2월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뭘 새로 하라고 하는 것도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는 것도 면이 안 선다. 우리는 종종 같이 대화를 하지만 머릿속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엄마 카톡 밥 먹듯 '읽씹'하던 딸, 바로 '칼답'한 이유

그러던 중 지난주 아이가 캠프에 갔을 때, 뉴스 하나를 봤다. 류현진이 한화에 온다는 뉴스. 그 당시엔 아직 계약 전이었다.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소식 들었어? 류현진 한화 온대.' 

평소 내 카톡은 밥 먹듯 '읽씹'하던 딸인데 어쩐지 그날은 바로 답이 달렸다.

'기사 나온 3시에 봤지. 아. 류현진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오지 마.'

류현진이 한화에 간다는 건, 롯데자이언츠 팬인 우리에겐 비보다.
 
류현진이 2월 23일 일본 오키나와현 고친다 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2차 스프링캠프 훈련에서 불펜피칭 중 생각에 잠겨 있다.
 류현진이 2월 23일 일본 오키나와현 고친다 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2차 스프링캠프 훈련에서 불펜피칭 중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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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캠프에서 집에 돌아온 뒤 류현진이 한화와 8년 계약을 하는 뉴스를 함께 봤다. 우린 한화 팬도 아니면서, 스포츠 뉴스에서의 류현진 인터뷰도 챙겨보고 이글스TV(한화이글스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류현진과 한화의 계약 과정도 챙겨서 본다.

"(미국에서) 더 하고 오지 왜 벌써 와."

나의 푸념 섞인 말에 아이가 대답한다.

"12년 만에 오는 거래."
"그래, 올 때 됐구나."


류현진은 내 말을 들은 양, 바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량이 충분할 때 다시 '친정팀'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 돌아오는 거라고.

"12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다니, 대단하네, 대단해."

류현진은 또 내 말을 들은 듯, 지금의 한화 단장님이 선배로서 꾸준히 연락을 해주셔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역시 공짜는 없어."
 

류현진이 지금 한화로 오는 건 계약금도 계약금이지만, 류현진이 떠날 때 했던 약속과 단장의 꾸준한 연락, 평소 좋았던 관계성이 모두 합쳐져 이 결과를 낸 것 같다. 난 이 생각을 굳이 아이 공부와 연결시킨다.

"그러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어. 네가 공부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건 이후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는 데에 그 공부가 도움이 돼서야.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

나는 일부러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 무심한 듯 바닥을 닦으며 말했다. 내 말은 허공에 흩어졌을까, 아이 귀로 들어갔을까.

조금 뒤 아이는 말을 돌려 롯데자이언츠의 2차 스프링캠프에 대해 말한다. 오키나와에서 연습경기가 있는데, 이번 주에 오키나와에 가면 볼 수 있다고.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았지만, 그걸 듣고 옆에 있던 남편은 농담 조로 "그럼, 오키나와 잠깐 다녀올까?" 하고 말하고 나는 추임새를 넣듯 "비행기 표 좀 알아봐야겠네" 한다. 딸은 친구랑 약속 때문에 아쉽지만 자기는 못 가겠다고, 다행히 유튜브에서 생중계를 하니 자신은 그걸 보겠다고 한다.

바닥을 보던 내 얼굴은 어느새 남편을, 아이를 보고 있다. 얼굴을 보니 세 식구 모두 웃는 표정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던 우리는 순간 유유상종(類類相從)이 된다. 우리 가족을 같은 마음이 되게 해주는 야구가 새삼 고맙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사춘기, #프로야구, #류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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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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