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권정생 선생과 함께 영남 '삼현'으로 불리신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현암사)>에서 한 스님께 보낸 편지글을 이렇게 끝맺으셨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엔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이런 '삶'은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원스(2006)>는 전우익 선생의 '삶=사랑'의 정의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겨우 16만 달러의 제작비로, 출연자들 이름도 제대로 붙이지 않은 채, 손에 든 카메라로 불과 17일 만에 찍어 '제낀' 이 영화는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어떻게 정성을 쏟았는지, 그리고 그 '남자'는 '음악'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잘 보여준다.

'악사'와 '행상'의 사랑 이야기

남자는 거리의 악사(글렌 핸서트)이고, 여자(마르케타 이글로바)는 잡지나 꽃을 파는 행상이다. 여자가 남자를 먼저 알아본다. 늦은 밤 더블린의 번화가 그래프턴 스트리트에서 열창하는 악사의 노래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챈 여자는 10센트 동전을 하나 기타 케이스에 던져 넣으면서 말을 건다.

행상: "왜 낮에는 그 노래 안하니? 보이기는 매일 보이던데..."
악사: "낮엔 사람들이 아는 노래만 들으려고 하잖아. 이런 노래는 밤에만 불러. 돈을 벌 수 없잖아. 사람들이 듣지 않으니까..."
행상: "나는 듣는데..."
악사: "겨우 10센트 줬잖아"
행상: "돈 벌려고 하는 거야?"

이게 이 영화의 첫 만남, 즉 '밋큐트(meet cute)'다(영화 대본작가와 평론가들은 주인공들의 첫 만남을 밋큐트라고 부른다(<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 2006)>에서도 엘리 월러치가 케이트 윈슬렛에게 <푸른 수염의 여덟 번째 아내(Bluebeard's Eighth Wife: 1938)>의 게리 쿠퍼가 끌로뎃 콜베르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말을 쓴 적이 있다).

악사의 노래에서 재능과 아픔을 알아본 행상은 끈질긴 심문(?)으로 악사가 10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으며, 낮에는 아버지 가게에서 청소기를 고치고, 밤에는 연습 삼아 거리에서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사람임을 알아낸다. 다음날 행상은 진짜로 고장 난 청소기를 끌고 와서 고쳐달라고 하는데, 대화를 이어가려는 행상의 적극성이 당차면서도 귀엽다.

남의 가게에서 부른 이중창

악사도 행상을 알아본다. 피아노 살 돈이 없는 행상이 주인의 허락을 받고 매일 1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는 악기점에서였다. 행상의 멘델스존 연주를 바라보는 악사의 표정은 경이 그 자체다. 서서 듣다가 쭈그려 앉고 마는 악사는 "그거 네가 만든 노래냐?"고 무식한 질문도 던진다. 악사와 행상은 음악에 그리고 서로에게 감탄한다.

이어지는 '서서히 무너지기(Falling Slowly)'의 이중창. 악사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행상은 피아노를 치면서 화음을 넣어준다. 완벽한 하모니. 영화 전체를 통해 눈길과 마음을 끄는 자석 같은 장면이다. 이 노래의 내용은 영화 내용을 그대로 요약한다.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무너져 가는 악사는 희망의 목소리로 자신을 고향으로 보낼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당신을 모르지만 그래서 더더욱 당신을 원해요.
할 말을 잃고 항상 바보 같지만 어쩌질 못해요.
서서히 무너져도 친근한 눈 때문에 돌이킬 수 없어요
분위기에 잔뜩 짓눌려서 나는 온통 깜깜한 바보예요.
자신과 싸우며 고통을 겪었으니 이젠 이겨낼 차례예요.
가라앉는 배를 고향으로 보내줘요, 아직 시간이 있어요.
희망찬 목소리로 이젠 이겨내기로 했다고 말해 주세요.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

호기심 어린 밋큐트는 진지한 관심으로 발전된다. 만남과 대화가 이어지면서 패턴이 나타난다. 악사는 냉소적이고 매사에 머뭇거린다. 행상은 그런 악사를 자꾸 자극한다. 노래해 보라고 하고, 다른 노래도 들려달라고 하고, 녹음하라고 하고, 런던에 가라고 하고, 바닷가로 오토바이 소풍을 가서는 체코말로 "사랑하는 건 너야"라고 말해 준다.

"뮬뤼에 셔?"
"뮬뤼에 떼베."

행상은 실제로도 열심히 악사를 돕는다. 노래에 가사를 써주고, 양복을 골라주고, 녹음실 대여비를 깎아주고, 은행 융자 상담에 함께 가주고, 녹음할 때에는 직접 피아노도 친다. 늘 풀이 죽어 있고 냉소적이던 악사는 신기하게도 행상이 시키는 대로 한다. 노래를 만들고, 불러주고, 연주하고, 녹음하고, 마침내 런던에 가기로 결정한다. 행상은 악사에게 거의 수호 천사나 다름없다. 그래선지 행상은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를 노래한다.

그댄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임에 틀림없지
엉뚱한 길에 떨어지고 만 거야
그대는 많은 것에 빛을 비추어 주었지.
그러나 이제는 홀로 서 있구나.

구멍난 기타와 넘지 않는 선

행상이 천사 같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악사도 놀고 먹은 것은 아니다. 그가 음악에 쏟은 정성은 행상이 악사에게 쏟은 정성에 못지않다. 영화를 보면서 악사의 기타를 눈여겨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기타를 얼마나 두들겨 댔으면 울림판이 닳고 닳아서 그렇게 구멍이 났을까?

악사를 위해 정성을 쏟던 행상은, 그러나, 마지막 문턱에서는 단호하다. 만난 지 하루만에 "자고 가라"는 악사에게 화를 냈던 행상은 녹음이 끝나갈 즈음 "런던에 같이 가자"는 악사의 제안도 거절한다.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악사에게 "불장난(hanky-panky)이나 하자구?"라며 가버린다. 악사가 떠나는 날도 행상은 거리로 일찍 출근(?)해 버려서 작별 인사도 없다.

결국 악사는 혼자서 녹음 시디를 가지고 애인과 성공이 기다리는 런던으로 간다. 그토록 정성을 쏟아 준 행상에게 악사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녹음한 시디 한 장과 행상의 집으로 배달시킨 피아노 한 대뿐이다.

나를 만족시켜 주세요

하지만 행상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 아닐까?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쏟으며 만족하는 것이었을 테니까. 악사의 '로맨틱한 노래'에 행상이 붙여준 가사에 그런 구절이 나온다(이 노래를 자기 핸드폰 효과음악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남들이 날 거짓말쟁이라 해도 당신은 날 믿나요?
당신은 내 전부이기에 잘하려고 진정 노력하는데
그대가 나를 외면하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요
나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면 원하는 대로 하겠어요.
나를 원하신다면 만족시켜 주세요.

악사가 떠난 거리에서 행상은 당분간 꽃이나 잡지를 팔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악사가 남기고 간 피아노를 치다 보면 "천천히 무너지네"를 함께 부르던 악사를 그리워할 것이다. 행상이 악사와 함께 런던에 갔으면 행복했을 것이다. 실의와 냉소에 빠진 악사를 일으켜 세운 행상은 그 행복을 함께 누릴 자격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행상은 왜 그 행복을 포기했을까?

냉정하게 악사를 보낸 행상은 고향에서 찾아온 남편을 반갑게 맞는다. 악사가 받았던 지극 정성이 이젠 남편에게 향할 것이 분명하다. 자기를 위해 지어준 노래를 웃어넘길 만큼 무심하고 무식한 남편이지만 머지않아 그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악사를 떠나보냈던 것도, 기실, 보통 노력으로는 사랑하기 어려운 남편을 정성껏 사랑하기 위한 준비 운동은 아니었을까?

지금 말해 주세요

행상은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을 알아보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필요와 부족을 알아내야 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채울 수 있어야 하며, 선을 그을 때는 냉정하게 그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영화중에 나오는 '지금 말해 주세요'라는 노래에 잘 표현돼 있다.

껍데기를 긁어내듯 사랑하려 애썼는데
오해만 쌓이고, 비밀은 의심만 낳네요.
어둡고 불안한 시간 속에서 나는 표지판을 찾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이 할 말이 있다면 내게 지금 말 해 주세요.

16만 달러로 제작된 <원스>는 선댄스를 비롯한 유수 영화제에 초청됐고, 오스카 음악상과 인디펜던스 스피릿 최우수 외화상 등을 받았고, 전 세계에서 2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원스>의 감동이 1년 내내 계속됐다"고 극찬한 바 있다. 베드신도 없고 액션도 없고, CG도 없이, 85분 동안 노래가 8곡이나 연주되는 <원스>가 갈채를 받은 이유가 뭘까?

제목 <원스(Once)>가 주는 메시지

그건 영화 제목 <원스(Once)>가 말해 주는 것 같다. 처음엔 "옛날, 옛날에(Once upon a time)"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존 카니 감독은 제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이런 저런 핑계(once I get this and that)로 활동을 미루다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영화 속의 악사가 딱 그 꼴이었다. 카니 감독은 행상의 정성으로 악사의 재능이 꽃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한 단어짜리 제목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핑계대지 말고 뛰어 들어라." 천사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만 천사가 날이면 날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전우익 선생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천사가 떨어지길 기다릴 수 없으니 아예 우리가 직접 천사가 되는 것이 좋겠다. 무언가에, 그리고 누군가에 정성을 쏟자. 그게, 삶이고 사랑이니까.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개인 블로그에도 실림.
평미레 뜻철학 원스 영화 핸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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