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저축은행이 한국 여자배구의 레전드 미들블로커를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구단은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 시즌 팀을 이끌 4대 감독으로 장소연 SBS 스포츠 해설위원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페퍼저축은행의 김동언 단장은 "장 감독은 화려한 선수 생활과 해설위원으로서의 경험을 갖추고 있어 여자배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훈련을 통해 다가올 2024-2025 시즌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라고 선임배경을 밝혔다.

지난 2월 28일 조 트린 감독을 경질한 후 이경수 감독대행 체제로 잔여시즌을 치렀던 페퍼저축은행은 플레이오프 일정이 끝나지 않은 이른 시점에 차기 감독을 결정해 발표했다. 페퍼저축은행의 장소연 신임감독은 "신임감독으로 새로운 지도자의 길을 가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기본에 충실한 배구를 통해 AI페퍼스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8시즌 동안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던 장소연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 페퍼저축은행을 이끌게 된다.

8시즌 동안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던 장소연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 페퍼저축은행을 이끌게 된다. ⓒ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불혹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레전드

경남여고 시절 동갑내기 세터 강혜미와 함께 여고배구를 평정했던 장소연 감독은 1992년 실업배구 선경인터스트리에 입단하며 성인무대에 뛰어 들었다. 장소연 감독은 입단하자마자 겨울리그 신인왕에 선정됐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로 활약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여자배구는 '독사' 김철용 감독이 이끄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 KIXX)의 전성기였다. 선경 시절 장소연 감독의 겨울리그 우승경력이 없는 이유다.

그러던 1998년 4월 모기업인 SK그룹은 외환위기를 이유로 여자배구팀 해체를 결정했고 장소연 감독은 절친 강혜미, 한일합섬의 거포 구민정과 함께 현대건설로 이적했다. 현역 국가대표 이적생 3인방에 이숙자(정관장 레드스파크스 코치), 한유미(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정대영(GS칼텍스) 등 최고의 신예들이 뭉친 현대건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겨울리그 5연패를 달성하며 실업배구의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장소연 감독을 비롯한 현대건설의 베테랑 4인방은 2005년 V리그 출범을 앞두고 동반 은퇴했다. 물론 구민정이 어깨부상, 강혜미가 목디스크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배구팬들은 한국 여자배구 역대 최고로 꼽히는 장소연 감독과 강혜미 세터의 콤비플레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장소연 감독은 코트를 떠난 지 4년 만에 2009-2010 시즌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전체 3순위로 KT&G 아리엘스(현 정관장)에 지명된 장소연 감독은 복귀 첫 시즌부터 블로킹 3위(세트당 0.58개)를 기록하며 건재한 기량을 뽐냈다. 인삼공사는 장소연 감독이 활약한 세 시즌 동안 두 번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장소연 감독은 2011-2012 시즌이 끝나고 인삼공사와 재계약을 하지 못했지만 1년 동안 실업리그에서 활약한 후 2013년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플레잉코치로 선임되면서 1년 만에 프로 무대에 복귀했다.

장소연 감독은 복귀 시즌 발목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지만 2014-2015 시즌 건강하게 복귀해 정대영과 함께 주전 미들블로커로 활약하면서 도로공사의 정규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장소연 감독은 2015-2016 시즌이 끝난 후 도로공사 구단과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다시 한 번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장소연 감독은 은퇴를 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배구팬들은 코트가 아닌 중계석에서 '해설위원 장소연'을 만날 수 있었다.

페퍼의 운명 짊어진 '초보 사령탑'

2016년 9월 컵대회부터 SBS 스포츠의 해설위원으로 발탁된 장소연 감독은 이번 시즌까지 8시즌째 SBS 스포츠의 간판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그 사이 이도희 전 현대건설 감독과 김사니 전 IBK기업은행 알토스 코치가 SBS 스포츠의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약됐지만 장소연 해설위원의 입지를 흔들진 못했다. 그렇게 배구 해설위원의 이미지가 강했던 장소연 감독이기에 페퍼저축은행 감독 부임소식은 배구팬들을 놀라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21년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창단 후 세 시즌 동안 103경기(V리그 기준)에서 13승 90패(승률 .126)로 승점을 42점 밖에 얻지 못했다. 이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 5위로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한 기업은행이 한 시즌 동안 따낸 승점(51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부진한 성적 탓에 창단 세 시즌 동안 벌써 감독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이번 시즌엔 V리그 여자부 역대 최다인 23연패의 불명예 기록을 쓰기도 했다.

사실상 '개조'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한 페퍼저축은행에서 초보사령탑인 장소연 감독이 과연 어울리는 지도자인가에 대해서는 배구팬들 사이에서도 많은 찬반의견이 오가고 있다. 실제로 장소연 감독은 프로구단은커녕 고교팀조차 지도했던 경험이 없는 사령탑이다. 만약 선수단을 이끌었던 노하우가 전무한 장소연 감독이 팀 장악에 실패한다면 페퍼저축은행은 다음 시즌에도 지난 세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표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초보감독이 무조건 구단운영에 실패할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소연 감독과 마찬가지로 지난 2014년 해설위원으로 8년간 활약하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부임했던 박미희 전 감독(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여성감독 최초로 프로 스포츠 우승을 달성하며 성공한 감독이 됐다. 장소연 감독 역시 다년간의 해설위원 활동을 통해 경험한 배구를 읽는 눈을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접목한다면 충분히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난 세 시즌 동안 13번 밖에 이기지 못한 페퍼저축은행이 감독 한 명 바뀌었다고 해서 당장 다음 시즌에 성적이 좋아질 거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구단에서도 지난 세 시즌의 성적에 실망하지 말고 꾸준한 지원과 투자를 통해 장소연 신임 감독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당장 성적을 내겠다는 급한 마음을 버리고 매 시즌 성장한다는 목표로 시즌을 치르다 보면 페퍼저축은행도 언젠가 강호로 불리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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