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당시의 난징 대학살을 그린 영화 <난징 난징>

중일전쟁 당시의 난징 대학살을 그린 영화 <난징 난징> ⓒ 부산국제영화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중국 영화 <난징 난징>과 한국 영화 <작은 연못>은 각각 중일전쟁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이 그려진다.

<난징 난징>이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난징을 점령한 일본의 잔악한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면, <작은 연못>은 1950년 노근리에서 벌어진 우방국가 미국이 한국 민간인들을 대하던 시선이 담겨 있다.

두 영화에서 나오는 힘없는 민간인들은 모두가 무차별한 폭력과 억압에 만신창이가 될 뿐이다. 학살 만행을 저지른 두 주체는 어떤 면에서는 상이하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각각의 다른 역사적 사실이지만 전쟁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아픔은 아군에게 당하든 적군에게 당하는 강도가 다르지 않음을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던 도시, 1937년 난징

[난징 난징] 1937년 12월 중국의 수도 난징. 일본군의 공세에 사령관마저 도망간 난징의 중국군 병사들은 오합지졸에 다름없다. 그들은 그저 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후퇴하려는 군인들과 이들을 막기 위한 아군 간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도시에 남은 패잔병들은 게릴라전으로 저항을 하지만 끝내 포로로 잡히는 순간, 이들의 신세는 모두 한결같다. 

끝없이 자행되는 학살. 어떻게 죽느냐가 다를 뿐이다. 아무 힘도 못 쓰고 일본군의 총창에 찔리고, 난사되는 총탄에 해변의 바닷물에 얼굴을 묻고, 건물에 갇혀 화형당하고, 생매장 당하는 포로들. 차라리 일본군에 맞서다 쓰러진 사람들이 더 낫게 보이기도 한다.

죽은 사람들 못지않게 살아있는 사람들도 지옥과 같은 나날이다. 여자들은 겁탈당하고 황량한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묵묵히 길을 걷다가 일본군이 이유 없이 쏘는 총탄을 맞아야 한다. 국제난민보호구역에 피해 있는 사람들만이 그저 안전하게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시련은 그들도 피해갈 수 없을 만큼 가혹하게 보인다.

난민들을 위해 국제보호구역을 설정한 독일인 '욘 라베'는 쉰들러를 연상시킨다. 그의 헌신이 많은 사람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비서는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일본에 매수돼 더 큰 고통을 자초한다. 역사가 아닌 지금 현실에서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군상들의 모습이지만 잘못된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는 너무 가혹하다. 

중국 난징은 '삶과 죽음의 도시'다. 적어도 영화 <난징 난징>에서는 그렇다. 영문 제목('The city of life and death')처럼. 비참하게 살아있는 것 또한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곧이어 죽음은 현실로 닥쳐오기에.

역사적 사실에 매몰되지 않은 휴먼 드라마

 일제의 난징 대학살을 그린 영화 <난징 난징>

일제의 난징 대학살을 그린 영화 <난징 난징> ⓒ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의 창에 섹션에 출품된 <난징 난징>은 중일전쟁 당시 난징 대학살을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오래된 영상을 보듯 건조한 흑백영상으로 촬영된 1937년 난징의 거리에는 삭막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 일본의 잔악한 학살 등.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듯 아주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주지만 그럴수록 당시의 현실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 만큼. 역사 속 현실을 전달하기 위한 흑백필름은 그 전달력이 뛰어났다. 

영화에서 보이는, 학살자나 학살의 위협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그들 모두에게 작용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점령군 치하의 중국인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면, 일본군에게도 중국의 도시에서 갖는 두려움을 지울 수 없다. 일본군의 시선에서 엿보이는 난징의 모습이다. 그들이 저지르는 온갖 만행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데, 그럴수록 두려움은 커지기만 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로 그려낸 역사는 이웃 중국에서 벌어진 비극적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왠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똑같은 역사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의 압박과 수탈, 학살의 만행에 보이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잔인성은 우리 역사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 

<난징 난징>에는 당시 일본군 성노예가 됐던 여인들의 삶이 비치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을 뻔뻔하게 부인하고 있는 일본에게 말해주는 듯, 새로 위안소를 차리며 일본군 장교는 "일본여자 5원, 조선여자와 중국여자 2원"을 외친다. 가증스런 일본군 장교의 모습에 씁쓸한 기분이 들고, 고통당하는 여인들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루추안 감독이 만든 <난징 난징>은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칸의 마켓에 나와 부산이 건진 작품인데, "칸 공식 초청작이었어도 무방할 만한 수작일 만큼 상당히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 아시아 영화 담당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시선이다. 칸이 중국에서 활동 정지를 당한 <여름궁전> 로우예의 작품을 공식 초청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중국 정부가 다른 영화에 대한 출품을 막았다는 것.

너무 역사적 사실에만 매몰되지 않은 장중한 휴먼 드라마이고 극도의 난관에 처한 사람들이 겪는 심리를 잘 나타냈다는 것이 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의 시각이다.

전쟁 속 피난 과정에서 평온함 깨진 1950년 7월 노근리

 영화 <작은 연못>에서 피난민들의 남하를 가로막고 있는 미군들

영화 <작은 연못>에서 피난민들의 남하를 가로막고 있는 미군들 ⓒ 부산국제영화제


[작은 연못]1950년 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 후. 평온하기만 했던 충청도의 산골마을에도 전쟁의 암운이 드리워진다. 읍내에서 가게를 하는 문 선생의 사위를 잡기위해 경찰이 한밤중에 들이닥치고, 마을로 피난 오는 사람도 생겨난다.

아이들은 신나게 물가에서 멱을 감고, 뛰어놀지만 어른들의 시선은 전쟁에 따른 두려움으로 어두운데, 어느 날 나타난 미군이 '곧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며 마을 사람들의 피신을 권고한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 마을 주민들.

마을 사람들의 논의 끝에 모두가 근처 산으로 피신하지만 빨치산들이 출몰하는 곳이라며, 미군은 낙동강 이남으로 피난을 요구한다. 정부도 부산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에 힘없는 이들은 가족들을 이끌고 낙동강을 향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나는 곳에서 만나는 미군들에게 이들은 시달림만 당할 뿐이다.

철길을 따라 이동하는 피난민들에게 가해지는 미군의 무차별한 공격.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미군에 의해 식솔이 학살당하며 피난하지만 아무 무기도 없는 평범한 민간인들에게 가해지는 제도적인 만행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작은 연못>은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의 노근리 민간인 학살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아무런 잘못 없이 미군의 피난 요구에 따랐을 뿐인 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영화는 자막을 통해 알려준다.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자신들을 지켜주러 왔다고 믿던 군인들의 명령에 의해 애꿎게 희생되는 모습에 비극적 역사에 대한 아픔이 느껴진다.

영화의 앵글은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던 사람들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마을 소개를 요구하며 '트럭으로 피난시켜주겠다'는 미군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지만, 미군기에서 쏘아대던 폭격과 기총 소사에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철길 아래에 피신한 사람들에게 미군의 총탄세례가 퍼부어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살아남아야 할 사람들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보낸다. 살아서 대를 이으라며 어둠 속으로 자식을 보내는 부정이 그렇고 남편의 생존을 바라는 아내의 마음이 그렇다. 우리 아들 제발 좀 데리고 나가 살려달라는 모정은 미군의 편의에 의해 학살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절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보이는 상대적 경중

 노근리 학살을 이야기 한 영화 <작은 연못>

노근리 학살을 이야기 한 영화 <작은 연못> ⓒ 부산국제영화제


<난징 난징>이 일본에 공격당한 중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공포를 표현했다면, <작은 연못>은 미군에 기대감을 갖고 있던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과장됨이 없게 보여준다. 분명 일본군과 미군의 만행이 절대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수십만 명대 수백 명으로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볼 때는 그 수치에 큰 경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현실을 부인하며, 학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절해 수십 년 간 고통을 유족들에게 안겨준 것은 학살에 더해지는 더 큰 폭력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다. 비밀문서가 공개돼야 마지못해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던 행태 역시. 

우습게 보이는 것은 영화 속 미군을 통역하는 사람이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패전 후 조선을 떠났지만 미군의 안내자로 나서는 일본인. 그래서 영어가 일본어로 전달되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마을 이장을 통해 미군의 의사가 전달되는 모습은, 영화가 뭔가 남겨주고 싶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은 연못>은 이상우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기대됐던 영화로 알려졌다. 그만큼 작품성 있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부산영화제가 좌파 공세만 받지 않았더라면 혹시 몰랐을 일이기도 하다. 미군 학살의 진실을 그려냈다는 것에 대해 일부 관계자들이 부담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작은 연못>은 얼마 전 타계한 배우 고 박광정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정한 주연이 없는 출연한 배우 모두 주연인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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