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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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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는 '역사 대중화'의 방침에 맞춰 꾸며졌다.

'왜?' 코너에 <왜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했는가>(임기환), <38선은 왜 그어졌는가>(이규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코너에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 생각한다>(강만길), '역사 속 작은 풍경' 코너에, <검정고무신>(하원호), '오늘에 살아 있는 역사' 코너에 <신자유주의로부터 자유로운 통일국가를 바라며>(정병옥), <분단시대 역사교육을 넘어서>(신병철), '명문으로 보는 우리 역사' 코너에 <혁명의 길을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박한용), '사실 이렇게 본다' 코너에 <통일신라에서 남북국론으로>(김영하), <여러 얼굴의 전쟁, 임진왜란>(오종록), <동학난에서 농민전쟁으로>(배항섭), <북한의 토지개혁>(이주철), '역사마당' 코너에 <일본인으로 한국사를 공부한다는 것>(안자코 유키)을 실었다.

또한 '인물 바로보기' 코너에 <근대 여명의 '비상한' 혁명가, 김옥균>(하원호), <의열단에서 조선민족혁명당까지, 김원봉>(염인호), <일본 육사 출신의 광복군 총사령, 지청천>(노경채), <진보적 민족주의자, 여운형>(정병준), '교단에서 온 편지' 코너에 <나는 왜 역사를 가르치는가>(윤종배), <일제시대를 가르치며 느낀 점>(장세옥), '옛길여행' 코너에 <옛길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길과 문화, 그리고 '산경표'>(김종혁), '볼거리 읽을거리' 코너에 <식민지와 분단을 온몸으로 거부한 한 여인의 삶 - '장강일기'>(조철행), <새 세기에도 계속되어야 할 미해결의 역사 -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변은진) 등이 담겼다.

창간호는 총 167쪽에 이토록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필자 대부분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장 학자들이었다. 그래서 글이 쉽고 짜임새는 있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그들이 발굴하는 주제도 신선했다. 강만길은 발행인이면서 편집은 전적으로 편집위원들에게 맡겼다.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직후 사비로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주독자층으로 한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간행하기로 했다. 발행인은 내가 맡았지만 계간지 편집은 전적으로 젊은 연구자들에게 맡겼다. 2010년 현재 38호가 발행되었는데, 발행 당초에 생각했던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중심의 계간지는 되지 못하고, 출판사 서해문집의 희생적 도움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주석 1)

그는 창간호에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 생각한다>라는 사론을 썼다. 나중에 별도의 단행본 책명으로도 사용된 제목이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사론의 도입부를 들어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적절하게 대답하려 노력해 왔다. 역사를 배우는 기초적인 목적은 물론 과거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었는가를 아는 데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알되 그것이 현재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아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사회의 이상을 현실화시켜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주석 2)

역사학의 기본가치에 대한 그의 신념은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확고해졌다. 그러나 계간지 발간만으로는 그 가치를 공유하고 실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를 장기적인 과제로 삼고 후학을 키우고 지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창안한 것이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의 설립이다.

이 무렵 예상하지 못했던 자금이 생겼다. 고향 마산에 있는 선산이 도시개발 구역에 포함되면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에 조상들을 납골당으로 모시고, 문중회의를 열어 나머지 산지를 팔기로 했다.

나머지 산지를 팔아서 일부를 일가들에게 나누어 주고 내 몫으로 남은 돈으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만들었다. 세상의 통념이 매장 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바뀜으로써 얻게 된 재부는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은 기금 10억 원을 기본재산으로 하여 우선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간행하고, 해마다 우리 근현대사를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중에서 역사학의 현재성을 겸비하면서 그 논문이 가장 우수한 한 사람을 골라 200만 원의 연구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주석 3)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은 그가 사망한 뒤에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는 그사이에 출판사가 바뀌어 그가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해 오다가 지금은 휴간 상태이다. 각종 인터넷 매체가 출현하고 활자매체보다 영상매체가 익숙해진 시대가 되면서,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계간지는 시의에 적응도가 떨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일을 여는 역사>의 복간을 기대하는 독자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주석
1> <역사가의 시간>, 483쪽.
2> 강만길, <역사는 이상의 현실과 과정이라 생각한다>, <내일을 여는 역사>, 창간호, 신서원, 2000, 31쪽.
3> 위의 책, 48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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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21세기의 서론'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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