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에 오르기 직전의 이종훈 선수

링에 오르기 직전의 이종훈 선수 ⓒ 이충섭


2월 23일 충남 천안북일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지난해 12월 25일 고(故) 최요삼 선수 경기 이후 처음으로 프로복싱 경기가 열렸다.

<오마이뉴스> '한국복싱살리기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소개되었던 4명의 한국 챔피언(이재성, 문병주, 손정오, 이종훈) 중 인터뷰 이후 첫 경기를 갖게 된 선수는 바로 이종훈 선수.

그는 '죽을 고비도 넘긴 스무살의 복서'로 소개되었던 바와 같이, 전국체전시합 중 6시간 동안 의식불명의 상태를 겪고서도 프로에 입문해 작년에만 8전 전승으로 한국챔피언에 오른 바 있다. 최요삼 선수 사고 이후 첫 경기로 이종훈 선수가 링에 올라 걱정과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11월부터 연거푸 시합이 연기되는 바람에 체중 관리에 무척 애를 먹었다고 했지만, 경기 하루 전에 시행된 계체량에서는 한계체중 (57.15Kg)으로 무사히 통과를 했다.

하지만, 도전자 소정석 선수가 56.30Kg으로 가뿐히 통과하는 모습을 보고 비록 띠동갑인 32세지만 상대 선수의 운동량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돼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16전 8승(2KO) 7패 1무의 전적은 뭐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신인왕에 올랐고 까다로운 왼손잡이 인파이터로 현재 동급 랭킹 2위의 만만치 않은 선수였다.

 경기전 건강검진 - 수동혈압측정기와 청진기가 장비의 전부이다

경기전 건강검진 - 수동혈압측정기와 청진기가 장비의 전부이다 ⓒ 이충섭


경기 당일 시합 전 1시간에서야 건강검진을 하는 것은 역시나 바뀐 것이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흡연, 음주를 하는지, 과거 질병 경력이 있는지, 현재 질병이 있는지를 묻고서 개안 검사를 한뒤 혀를 내밀어 보이고 혈압을 잰 것이 전부였다.

홍코너, 청코너 두 곳에 마련된 선수대기실은 각각 12명의 선수와 코치가 사용하기엔 협소했을 뿐만 아니라 의자도 몇 개 없었다. 더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협회 측 인사들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다. 담배연기 자욱한 대기실에서 선수들은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관중석 뒤편에서 시합준비 중

관중석 뒤편에서 시합준비 중 ⓒ 이충섭


이종훈 선수는 선수대기실에 들어가는 대신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체육관 한켠 관중들 앞에서 손에 붕대를 감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가운이 마련되었다고 자랑을 한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내게 쪽지를 보내서 이종훈 선수 연락처를 물어보았던 한 업체에서 마련해준 가운이라고 그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이기겠다고 말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가슴 한켠이 짠해져 왔다.

 오마이뉴스 기사로 맺어진 스폰서가 제공한 가운

오마이뉴스 기사로 맺어진 스폰서가 제공한 가운 ⓒ 이충섭


드디어 경기 시작. 아니나 다를까 왼손잡이 도전자는 초반에 강공으로 나섰다. 눈깜짝할 새 챔피언은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불과 1회전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걱정하는 순간에 이종훈 선수의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소정석 선수는 무릎을 꿇었다. 전세를 바로 역전 시키는 다운. 경기는 그야말로 난타전이었다.

 기본기가 좋은 이종훈 선수의 멋진 자세

기본기가 좋은 이종훈 선수의 멋진 자세 ⓒ 이충섭


 왼손 스트레이트 공격을 하는 도전자 소정석 선수

왼손 스트레이트 공격을 하는 도전자 소정석 선수 ⓒ 이충섭


 1라운드에서 다운을 당하는 소정석 선수

1라운드에서 다운을 당하는 소정석 선수 ⓒ 이충섭


2회전에서 이종훈 선수는 다시 한 번 다운을 뺏어낸다. 이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스무살 답게 체력과 순발력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소정석 선수도 만만히 포기하지 않았다. 왼손잡이 특유의 변칙성 공격에 3~5라운드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흘렀다. 하지만, 그간 라운드에서 힘을 비축하기라도 했던듯 6라운드에서 이종훈 선수의 맹공에 소정석 선수는 주저앉았고 심판은 경기를 중단 시키고 말았다. 챔피언의 KO승이었다.

 KO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이종훈 챔피언

KO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이종훈 챔피언 ⓒ 이충섭


주최 측에 맡겨놓았던 챔피언 벨트를 다시 차고 트로피를 받고 링에서 내려왔다. 오늘 벌어졌던 6경기 가운데 가장 수준높고 박진감 있는 경기를 보여준 이종훈 선수의 기량에 큰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링에서 내려온 이종훈 선수가 격려 속에 붕대를 자르는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른다. 1라운드에 라이트 훅을 치다가 정권 부분이 아닌 엄지손가락이 먼저 맞아서 매우 힘겨웠다고 한다. 골절된 것이 아닌가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흰색 트렁크에는 선홍색 핏방울이 선명했다.

 경기후 붕대를 풀고 있는 모습

경기후 붕대를 풀고 있는 모습 ⓒ 이충섭


많은 축하를 받고 기념촬영을 했지만, "왼손잡이와는 항상 쉽지 않은 시합이 된다", "더 멋진 경기 보이지 못해 죄송하다"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스무살 답지 않게 의젓해보였다.

나는 더 취재를 해야하고 이종훈 선수가 먼저 경기장을 떠나야 할 순간. 지난번 기사로 받았던 원고료에 이번 기사로 받을 원고료를 최고 수준으로 예상을 해서, 준비해왔던 봉투를 코치에게 찔러주었다. 그저 순전히 와이프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었다.

"불쌍한 권투선수들 기사써서 번 돈으로 허튼짓 하지마라."

의젓한 와이프에게 그래도 이 말만은 전해주고 싶다.

"권투 정말 멋진 운동이다. 너도 한 번 해봐라."

 천안까지 응원나온 체육관 식구들

천안까지 응원나온 체육관 식구들 ⓒ 이충섭


덧붙이는 글 다음기사로는
1. 건강검진에 관한 문제점
2. 34살의 주부로 이날 캐나다 출신과 데뷔전을 가졌던 여자 복서 이야기 예정입니다.
이종훈 페더급 한국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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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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