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 왕징 입구에 새겨진 올림픽 휘장의 모습이다.

코리아타운 왕징 입구에 새겨진 올림픽 휘장의 모습이다. ⓒ 김대오


베이징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됐다. 나는 3년간 베이징을 떠나 있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둘러보고자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엄지발가락에 상처가 생겼다. 사실 어디를 가든 넓어서 많이 걸어야 하는 베이징을 우습게 본 탓도 있고, 34℃를 넘나드는 기온에 신체가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도 맨발로 샌들을 신은 내 탓도 있다.

다시 찾아 살펴보는 베이징의 모든 것이 6년 전 처음 찾았을 때만큼이나 흥미롭다. 불과 일주일이지만, 베이징의 변(變)과 불변(不變)을 하나하나 체크해보니 "하드웨어는 전자인 변(變)에, 소프트웨어는 후자인 불편(不變)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헸다.

베이징 근교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져와 팔던 아침시장에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좁은 길들도 왕복 8차선의 대로로 바뀌었다. 자전거 수리상, 양꼬치 판매상, 불법복제 CD판매상 등으로 거대한 길거리 문화를 형성했던 노점상들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코리아타운이던 왕징 전철역에서 아파트단지까지 불법으로 운행되던 그 많던 삼륜오토바이며, 자전거들 또한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악명높은 무질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사람과 자전거, 차량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먼저 가겠다고 고개를 들이민다. 그 치열한 다툼에서 신호는 자연스럽게 무시되고 무단횡단, 불법 U턴,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다. 길거리에는 분리수거용 휴지통이 설치되어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여전하다. 다만 그것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늘었을 뿐이다. 정찰제도 아직 정착되지 않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씌우려는 행태 또한 여전하다.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시간

 작은 단위의 주택 입구에도 올림픽 휘장이 도안되어 있는데, 올림픽을 이용해 사회 전반을 변혁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작은 단위의 주택 입구에도 올림픽 휘장이 도안되어 있는데, 올림픽을 이용해 사회 전반을 변혁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 김대오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국기와 오륜기를 나란히 걸어놓는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점 주인은 "자발적으로 걸었다"고 말하며 웃는다.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국기와 오륜기를 나란히 걸어놓는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점 주인은 "자발적으로 걸었다"고 말하며 웃는다. ⓒ 김대오


3년 전에 살았던 아파트에 가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데 한 주민이 다가와서는 "왜 촬영을 하냐"고 묻는다. 3년 전에 살던 곳이라 감회가 새로워서 촬영한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바로 나오는 말이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파트 관리를 담당하는 경비원도 아닌 일반 주민까지도 이렇게 올림픽을 이유로 촬영을 제지한다는 것이 참 놀랍다.

베이징시민 스스로가 자발적 검열에 동참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이 올림픽 개최 도시의 시민으로서 생겨나는 자긍심에서 기인하는지,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와 교육의 효과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쨌든 중국 정부가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시간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사회 변혁을 노린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길거리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한 할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지는 사회변화의 규모와 파급 효과는 가히 문화대혁명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긍정적인 변화를 이르는 말이다.

거리마다 올림픽 깃발이 나부끼고 작은 단위의 주거지 입구에도 올림픽 휘장이 붙었다. 언론매체는 물론, 길거리와 건물 상가 내에서조차 올림픽이 며칠 남았는지 매일 카운트다운 되어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다.

막 여름방학을 한 베이징 인근 성시의 학생들은 캠프 형식으로 베이징을 방문하여 올림픽 관련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어딜 가든 올림픽 관련 도안의 T셔츠를 입은 단체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올림픽 기념품이 상점마다 즐비하고, 거의 모든 상품에도 올림픽마크가 새겨졌다.

사회 통제·관리기제로 작동하는 올림픽

 매일 매일 카운트다운되는 올림픽, 이 시그널에 맞춰 중국인들은 통제와 관리에 순순히 응해야 함을 주입 받는다.

매일 매일 카운트다운되는 올림픽, 이 시그널에 맞춰 중국인들은 통제와 관리에 순순히 응해야 함을 주입 받는다. ⓒ 김대오


베이징에서 올림픽은 이제 거대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그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야 오래된 건물들을 쉽게 때려 부수고,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고, 노점상들의 철거에 따른 불만을 쉽게 잠재울 수 있고, 베이징에 와있는 많은 민공들을 불법거주자로 몰아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고, 또 많은 외국 자영업자들과 유학생들의 비자 연기를 거부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이다.

왕징에서 생활하는 한 교민의 말에 따르면 약 3만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비자 연장을 받지 못해 귀국해 현지 상권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한다. 또 베이징에 진입하는 외지 차량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신분증이 없거나 위험한 물건을 실은 차량은 아예 베이징으로의 진입을 막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방에서 베이징으로 공급되는 쌀·채소 등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일부 시민들의 사재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전반적인 사회적 성숙이 담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안전하고 원만한 올림픽 개최를 위해 과도한 통제와 관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어서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작은 단위의 주택 입구에도 올림픽 휘장이 도안되어 있는데, 올림픽을 이용해 사회 전반을 변혁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작은 단위의 주택 입구에도 올림픽 휘장이 도안되어 있는데, 올림픽을 이용해 사회 전반을 변혁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 김대오


정부의 과도한 올림픽 통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조금씩 제각각이다. "안전한 올림픽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통제를 수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중국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차량 2부제 등 과도한 통제에 불만을 갖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자동차를 보유한 한 중국인은 "매달 도로유지보수비로 140위엔(우리 돈 2만원) 정도를 내는데, 차량2부제 기간(7월 20일에서 9월 20일) 자동차를 사용 못해도 바로 환급해주지 않고 내년에 환급해준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한 헤이처(불법영업 택시) 운전사는 "지금은 단속도 심하고 벌금도 무겁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앞으로 두 달만 잘 참으면 된다"고 말한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중국 사회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 지금은 먹혀들어가는 그 힘이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유효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올림픽이라는 지렛대가 아직은 잘 작동되고 있다. 올림픽 이후에도 그 힘이 유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올림픽이라는 지렛대가 아직은 잘 작동되고 있다. 올림픽 이후에도 그 힘이 유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 김대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베이징올림픽 올림픽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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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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