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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여성노동자의 용접 작업.
 조선소 여성노동자의 용접 작업.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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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한 편에서는 배를 만드는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가족도 잘 보살피며, 무엇보다 노동조합 하면서 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외친다고 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최근에 나온 책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코난북스 간)를 읽고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의 연대기금으로,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대형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11명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용접·도장·밀폐감시... 배 만드는 여성들

주로 남성들이 일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선박 건조 현장에서 여성 용접공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서문을 쓴 이은주 활동가는 "남화숙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에 따르면 1977년 2월 9일자 경향신문에 '여성기술자 등장'이라는 기사가 있고, '용접 분야에도 여성 기술자가 진출하고 있다. 현대조선은 80여명의 여성기술자를 길러...(중략) 중화학 분야에 여성기능인력이 참여한 효시'라고 쓰여 있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여성이 없으면 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할 정도다. 책에서는 조선소에서 용접, 사상, 발판, 도장, 밀링, 밀폐감시, 화기감시, 현장 청소, 건물미화, 급식, 세탁을 맡아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언급한다. 
 
"내 건 루이비통, 니 건 샤넬. 도장 일하는 사람들이 페인트를 담아가지고 다는 깡통이 있는데,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부른다."
 
배에 색을 입혀 바다에 내보내는 도장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는 페인트통에 명품 브랜드 이름을 별명으로 붙여 부른다고 소개했다. 13년째 깡통과 한 몸으로 살고 있다고 한 그녀는 "루이비통에 페인트를 가득 담아가면 삼사십 분만에 없어져요. 루이비통에 구멍 났다 이러면서 일하거든요"라고 말한다. '돈 버는 가방'이란다.

일하다 보면 '남는 건 골병'이다. 책에서 그녀는 "롤러대를 힘을 주고 잡으면 손마디가 굳고 팔을 제대로 들지 못해요. 배가 깊은데 그 밑까지 내려가려면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또 "도장은 조선소의 꽃이에요. 마지막 공정이니까요"라면서 "가장 힘들 때 조선소에 와서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일에 대한 능력도 인정 받고, 하고 싶은 말도 하면서 살고 기댈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지고, 삶이 많이 변했어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남편과 사별하고 힘들어하다 나이 마흔여섯에 조선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청소노동자는 "여기서 그만두면 딴 데 가도 못 견딘다는 생각으로 버텨 오늘까지 왔다"라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잔업을 밤 9시, 12시까지 했어요. 잔업 안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맨날 안 한다 하면 관리자한테 찍히거든예. 다른 사람 다 잔업하는데 안한다 카면 남은 사람이 힘들잖아요. 그래서 힘들었어요. 집에는 아이들 둘만 있고 학생이라 손이 많이 갈 때잖아요.

정규직은 직영이고 우리 협력업체를 비정규직이라 그러잖아요. 협력업체는 사람 취급도 못 받았어. 지금은 좀 덜한가 몰라도 옛날에 그랬어요. 요새 말하는 갑질같이 그랬다니까. 통근차고 뭐고 모든 게 직영 위주로 도니까. 똑같은 인간인데. 우리끼리 하는 말도 '더럽고 아니꼬우면 너도 직영 돼라', '하청은 사람도 아이가?' 이런다."
"아들이 대학 들어가기 직전에 여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었어요. 굳이 와서 일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아들이 지원을 와서 현장에서 만나게 됐어요. 나를 보더니 울더라고요. 집에 와서 '엄마 나 직장 다니면 그때는 엄마 일 그만둬' 하더라고요."  

남성보다 여성이 먼저 정리해고, 왜?
 
책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표지.
 책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표지.
ⓒ 코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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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는 조선소라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여성 노동의 내밀한 묘사이면서도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하는 우리 시대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다.

여성노동자들은 쇠와 쇠를 이어붙이기도 하고, 쇠를 깎는 밀링과 녹슬지 않게 색을 입히는 도장도 한다. 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화기‧밀폐감시를 하거나 청소와 급식 업무도 맡는다.
 
"막상 와서 일해보니까 남자들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남자라도 저보다 용접을 못하는 사람도 있죠. 저래도 월급 받아가나 싶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도 보이고 여자도다 할 수 있는 일이네 싶기도 하고 여자들이 다 할 수 있어도 남자들이 자기 직업을 뺏길까 싶어 안 시키는 일도 세상에는 많이 있겠다 싶어요."
 
그런데 조선소 경영이 어려워지면 남성보다 먼저 여성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 해고의 공포에다 상여금이 깎이기도 하고, 사회보험이 체납되기도 한다.
 
"해고통지서를 받아보니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조선소 들어와서 20년 동안 해고돼서 나갈 정도로 엉망으로 살지는 않았는데 시키면 시킨 대로 열심히 일해줬어요. 내 혼을 담고 뼈를 다 갈아넣을 정도로 힘들게 일했는데 나갈 때 해고장을 받고 나간다? 자존심이 억수로 많이 상하더라고요 너무 분하고 억울하더라고요."

"현장에 오일 들어가는 탱크 같은 게 있어요. 거기는 완전 끈끈한 기름이어서 시커먼 먼지가 많이 붙어 있어요. 현장에 먼지가 워낙 많거든요. 그 먼지 쌓인 기름을 우리가 청소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청소하면 기름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써요 정신없이 일하다 언니 얼굴을 보니까 새카매져 있는 거예요. 내 얼굴도 그렇다는걸 그때 알았죠.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언니는 오지 말라 안 하더냐며 울고요. 얼굴까지 새카매져가지고 내가 진짜 이런 일을 해야 되나 싶더라고요."

"고용이 안정화되면 사람은 다른 데로 눈을 돌리게 돼요 근데 고용이 불안하면 입에 재갈이 물리는 거죠. 내가 뭐라고 하면 난 여기서 잘릴 거야. 그래서 하청노동자는 산재조차도 신청을 못하고 장기 유지된 업체들은 일부러 기습 폐업하고 본보기 폐업도 하고 노동자를 길들이는 거죠. 그래서 고용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죠. 자본은 그걸 원하는 거죠."

한 여성노동자는 "명절 상여금을 다 100%씩 받았는데 우리는 30만원 밖에 못 받고 있었어요. 휴가비도 더 적었고요. 연차도 다른 데는 다 1.5를 받았는데, 우리는 그냥 기본만 받는 거예요. 여자가 많은데 생리휴가도 없었고요.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조용히 일하는데 누가 우리를 챙겨주겠어요. 노조가 들어와서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토로했다.
  
조선소 여성노동자의 발판 작업.
 조선소 여성노동자의 발판 작업.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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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여성노동자들은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한 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했다. 한 노동자는 "2020년 쯤에 업체 사장이 18개월 동안 국민연금을 미납했다. 국민연금은 노후자금인데. 퇴직금 문제도 있었다"라며 "회사가 어려우니 문 닫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싸우려고 노조에 가입했다"라고 말했다.
 
"파업 투쟁을 할지 말지 논의했다. 우리는 사원들 복지를 다 담당하고 있다. 세탁소, 샤워장, 식당, 그런 게 없으면 조선소가 돌아가나요. 식당이 없으면 밥을 어떻게 먹어요. 세탁 수불이 없어서 근무복을 집에 가서 세탁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회사 통근버스가 없으면 어떻게 출퇴근하겠어요.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사람들과 우리도 같은 조선소 노동자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당해봐라.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가 파업하면 너희도 일 못하지 않느냐."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투쟁을 벌인 한 여성노동자는 "노조가 없을 때는 우리를 우습게 여겼죠. 사무실 사람들은 상전이었어요. 이물질 같은 거 나왔다 하면 난리예요.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어요. 초등학생 앉혀 놓고 교육하듯이 했어요"라며 "노조가 있으니까 내가 잘못한 게 아닌 상황에서 적절하게 도울 대응팀이 있다. 사람들 마음이 조금 강해졌달까. 노조가 생겨서 함부로 못하죠"라고 말했다.

이은주 활동가는 "아마도 이 책의 첫 독자가 되어줄 그들과의 끈끈한 연대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사회적 호명에는 관점이 담긴다. 호명에 담긴 시선들이 교차할 때 우리의 인식은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11인의 목소리가 조선소 노동자라는 사회적 호명에 서로 다른 구조적 상황, 경험, 고통과 요구의 다양한 시선과 관점이 담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 기록 작업에는 김그루, 박희정, 이은주, 이호연, 홍세미 활동가가 참여했다.
   
조선소 여성노동자의 세탁 작업.
 조선소 여성노동자의 세탁 작업.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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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김그루, 박희정, 이은주, 이호연, 홍세미 (지은이),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2024)


태그:#조선소, #여성노동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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