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 3> <서울의 봄> <파묘> 같은 천만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침체에 빠진 극장가는 황금기 시절에 비하면 여전히 침체돼 있는 상황이다. 2023년 여름 성수기에도 200억 내외의 제작비가 투입된 4편의 대작 한국영화가 개봉했지만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만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뿐 설경구, 도경수 주연의 <더 문>과 하정우, 주지훈 주연의 <비공식작전>은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사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극장가, 특히 휴가철이나 명절, 크리스마스 같은 성수기에는 흥행을 이끌어가는 한두 편의 대작영화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흥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는 대작영화가 개봉하면 그만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대작영화의 예매나 현장구매에 실패한 관객들이 함께 상영하는 다른 영화를 선택해 관람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여름 극장가를 지배한 영화는 1761만 관객으로 역대 한국영화 최다관객 기록을 세운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겁도 없이(?) <명량>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해 과감하게 맞대결을 선택했던 이 영화 역시 전국 866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명량>이 주도했던 '여름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손예진과 김남길이 주연을 맡았던 이석훈 감독의 해양 어드벤처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었다.
 
 '거함' <명량>과 맞대결을 선택한 <해적>은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명량>과 '윈윈'에 성공했다.

'거함' <명량>과 맞대결을 선택한 <해적>은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명량>과 '윈윈'에 성공했다.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좋은 연기에 선행까지 실천하는 배우

2003년 MBC 공채 탤런트의 마지막 기수인 31기로 선발된 김남길은 2007년까지 '이한'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이한으로 활동했을 때 출연했던 대표적인 작품이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와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 등이다. 2005년에는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을 연기하기도 했다.

<강철중:공공의 적 1-1>에서 이원술(정재영 분)의 오른팔 박문수를 연기할 때부터 본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김남길은 2009년 자신의 인생을 바꾼 드라마 <선덕여왕>을 만났다. <선덕여왕>에서 어머니 미실(고현정 분)에게 버려진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은 김유신 장군 역의 엄태웅과 김춘추 역의 유승호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며 드라마의 인기를 주도했다. 현재까지도 김남길의 대표캐릭터를 비담으로 기억하는 대중들이 적지 않다.

2010년 드라마 <나쁜 남자>를 끝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군복무를 마친 김남길은 2013년 드라마 <상어>를 통해 복귀했지만 시청률 10.7%로 종영하며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하지만 김남길은 <상어>의 상대역이었던 손예진과 함께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출연해 866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해적>은 현재까지도 김남길의 영화 출연작 중 최고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5년 '칸의 여왕' 전도연과 함께 영화 <무뢰한>에 출연한 김남길은 2016년 원전폭발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 <판도라>를 458만 관객으로 이끌었다. 2017년 드라마 <명불허전>에서 뛰어난 침술을 지닌 조선의 의관을 연기한 김남길은 같은 해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2019년에는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해일 신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남길은 지난 2012년 '길스토리'라는 문화예술단체를 설립해 다양한 문화예술캠페인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9년과 2022년 연말에는 두 차례에 걸쳐 <김남길의 우주최강기부쇼>를 개최하기도 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로 유난히 부상이 잦은 김남길은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데뷔 첫 OTT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에 이어 오는 10월 방송예정인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2> 출연을 확정했다.

코믹과 액션이 조화된 오락영화의 정점
 
 손예진은 <해적>을 통해 화려한 액션연기와 의외의 코믹연기를 동시에 선보이며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

손예진은 <해적>을 통해 화려한 액션연기와 의외의 코믹연기를 동시에 선보이며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2012년 405만 관객을 모은 <댄싱퀸>을 만들었던 이석훈 감독의 신작이 <해적>으로 결정됐을 때 관객들은 기대만큼 큰 우려의 목소리를 동시에 보냈다. 2014년 여름은 김한민 감독의 <명량>과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 같은 한국영화 기대작 뿐 아니라 마블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같은 할리우드 대작들도 개봉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해적>에 대한 기대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4년 8월 6일에 개봉하며 <명량>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의 맞대결을 선택한 <해적>은 개봉 둘째 주까지 <명량>의 기세에 밀리다가 개봉 3주차부터 <명량>을 제치고 관객순위 1위로 올라섰다. 결국 <해적>은 '많아야 200만~300만'에 그칠 거라던 관객들의 예상을 깨고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2014년 여름 극장가의 2인자로 등극했다. 손익분기점이었던 500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는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이었다.

사실 개봉시기는 물론이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양액션이라는 점에서 <해적>은 <명량>과의 비교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비장함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명량>과 달리 <해적>은 마치 스케일이 커진 성룡영화를 보는 듯한 코믹한 액션을 통해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실제로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만 보면 2014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해적>을 능가할 영화는 거의 없었다.

손예진이 연기한 여월은 해적 출신 아버지와 해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해적단의 대단주로 성장한 인물이다. 영화 <작업의 정석> 정도를 제외하면 코미디 영화에 거의 출연한 적이 없었던 손예진은 화려한 액션과 능청스런 코믹연기를 동시에 선보이며 커리어 최다관객을 동원했다. 손예진은 2013년 실제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심각한 범죄 스릴러 <공범>에 출연한 후 곧바로 코믹 액션영화 <해적>을 통해 변신에 성공했다.

1편으로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해적>은 7년 5개월이 지난 2022년 1월 속편 <해적:도깨비 깃발>이 개봉했다. '조선시대의 해적'이라는 소재만 같을 뿐 내용도 출연배우들도 모두 달라진 <해적2>는 강하늘, 한효주, 권상우, 이광수 등 화려한 캐스팅에도 전국 133만 관객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영화가 코로나19 때문에 해를 지나 추운 겨울에 개봉하면서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유해진이 작정하고 웃기면 벌어지는 일
 
 유해진은 10년 넘게 이어진 뱃멀미 때문에 해적에서 산적으로 이직한 철봉을 연기했다.

유해진은 10년 넘게 이어진 뱃멀미 때문에 해적에서 산적으로 이직한 철봉을 연기했다.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해적>의 주인공은 손예진과 김남길이었지만 <해적>에서 관객들의 뇌리에 가장 깊게 각인된 배우는 단연 철봉 역의 유해진이었다. 철봉은 10년 넘게 해적생활을 했지만 뱃멀미와 함께 생선이 입에 맞지 않아 산적으로 전향한 인물이다. <해적>은 유해진이 씬스틸러에서 주연급 배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출연한 영화였는데 유해진이 웃기려고 마음 먹으면 관객들을 얼마나 웃길 수 있는지 작정하고 보여준 듯한 작품이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명품조연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김원해는 <해적>에서 산적단의 서열 2위 춘섭을 연기했다. 고려의 군관 출신으로 두목인 장사정(김남길 분)을 따라 산적이 됐지만 매사에 투덜대는 성격으로 장사정에게도 사사건건 말대꾸를 한다. 특히 해적단을 '찌끄래기'라고 부르면서 대놓고 무시하는데 영화 후반에는 해적단 서열 2위 용갑(신정근 분)이 위기에 처하자 몸을 날려 구해줬다.

김태우가 연기한 모흥갑은 고려의 군관으로 이성계(이대연 분)가 위화도회군을 결정할 때 선봉에 서지만 반기를 든 직속부하 장사정과의 대결에서 눈에 치명상을 입는다. 이후 장사정에게 원한을 가진 모흥갑은 해적의 소행이라고 모함을 하며 마을 하나를 몰살시키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벌인다. 모흥갑은 위화도회군 당시 자신을 막아선 부하를 칼로 베는데 모흥갑에게 살해되는 부하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연극배우 시절의 박해수였다.

걸그룹 f(x)로 활동하던 설리는 <해적>에서 노비출신 해적 흑묘 역을 맡았다. 흑묘는 모든 해적단이 '단주님'이라고 부르는 여월을 유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캐릭터로 영화 후반 위기에 빠진 여월을 구해주기도 했다. 다만 당시만 해도 아이돌 가수의 연기도전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 냉정하던 시절이라 설리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설리의 어색했던 연기조차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해적바다로간산적 이석훈감독 김남길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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