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높이의 힘! KCC 하승진이 KT&G 수비수들 사이에서 강력한 원핸드 덩크를 성공시키고 있다.

KCC 하승진이 KT&G 수비수들 사이에서 강력한 원핸드 덩크를 성공시키고 있다. ⓒ 전주 KCC

 

하승진(전주 KCC)의 등장은 올해 프로농구 최고의 '핫 이슈'였다. 역대 한국농구 사상 최장신(221.6cm) 선수, 한국인 최초의 NBA리거라는 타이틀. 국가대표팀의 주역이자 앞으로 한국농구 10년을 이끌어갈 기대주로서 하승진에게 모아지는 기대는 엄청났다. 하승진의 국내 무대 복귀와 프로 진출 선언으로 인하여 KBL은 97년 원년이후 계속 지켜온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마저도 하루아침에 포기할 정도로, 하승진의 존재가 주는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러나 어느덧 시즌이 2/3를 소화하고 올스타전 휴식기를 앞둔 현재, 리그에 예상했던 것만큼의 ‘하승진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승진은 올시즌 28경기에 나서서 8.2점. 6.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보통 신인이었다면 이정도도 준수한 성적이라고 했겠지만, 하승진이라는 이름값에 걸었던 기대치에 어울리는 성적은 아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쉽지않은 프로 무대

 

KCC는 현재 20승 17패로 LG와 공동 4위에 올라선 채 휴식기를 맞이했다. 좋은 성적이지만 그간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승진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KCC는 시즌 개막전 하승진·서장훈을 중심으로 한 ‘높이의 농구’를 표방하며 우승후보로까지 평가받았다. 하승진은 초반 외국인 선수가 1명만 출전하는 2·3쿼터에 식스맨으로 보직을 임명받았다. 엄청난 신장과 파워를 앞세운 골밑플레이는 존재만으로도 상대에게 큰 부담이었다. 11월 9일 전자랜드전에서는 30분간 출전하며 21점 18리바운드를 기록, ‘하킬 오닐’의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기동력에 문제가 있는 하승진과 서장훈의 공존에 실패하며 팀은 중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엄청난 신체 조건에 가려진 하승진의 약점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골밑에 자리잡으면 막을 상대가 없었지만, 그 전의 과정이 문제였다. 자세가 높고 볼핸들링이 투박한 하승진은 골밑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무용지물이었다. 볼을 안정적으로 캐치하지 못해서 실책을 남발하기 일쑤였고, 드리블이 불안해서 골밑에서 볼을 잡더라도 ‘캐치 앤 샷’이 아닌 이상 포스트업으로 직접 볼을 끌고 들어가서 득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상대 수비가 더블팀을 들어왔을 때 외곽으로 공을 다시 빼주는 피딩 능력도 부족했다.

 

물론 하승진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주전 가드 임재현의 극심한 부진으로 KCC에서 하승진을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드가 없었다는 것도 하승진의 위력을 떨어뜨렸다.

 

또한 하승진의 최대 약점은 자유투였다. 하승진은 올시즌 123개의 자유투를 얻어내며 팀내에서 마이카 브랜드(152개) 다음으로 많은 자유투 기회를 잡았지만 성공률이 39%(48개 성공)에 불과하다. 초반에는 하승진이 골밑에서 자리를 잡으면 막을 수 없는 경우에만 파울로 끊었지만, 자유투 난조가 계속되면서 상대팀이 아예 노골적으로 하승진을 노리고 파울작전을 구사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지난 12월 2일 LG와의 2라운드 경기가 좋은 예다. 하승진은 4쿼터와 연장전에 연이어 결정적인 자유투들을 모두 놓치며 팀이 역전패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서장훈과의 공존도 실패로 돌아갔다. 두 선수를 동시에 출전시켰을 때 높이는 위협적이지만 정작 공수전환에서는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출전시간과 팀내 비중에 불만을 품은 서장훈은 트레이드를 자청하여 전자랜드로 이적했고, 팀은 8연패 수렁에 빠지며 3라운드 초반 한때 8위로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하승진도 12월 19일 전자랜드전 이후 발가락 부상으로 무려 한달 가까이 결장하며 팀의 위기탈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하승진이 코트를 떠나있는 동안, KCC는 팀컬러를 새롭게 일신하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노장 추승균이 1인자로 올라섰고, 트레이드를 통하여 새롭게 가세한 장신가드 강병현, 임재현의 부상으로 식스맨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신명호 등이 팀의 중심을 차지했다. 높이의 농구에서 스피드 농구로 전환한 KCC는 8연패 탈출 이후 최근 14경기에서 11승을 따내는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며 다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하승진은 1월 15일 KT&G와의 경기를 통해 한달만에 코트로 귀환했다. 복귀전에서도 해프닝이 있었다. 이날 체력과 경기감각 유지 차원에서 7분 14초만을 소화했던 하승진은 의욕이 지나쳤던 탓에, 경기후 언론 인터뷰에서 출전시간에 불만을 토로하며 한동안 설화에 휩싸여야했다. 여론은 하승진의 철없는 언행을 강도높게 비판했고, 하승진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사과해야했다.

 

완성되지 않은 하승진 '아직은 성장중'

 

그러나 첫 시즌의 혹독한 프로무대 적응기는 하승진의 마인드에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하승진은 최근 인터뷰에서 “신인왕 욕심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예전에는 코트에 나설 때마다 자신이 뭔가 보여줘야하는 조급함이 앞섰다면, 지금은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한 것.

 

최근 하승진은 팀에서 로테이션 형식으로 기용되고 있다. 붙박이 주전은 아니지만, 상대팀이나 매치업에 따라 ‘높이’를 살려야하는 상황이 되면 하승진의 출전시간이 대거 늘어난다. 여기서 하승진의 역할은 득점만이 아니다.

 

리바운드나 스크린 플레이, 더블팀 유도 등 궂은 일을 통해 동료들에게 공간을 창출해주는가 하면, 수비에서 외국인 선수를 견제하는데도 하승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외국인 선수들조차 하승진의 높이에는 고전하기 마련이다. 테렌스 레더(삼성)나 아이반 존슨(LG)같이 득점력을 자랑하는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하승진의 블록슛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물론 공격은 여전히 단조롭다. 쉬운 골밑 레이업이나 공격 리바운드에 이은 덩크슛이 대부분의 득점루트이고, 자유투는 여전히 들쭉날쭉하다. 하승진이 공격병기로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려면 안정된 포스트업이나, 골밑에서 떨어진 상태에서도 득점을 성공시킬 수 있는 훅슛 능력을 개발해야한다는 지적이다.

 

하승진의 롤 모델은 샤킬 오닐이나 서장훈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롤 모델은 디켐베 무톰보가 되어야할 것이다. NBA 덴버와 필라델피아, 휴스턴 등에 선수생활을 이어오며 리바운드왕과 올해의 수비선수상 등을 석권했던 무톰보는 화려한 득점력을 자랑하는 공격형 센터는 아니지만, 수비와 리바운드, 블록슛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선보이며 NBA 최고의 ‘수비형 센터’로 자리잡았다.

 

그와 함께 90년대 동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센터들이 저마다 부상과 노쇠화 등으로 쓸쓸한 말년을 보내며 사라진 반면, 무톰보는 40대를 넘긴 나이에도 장수하며 NBA 노장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야오밍이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했던 지난 06~07시즌에는 식스맨에서 주전으로 나서면서 평균 더블-더블에 육박하는 기록으로 ‘회춘’ 활약을 선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승진은 아직 약점이 많은 선수다. 대학 진학이후 선수로서 기본기를 아직 탄탄하게 갖추기 전에 섣부른 미국 진출을 시도한 것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마 무대에서는 엄청난 신체조건을 활용한 농구만으로도 성공이 가능했겠지만 프로무대는 결코 녹록지않다. NBA리거라는 타이틀과 보기 드문 하드웨어는 아직 선수로서 완성되지 않은 하승진에게 과도한 기대치를 걸게 했던 빌미가 되었다.

 

하승진은 완성된 선수가 아니라 아직 성장하고 있는 선수다. 단점도 많지만 하승진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확실한 장점도 적지않다. 샤킬 오닐이나 하킴 올라주원 같은 선수들도 항상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성공한 선수들은 자신의 단점보다 장점을 잘 살려낸 케이스다. 그리고 하승진은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한국 농구무대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2009.01.29 13:33 ⓒ 2009 OhmyNews
농구 하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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