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천사들의 현대 무용

세월은 참 무심하다. 그리고 빛처럼 너무 빨리 지나간다. 흐르는 계곡물 위에서 말없이 흘러가는 한 떨기 단풍잎이다. 그 단풍잎에 실린 세월은 흔적도 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한다.

딸아이의 무용 발표회장. 4,5십명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무용발표회장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그 얼마나 대견할까. 강보에 싸인 아이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자라 무용 발표회라는 것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딸아이가 나올 차례. 붉은 무대 옷을 입은 8명의 천사들이 나풀거리며 무대를 수놓는다. 조명은 은근한 나트륨 빛깔을 띠고 있다. 붉은 옷은 그 나트륨 등과 어울려 노랗게 변하기도 하고, 더 붉은 빛깔로 변하기도 한다.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이울어진 달이 점차 고도를 높이고, 가을밤의 마지막 흔적들은 무대에서 흘러나온 음악을 따라 작은 궤적을 남길 뿐이다.

아이들의 경쾌한 몸놀림은 그 자체가 하나의 박자였다. 음악의 흥겨운 리듬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순수한 그림자에 하나씩 접합하는 몸짓이었다. 비록 짜임새 있고 절도 있는 몸짓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무용은 순수함의 무대였다.

어느덧, 아이들의 무용이 끝나고 발표회장은 작은 피날레를 장식한다. 커다란 박수와 함성. 부모들이 보내는 작은 박수들. 아니 그 어떠한 박수보다 더 큰 박수들. 아이들의 함박 웃음이 허공에 유연하게 날리었다.

ⓒ김대갑 | 2007.11.1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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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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