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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앙종 도량에서는 새벽과 저녁 예불에 앞서 "종지"를 낭송합니다. 종지(宗旨, guiding principles)라는 것은 우리가 근본으로 삼는 중요한 원칙을 일컫습니다. 이 종지에는 여섯 가지 원칙이 들어 있는데, 그중 첫째가 '문자기시불시불해(問自己是不是不害)'입니다. 즉 다른 이를 해치려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물어보라는 뜻입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 해치려고 하면 그건 좋지 않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싸움에 말려듭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겨야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져야만 합니다. 누군가는 아프고 다쳐야 합니다. 그러니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싸우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잘못했을 때, 거부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보세요. 그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대신 포용해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계속 싸움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하면 좋나요? 그럴 때에는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보세요. "오케이!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존경하고 높이 여깁니다. 어떤 부분은 당신에게 배우고 싶지만, 당신에게는 내가 배우고 싶지 않은 점도 있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서 있고 싶은 자리를 명확히 표현하십시오.
 
여러분이 누구든 자기 표현은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서로 시간 낭비나 감정 소모가 없습니다. 의견을 명확히 표현해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건강한 경계선(Healthy boundaries)'이라고 부릅니다.
▲ 건강한 경계선 여러분이 누구든 자기 표현은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서로 시간 낭비나 감정 소모가 없습니다. 의견을 명확히 표현해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건강한 경계선(Healthy boundaries)'이라고 부릅니다.
ⓒ 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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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점이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어려웠던 점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문화는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표현을 명확히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명상반 학생들에게 서슴지 않고 먼저 연락을 하는 편입니다. 이게 제가 미국적이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스님이니까 체통을 지켜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상반이 좋았다고 했던 학생들이 한동안 오지 않더라도 연락을 잘 하는 편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든 더는 연루되고 싶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또는 자신에게 더 큰 우선순위가 있는 일을 하려고 명상을 그만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솔직하게 말하질 못합니다. "스님! 연락해 주셔서 고맙지만, 이제 저는 명상 안 하려고 합니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해서 명상 안하려고요!" 또는 "명상 너무 힘들어서 그냥 요가하려고요.", "다른 스님한테 배우고 있는데, 거기서 배워보려고요!"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대신 "챙겨줘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뵈러 갈게요"라고 답합니다. 그래서 저는 '와우! 명상하고 싶은데 바빠서 못하는구나! 다음에도 꼭 연락해 줘야겠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쪽 모두 불편하게 돼버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점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을 예의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의견 충돌이 생길 때, 상대가 언짢아할 수도 있을 거라 여길 때, 안절부절못합니다. 여러분이 누구든 자기 표현은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서로 시간 낭비나 감정 소모가 없습니다. 의견을 명확히 표현해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건강한 경계선(Healthy boundaries)'이라고 부릅니다. 건강한 경계선이 있어야 상대방도 오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착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여러분의 번뇌입니다. 그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하지만, 단지 어떤 부분은 원하지 않는다", "당신을 좋아하지만, 이건 같이 하고 싶지 않아!"라고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게 창피를 주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건강한 경계선을 그리는 방법입니다. 상대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는 판단이 없으면, 상대방도 창피함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로 편안하고 차분한 상태에서, 부정적인 의견이나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그때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그쪽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수용하는 방법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우린 쌍방 통행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건강한 경계선을 지킬 수 있을 때, 선생님도 학생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기득권층, 윗사람, 나이 많은 사람만 늘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변하면 상대도 변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모두를 포용하고 함께 성장하는 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동시 발행합니다.


태그:#참선, #명상, #문제해결, #포용,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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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위산사에서 영화스님의 제자로 출가했고, 현재 분당 보라선원에서 정진하며 선 명상과 대승불교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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