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제상민

제12회 '메이드인부산' 독립영화제 특별프로그램인 '독립장편초청작'으로 상영된 <지독하지 않은>은 눈여겨볼만한 작품이었다. 사실 고질적인 부산독립영화의 문제점 중 하나가 배우 부족이다. 최근 들어 부산지역 단편영화에도 서울 지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여건에서 <지독하지 않은>은 부산 출신 배우들과 스태프 그리고 감독이 연출한 진정한 의미의 '메이드인부산' 독립장편영화다. 특히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이제 24살의 여감독 이지혜라는 사실은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 경성대 영화과를 졸업하지 않은 이지혜 감독은 대학 3학년 때 과감하게 장편독립영화 연출을 계획했다. 총 예산 400만 원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결국 800만 원으로 마무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초저예산 장편독립영화. 그것도 아직 대학 졸업조차 하지 않은 여감독이 만든 독립장편영화라는 점에서 상당한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과연 다른 곳에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완성도를 갖추었는지 하는 점일 것이다.

 

솔직히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이었다. 단순히 조잡하게 만든 장편독립영화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영화로 보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다. 물론 <지독하지 않은>이 첫 작품인 만큼 눈에 보이는 아쉬운 부분 역시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리뷰 뒤에 계속 이어지는 감독과의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서와 건우를 통해 보는 사랑!

 

지독하지 않은 스틸컷

▲ 지독하지 않은 스틸컷 ⓒ 이지혜

<지독하지 않은>은 윤서(박주영)와 건우(이대호)의 이야기다. 윤서는 방금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혼자서 술을 들이 키고 손목을 그으려는 윤서를 건우가 구한다. 건우 역시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윤서에게 마음이 끌린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은 채 섹스를 나누고 동거 상태가 된다. 서로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두 사람이기에 항상 위태위태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감정은 계속해서 요동치고 끊임없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다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건우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소주를 거푸 마신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애인에게 찾아간 건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단 이야기를 한다. 자신과 오랫동안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이때부터 파국이 시작된다. 건우는 윤서와의 사랑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건우가 애인에게 헤어지겠다고 선포한 그 날 윤서는 집을 나선다.

 

그녀가 건우에게 바라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디 한 곳 마음 둘 곳 없었던 윤서에게 건우는 단지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었을까? 하지만 영화 오프닝은 건우를 떠난 윤서가 다시 찾아오는 장면이었다.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진실 된 것인지 혹은 계산된 것인지 영화에서 명확하게 풀어놓진 않지만 서로에게 마음이 끌린 것은 사실 같다.

 

<지독하지 않은>은 정돈되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다. 건우와 윤서의 마음이 명확하게 표현되지도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특히 건우가 왜 윤서에게 마음이 끌리는지 심리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모호함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다양한 시선으로 윤서와 건우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는 장치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관객에게 상당한 피곤함을 느끼게 하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이어진 감독과의 GV를 통해 물어보았다.

 

"찍고 싶단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지독하지 않은 감독 GV(좌 이지혜, 우 정진아 프로그래머)

▲ 지독하지 않은 감독 GV(좌 이지혜, 우 정진아 프로그래머) ⓒ 제상민

-[정진아 프로그래머]전국을 통틀어서도 졸업하기 전에 장편을 찍는 감독들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여자 감독은 거의 없는 편인데요. 어떻게 해서 장편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했는지요?

"찍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자면 이유는 단순한 것 같아요. 정말 찍고 싶었단 것이에요.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단편을 통해 많이 할 수 있겠지만, 한 번 조금 무모해보이더라도 장편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말이에요. 사랑이란 이야기가 조금 진부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을 감성적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정진아 프로그래머]제목이 <지독하지 않은>인데요. 제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원래 제목은 <화이트 아웃>이라고 해서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을 백야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한 마디로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사실 <화이트 아웃>이란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아서 편집 이후에 제목을 바꾸었어요.

 

편집 이후에 제목을 <지독하지 않은>이라고 했던 이유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상황일 수 있지만 영상으로 담담하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우리가 누구나 사랑이라는 것은 하고, 거기서 많이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일종의 사랑하면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제목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사랑을 지독하게 하지만 지나고 나면 지독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윤서 캐릭터 많이 어려웠어요"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제상민

-[정진아 프로그래머]여자 캐릭터 윤서가 쉽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캐릭터인 동시에 쉽게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배우분도 연기를 하면서 참 많이 어려워 한 캐릭터인데요. 저 같은 경우에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자 캐릭터를 잡았을 때 건우의 원래 여자 친구와 최대한 대칭점을 이루고 싶었어요. 사실 여성캐릭터와 남성캐릭터를 만들 때 보통 한국 신파멜로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남성은 시간을 뜻하고 여성은 공간을 뜻해요(보통 남자가 떠나고 여자는 장소에 남겨진다는 의미).

 

저는 사실 이걸 바꾸어 보고 싶었어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 하지만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대사들이 간접화법으로 많이 나와요. 솔직히 연애할 때 표 나게 이야기하지 않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돌려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전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것들을 윤서란 캐릭터를 통해 극대화 시켜본 것 같아요.

 

그리고 건우의 원래 여자 친구에게서는 순정이란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순정이란 것을 이야기를 할 때 건우가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눈감고 참아주는 것으로 극대화 시킨 것이죠. 그래서 나중에 건우가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더 아파보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진아 프로그래머]생각보다 신이 너무 많습니다. 첫 장편에 이렇게 많은 신을 넣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렵지 않았나요?

"한 10신정도 삭제를 했습니다. 사실 여기 오늘 스태프 분들이 많이 와 계신데요. 스태프 분들이 많이 힘들어 했어요. 왜 이렇게 공간이 많고 낮과 밤이 많은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특히 조명팀과 연출부 제작부 모두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물론 저도 고생을 많이 했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너무 적은 돈으로 찍다보니까 제작팀에서 밥을 해 와서 먹었는데요. 밥 해온 것을 놓아두고 계속 영화를 찍고보니 밥이 얼어버렸어요. 스태프들은 그래도 배가 고파서 그 밥을 다 먹었어요. 제 욕심 때문에 모두를 고생 시켰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건우 캐릭터 디테일하게 잡지 못한 것 아쉬워"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제상민

-[오마이뉴스 제상민]아쉬운 점이 있다면, 건우 캐릭터 심리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자 캐릭터의 디테일함을 많이 놓쳤다고 생각해요. 너무 평면적으로 캐릭터를 그려내지 않았나, 너무 답답하게 그려지지 않았나, 너무 이기적이고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단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 부분이 어떻게하면 관객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고민했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때 흔들리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남자캐릭터) 설정을 잡았을 때 상당히 깔끔하고 젠틀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요."

 

-[오마이뉴스 제상민] 영화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부분도 간혹 있더라고요.

"여건상 삭제를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영화의 처음, 문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문으로 끝을 맺었는데요. 반복해어 연애를 하고 또 다시 그 사랑이 지나가면 다른 사랑을 하고...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영화 내용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 반복적인 형태 속에서 권태로워지고 결국 이별할 수밖에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끊은 부분도 있고요."

 

-[정진아 프로그래머]배우들은 처음 연기를 하신 분인가요? 기존에 연기를 하시던 분인가요?

"단편은 한 두 편 했지만 장편 연기는 처음 하시는 분들이에요. 저희 학교에서 공부하시는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단편 한 편하고 장편 하셨어요. 사실 처음 장편 할 때 더 좋은 배우를 쓰고 싶고, 돈도 더 많이 투자하고 싶었죠. 그런 모든 것들을 준비해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 처음 시작할 때 그렇게까지 포부가 크지는 않았어요."

 

"스태프에게 독하단 소리 들었어요"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이지혜 감독 지독하지 않은 연출 ⓒ 제상민

-[정진아 프로그래머]사실 단편이나 초저예산 장편독립영화를 보면 배우들 연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경우도 많고 작품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나온 배우들은 감독님이 의도하시는 대로 연기를 잡아가는 것이 많이 보인 것 같습니다. 스태프나 배우들에게 독하단 소리도 듣지 않았는지요.

"스태프 막내에게도 독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봐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저 나름대로 이 영화에서 실험을 했어요. 저는 한국의 신파를 상당히 좋아해요. 신파적인 정서와 유럽의 우아한 스타일을 접목시켜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조금 후회되는 부분도 있어요.

 

차라리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한 개라도 확실히 하는 것이 좋았는데 두 개를 같이 가져 가다보니까 엇박자가 일어난 부분도 있었어요. 배우들이 대사를 왜 이렇게 해야 되는지 질문한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도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어서 계속 요구했죠.

 

연애는 원래 유치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사를 적었어요. 전 그게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연애하면서 한 번은 겪게 되는 것들말이죠. 예를 들어 '넌 나한테 그랬는데, 난 너한테 그러면 안 돼' 이런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어요. 베드신도 더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숨기고 가는 것이 감정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수정을 했죠."

 

-[관객질문]윤서가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그림은 무엇이며 모형 비행기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윤서란 캐릭터를 쫓아가고 있는데요. 영화는 윤서의 사랑이 점점 성숙해져 가는것을 보여줍니다. 그림은 윤서의 엄마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고요. 유아기적인 캐릭터가 점점 변해간다는 설정이에요. 모형 비행기는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뭔가를 함께 만든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잖아요. 그런 소중한 매개체가 바로 모형비행기에요."

 

-[오마이뉴스 제상민]생각보다 작품이 잘 나온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다음 작품 연출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다들 이야기를 하실 때 생각보다는 잘 나왔다고 많이 이야기해 주셨어요. 다음 작품은 졸업작품인데 단편을 찍고 있는 중이에요. 졸업작품 끝나고 기회가 된다면 독립장편영화 한두 편을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상업영화에 대해서도 욕심이 납니다. 즐겁고 재미있고 남들이 봐도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게 보여드리고 싶고, 친구들이 봐도 즐겁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정진아 프로그래머]일반관객들에게 최초로 극장에서 보여 진 상영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GV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감이 어떠신지요?

"사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제가 조금 더 당당하게 영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요. 장편 찍었다고 기대하신 분들도 있으시지만 그런 기대치가 없었던 분들 많았기에 어떻게 보여 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태프도 오늘 완성 본을 처음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 오늘 다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더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2010.11.27 12:53 ⓒ 2010 OhmyNews
지독하지 않은 메이드인부산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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