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금요일, 요양 보호사 교육이 필기도 실습도 끝나는 날이었다. 2024년 새해 1월 17일에 시작해서 3월 16일 교육이 끝났다. 꼭 두 달이 걸린 셈이다.

보호사 교육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까지, 쉬는 시간도 10분, 점심시간도 모자란 30분, 조금의 여유도 없이 하루 8시간씩 강행군 수업이었다. 수업도 언제나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갔다. 그래서 정신없이 공부하다가 책을 덮고 나면 무슨 말을 들었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사실 젊은 사람도 소화하기 힘든 시간을 80대인 내가 견뎌냈다. 그래서인지 늘 마음이 바빴다. 집에 와서도 남편의 다음날 점심 준비와 내 도시락 준비로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가 언제 이토록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나머지 내 삶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지 통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수업은 끝났다, 남은 건 시험
 
요양 보호사 교육 받은 교재들
▲ 수업 받은 교재들 요양 보호사 교육 받은 교재들
ⓒ 이 숙 자

관련사진보기

 
지난 금요일, 함께 공부하던 우리 조 사람이 마지막 실습을 마치고 나왔다. 우리는 나오면서 서로 고생했다고 위로를 건넸다. 이제 나머지 일은 며칠 쉬고, 시험만 보면 끝난다. 교육과 실습은 끝났지만 가장 중요한 시험이 남은 것이다.

3일 동안 열심히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노력하자는 말로 격려를 하면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세 사람은 아무 탈 없이 교육과 실습을 끝낸 것에 안도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언제나 곁에서 나를 챙겨준 젊은 학우 두 사람이 고마웠다. 

봄이라고 하지만 군산의 밤은 바람이 더 차갑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여보 나 왔어요" 하자 남편이 웃는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따뜻하고 감사한 일이다. 춥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직 시험이 남았지만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는 일이다. 

참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생활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는 수업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을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힘들었던 도전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 가만히만 앉아 있으면 몰랐을 일을, 움직이면서 알게 된다.

이번 요양 보호사 공부로 인해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우리 몸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를 하고 살아야 하는가도 고민해보고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생활하는 데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꼭 자격증을 따는 게 목적이 아니어도, 한 번쯤 이걸 공부해 보는 것 자체가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주변분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시험 직전, 밤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이 욱신 욱신 쑤셔서 아파서 깼다. 몸살 인가 보다. 목도 잠긴다. 이걸 어쩌나, 내일 모레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시험 때도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몰려온다. 

아침이 됐는데도 토요일이라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집에는 타이레놀뿐인데, 약을 잘못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무리하긴 정말 무리했나 보다.

문제집과 책을 보야야 하는데 책을 볼 수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휴대폰으로 관련한 온라인 영상을 틀어놓고는 보는 둥 마는 둥 누워서 끙끙 앓았다.

스스로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몸 관리를 못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비몽 사몽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면서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간신히 남편 밥을 챙기고 또 이불 속으로.

남편과 이웃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가 될 테다

어느 날 바라본 남편 모습은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애잔하다. 마치 마른 낙엽처럼 땅 위에 뒹구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쇠해지고 힘이 없어 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 내가 이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후회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어찌할까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 나이 90이 되는 남편, 아프면 요양은 내가 할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요양보호사 자격증 도전이었다. 나 좋아하는 일만 찾아 하고 즐기면 뭐 하나 싶었다. 남편 외롭지 않게 해줘야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삶들. 이런 노력들이 내 삶의 흔적이고 앞으로도 나의 인생이 될 것이다.

지난 월요일,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누워서 책도 못 보고 폰을 열어놓고 영상을 듣기만 했다. 시험 보는 날, 몸은 아프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아야 했다. 노심초사 걱정이다. 시험을 망칠까 봐서.

화요일 버스를 타고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혼자서 컴퓨터 한 대씩 칸막이 자리에 배치되어 앉았다. 기침은 나오고 목은 간질간질거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 엄숙한 분위기다. 손바닥마저도 다 조사한다. 혹여 커닝 페이퍼가 없는지 검사인가 보다.

국가고시란 이름으로 시험을 보는 일은 처음이다. 그런데 긴장은 되지 않는다. 타닥타닥, 마우스 소리만 고요를 깨트린다. 여전히 기침은 나오고 목도 아프고 어지럽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면서 차분히 시험은 보았다. 헷갈리는 아리송한 문제들이 많아 조금은 걱정을 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걱정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기다려 보아야지.

시험 본 다음날 아침 10시에 문자로 합격 여부를 알려 준다는데, 합격하겠지 하면서도 설마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꿈만 꾸었다. 발표하는 10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초조했는지. 정확하게 10시가 되어 폰에서 카톡이 울린다. 

'이숙자님, 요양 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우와! 정말 내가 해 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게 뭐 별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직접해 보니 그건 아니었다. 요양 보호사라는 역할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천한 일을 절대로 없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아주 중요한 구성원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앞으로의 나머지 삶은 남편을 돌보며 작은 힘이라도 이웃을 함께 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나는 81세, 요양원 자격증을 딴 요양 보호사다. 내가 나에게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가족들과 이웃, 동료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마치 무슨 벼슬 장원 급제라도 한양, 축하가 좋으면서도 조금은 민망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인연들에게도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81세, 내 나이에 나처럼 요양 보호사 자격증 딴 사람이 있을까? 오늘은 그게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요양보호사, #자격증시험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