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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2003년 6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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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살인마 전두환 권력을 축출하려는 국민의 봉기였다.

5공정권은 폭압과 살육으로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권력형 부정부패로 국제사회에 한국 이미지에 먹칠했다. 전두환 몰락의 진원지는 1985년 2월에 실시된 제12대 총선이다. 야당이 총 득표율에서 집권당을 앞서면서 그동안 짓눌렸던 민심이 폭발하였다. 

총선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은 권인숙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한열 최루탄 치사사건 등을 자행하면서 5.17쿠데타 2인자 노태우를 후계자로 하는 정권연장을 기도했다.

야당과 재야·시민단체와 학생들이 연대하여 1987년 6월 26일 준혁명적인 민주헌법쟁취국민평화대행진이 이루어졌다. 노태우의 6.29 선언에 이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가 진척되었다. 

관권선거와 야권후보의 난립 등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진 못했으나 6월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고 유신과 5공정권에서 짓밟힌 민주주의가 회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강만길은 민주화의 진척을 지켜보면서,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일제시대 빈민 생활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독립운동사나 친일파 관련 연구 등은 그동안 학계와 언론인들에 의해 상당 수준 진행되고 있었으나, 이 부문은 여전히 미답상태에 있었다. 

그는 조선왕조시대의 '백정' 연구 등 사회 최하층 백성들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고, 이제 일제강점기 빈민들의 생활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덤비기 어려운 분야이고, 그만큼 자료의 수집도 어려웠다.

이 책은 처참했던 식민지시기 민중생활의 실상을 밝힘으로써 그 시대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쓰여졌다. 책 이름을 민중생활사 연구로 하지 않고 빈민생활사 연구로 한 것은 일반 노동자의 생활이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이 시기의 민중 개념을 서둘러 쓸 수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식민지시기의 빈민은 곧 민중의 모체이기도 했다. 

책 안에서 어느 정도 밝혀지겠지만, 식민지시기의 빈민은 단순한 가난한자들이 아니라 의식 있는 민중이었다. 농촌빈민은 바로 치열한 농민운동의 모태였으며 그 변형으로서의 화전민 사회는 민족운동 기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도시빈민으로서의 토막민과 실업자는 그 존재 자체가 식민지 수탈정책의 정확한 증거였으며 토목공사장 막일꾼도 노동운동과 일부 연결되고 있었다.

식민지 수탈정책이 만들어놓은 광범위한 이들 의식 있는 빈민의 존재야말로 바로 식민지시기의 사회성격이나 시대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성격 규명을 위한 하나의 자료를 제공하자는 데 목적이 있고 그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제시했지만, 그밖에도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깔고 있기도 하다. (주석 1)
그가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공역을 들였는지, 목차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서설'에 이어 제1장 <농촌빈민의 생활>에 소작농민의 급증. 2, 소작조건의 악화. 3, 농가수지의 악화. 4, 농민부채의 증가. 5, 농촌빈민수의 증가. 6, 농촌빈민의 생활실태. 7, 농촌 빈민과 임노동. 8,농촌빈민의 이농. 9,농촌빈민의 걸인화.

제2장 <화전민의 생활>에 1, 화전민 증가의 실제. 2, 화전민 증가의 원인. 3, 화전의 경작방법과 작물. 4, 화전민의 경제 상실과 소작인화. 5, 화전민의 가계수지. 6, 화전민 경제생활의 실제. 7, 화전민의 사회생활. 8, 지배당국의 화전민 대책.

제3장 <토막민(土幕民)의 생활>에 1, 토막민의 생성. 2, 토막민수의 증가와 그 분포. 3, 토막민의 생업. 4, 토막민의 주생활·의생활. 5, 토막민의 생계. 6, 지배당국의 토막민 대책.

제4장 <공사장 막일꾼의 생활>에 1, 공사장 막일꾼의 형성. 2, 공사장 막일꾼에 대한 조사. 3, 토수(土水)공사장 취업 조건과 작업환경. 4, 토수공사장 노임과 노동자의 저항. 5, 토수공사장 막일꾼의 의식주 생활. 6, 토수공사장 막일꾼의 교육수준. 7, 토수공사장 막일꾼의 단체의식.

제5장 <실업자 문제>에 1, 실업자의 형성과정. 2, 전국적 실업과정. 3, 도시와 농촌별   실업상황. 4, 식민지 지배당국의 실업대책.

현대인에게는 그 명칭도 생소한 '토막민(土幕民)'에 관한 연구는 특히 돋보인다.

"토막이는 일정한 깊이로 땅을 파고 그 위에 삼각형으로 짚을 덮은 움집형과 거적으로 된 벽과 온돌을 갖춘 가옥형" (주석 2)으로 토굴보다 더 조잡한 주거를 말한다. 일제강점기 농촌의 춘궁민과 화전민 그리고 토막민을 3대 빈민층으로 불렸다. 

강만길은 이 책에서 일제가 정책적으로 조선인 빈민계층을 조성했으나 이들은 민족운동의 기지였다는 주장을 폈다.

"식민시기의 빈민은 단순한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의식있는 민중이었다. 농촌빈민은 바로 치열한 농민운동의 모태였으며 그 변형으로서의 화전민 사회는 민족운동 기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도시빈민으로서의 실업자는 그 존재 자체가 식민지 수탈정책의 정확한 증거였으며 토목공사장 막일꾼도 노동운동과 일부 집결되고 있었다." (주석 3)

〈강만길 저작집 05〉에 묶인 이 책의 해제를 쓴 지수걸 교수는 <민중의 삶과 투쟁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강만길 사학의 큰 특징은 민중들의 삶과 투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강만길은 한국사 속에서 민중이라는 집단주체를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단순한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변혁하는 주체로 그려내는 데 기여하였다. 그가 조선시대사나 한국현대사를 연구하면서 상공업 발달과 자본주의 맹아 문제, 농민층 분화나 노동계급의 형성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일제시대 빈민생활사연구>는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된 강만길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주석 4)

이 책은 학계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내게 지금까지 감명 깊게 읽은 전공책을 하나 꼽으라면 선생의 <일제시대 빈민생활사연구>(창작과비평사 1987)를 들겠다. 이 책은 사실의 나열로 일관된 무미건조한 전문연구서이다. 하지만 석사생 때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으며 절제된 서술에 담긴 역사학자의 따뜻한 시선을 배우고, 입만 열면 추상적으로 '민중'을 거론하며 맥락 없이 날선 비판을하던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1973년 발간한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의 서문에서 "피지배 대중이 박해와 수탈을 극복하고 스스로 생활환경을 개선하며 역사의 표면에 부상해오는 줄기찬  과정"을 밝히는 데서 '기쁨'을 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역사학자 강만길이 평생 탐구한 주제와 학자로서의 태도를 이보다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문장은 없는 것 같다. (주석 5)


주석 
1> 강만길, <책을 엮으면서>, <일제시대빈민생활사연구>, 창비사, 1987.
2> 앞의 책, 238쪽.
3> 앞의 책, 4~5쪽.
4> 지수걸, <해제>, 강만길 〈저작집05〉, 479~480쪽, 창비, 2018.
5> 허은, <평화주의자 강만길을 그리며>, <창작과비평> 2023년 가을호, 35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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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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