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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합격생 수능 등급 하락이 문제는 아니다!

"'시들해진 교사 인기' 수능 6등급도 교대 합격했다". 연합뉴스 4월 28일 기사 제목이다. 종로학원 발표에 기대 몇몇 다른 언론에서도 비슷한 기사를 썼다. 올해 초 정시 합격자 발표 이후에도 많은 언론사에서 비슷한 보도를 했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대다수 언론은 교대 인기 하락 원인을 '교권침해' 증가로 꼽았다. 그마저도 자세한 분석 없이 간단하게 언급하고 말았다. 기사 내용 대부분은 종로학원이 준 교대 별 점수를 나열하는 데 할애됐다.

경향신문 2월 21일 보도가 그나마 정부의 교대 정원 감축과 재정 지원 축소 문제를 짚었다(김나연, 경향신문 2024년 2월 21일 기사, <학생 줄고 교권 떨어지고···달라진 교대 분위기>). 이 기사 역시 '교권침해'를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언론이 호들갑을 떨 만큼 수능 등급이 초등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일까? 수능 1~2등급 학생이 수능 6등급 교대생보다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지적, 정서적 지원을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것은 초등교사뿐만이 아니다. 중등학교 교사는 물론,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 모든 직업에 해당한다. 매우 당연한 소리지만, 수능 점수가 높다고 의사에게 필요한 능력이나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잘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서울대 출신 의사가 강릉에 있는 대학 출신 의사보다 진료를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장비와 지원이 있다면 말이다. 학벌 스펙이 화려한 판사나 검사가 훨씬 더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인 의사와 법조인 출신이 많은 국회의원은 자신들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만큼 국민의 욕을 먹는다. 국회라는 공간 탓인가?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이 무슨 공식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대법관들은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자신이 했던 판결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한다. 출신 대학 때문인가?

학교 성적과 수능 등급은 모두 상대평가 결과다. 점수를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운다. 그런 다음 상위 4%까지는 1등급, 11%까지 2등급, 이런 식으로 수험생을 9등급으로 나눈다. 등급을 구분하기 위해 교과 교육과정에서 전혀 요구하지 않는 능력을 시험하기도 한다.

다양성이 중요하다!

어떤 집단이건 다양성이 중요하다. 미국 대학 학부나 로스쿨에서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을 실시한 이유도 다양성 확보에 있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에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 자체가 불공정과 불평등의 결과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평균 소득이 국민 평균보다 훨씬 높다. 국민이 어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대파' 논란은 그래서 생긴 수많은 해프닝 가운데 하나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한두 번 떡볶이와 어묵을 먹거나 국밥을 먹는다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 엘리트들 가운데 30~40분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가서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공부를 잘해야 주는 장학금을 받으려고 아르바이트에 지친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시험을 준비해 본 법조인과 의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9년을 일하지 않고 사법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가진 이가 대한민국에 몇 사람이나 될까?

다양성 확보라는 면에서 교대 합격 점수 하락은 오히려 긍정적이다.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만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는 이상한 현상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교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경험을 지닌 교사들이 함께 학생들의 현재와 미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학교는 살 만한 공간이 된다.

하지만 정원 축소와 재정 지원 축소는 큰 문제다. 이것은 우리나라 다수 대학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말이다. 정부의 대학 지원이 매우 불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대기업은 더 지원하고 중소기업은 온갖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진짜 문제는?

정원을 조금 늘리는 일 때문에 의료계 전체가 난리다. 그런데, 의대 합격 점수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전공의로 불리는 인턴과 레지던트의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일하는 시간이 길다. 게다가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가 스트레스를 키운다. 사직서를 낼만큼 의료계에 큰 해악을 끼치는 의대 정원 확대도 이루어졌다.

여러 악조건에도 의대 인기는 식지 않는다.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과중한 업무와 인격 모독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검사, 성추행을 당한 검사도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은 많은 돈을 받으면서도 입학 정원 축소를 걱정하지 않는다. 입학생들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무슨 차이일까?

어떤 이는 의사나 검사와 교사를 비교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 주장은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헌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직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어떤 직업은 특정한 사람들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신분제 사회에서나 적용된다. 더구나 '교육이 중요하다'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교대 합격 점수 하락 보도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그대로 담겨있다. 첫째, 대한민국에 퍼져 있는 직업을 보는 편견과 불평등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의대 합격선이 낮아지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 생각에는 '돈'이라는 추가 판단 요소가 들어 있다.

교육을 고민하는 수험생들이 정말 교사의 업무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포기했다면 매우 큰 문제다. 교육과 교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나 교사 집단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둘째,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라는 매우 오래됐고 교육학계에서는 사라지다시피한 논리가 여전히 사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중, 고등학교 시절을 즐기지 않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의 연장이다.

전공의 시절만 잘 견디면, 전문의가 된다. 이후, 개업 의사가 되거나 교수가 되면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의 굴욕과 부당함은 참을 수 있다고 여긴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몇 년만 지나면 꽃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산더미 같은 서류 앞에서 청년 검사를 견디게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육이다. 인공지능과 창의력이라는 깃발을 높이 흔들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청소년 시기의 점수라는 단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상황을 평가한다. 기준이 도착하는 곳은 시간과 돈의 여유다.

사람을 드러나는 숫자만으로 잴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언론도 현상이 지닌 본질을 바라보지 않는다. 하나만 물어보자. 내 자식과 생활하는 사람이 학생의 삶보다 돈과 시간적 여유만을 생각하는 천재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나라면, 매우 불안하고 초조할 것 같다.

태그:#교대, #합격선하락, #6등급, #교육,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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