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변함없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하시며 말씀하시는 분이 계셔서 심기가 불편하다. 그 분 말에 따르면 안 해본 일이 없다. 설령 해봤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개인경험이 모든 것의 잣대인양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한 번 마음 먹으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것 또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그것이 개인사라면 지켜보기 안타까워도 말릴 수 없는 일이지만, 개인사가 아니라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에 말리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데 그분의 일하는 방식을 보고 배운 것인지 오늘 황당한 뉴스 하나를 접했다. '2018년도 겨울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강원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신청서를 내면서 현행법상 개발이 불가능한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스키 활강코스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는 <한겨레신문> 기사가 그것이다.

이런 행위가 현행법 기준으로 불법임에도 동계올림픽유치지원단 이민식 시설처장은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면 특별법을 만들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하고, 이 일대의 수목을 다른 곳으로 이식할 계획"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단다. (참고기사 한겨레신문 2월 1일자)

법치국가라는 것이 다시 한번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시며 말씀하시는 분의 표현을 나도 패러디해 "내가 가봐서 아는데…"라는 운을 띄워 한 마디 해야겠다.

희귀보호종 가득한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한계령풀 가리왕산에서 담은 봄꽃

▲ 한계령풀 가리왕산에서 담은 봄꽃 ⓒ 김민수


지난 2007년 4월, 내가 활동하고 있던 야생화관련 모임에서 '가리왕산'으로 야생화 출사 계획을 잡았다. 거기에 가면 희귀보호종인 '한계령풀'을 볼 수 있다고 하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오로지 '한계령풀' 하나를 만나려고 서울에서 그 먼 길을 달려갔던 것이다.

가리왕산은 개인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기 때문에 방문 한 달 전부터 여러 절차를 밟은 후에야 겨우 입산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가리왕산을 찾은 날, 그 곳에서 난생 처음 한계령풀을 만났다. 그날 나는 저렇게 예쁜 꽃을 피어나게 하는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행복한 줄 몰랐다. 이후 그곳에 다시 가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편으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니 내가 눈맞춤 하지 않아도 한계령풀은 잘 자라고 있겠거니 했다.

태백바람꽃 가리왕산에서 만난 봄꽃

▲ 태백바람꽃 가리왕산에서 만난 봄꽃 ⓒ 김민수


그날, 그곳에서 만난 것은 한계령풀꽃만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으로 금강제비꽃도 만났고 태백바람꽃이라는 생소한 꽃도 볼 수 있었다. 흰얼레지는 주변에 가득했고 움직일 때마다 밟히는 꽃이 있을까봐 걱정할 정도로 지천이 꽃밭이었다. 당시는 계절로 이른 봄, 아직 나무는 이파리를 본격적으로 내지 않았을 때였다. 이른 봄, 나무에 이파리가 돋아 햇볕을 가리기 전에 숲의 낮은 곳에 사는 봄꽃들은 피고 지는 것이다. 온전한 자연의 질서, 숲의 질서가 살아있는 곳이 가리왕산이었다.

금강제비꽃 가리왕산에서 담은 봄꽃

▲ 금강제비꽃 가리왕산에서 담은 봄꽃 ⓒ 김민수


야생화가 피어나는 봄에 야생화에 미친 사람들이 산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지만 그래도 그런 곳은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사랑하는 꽃들을 위해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흰얼레지 가리왕산에서 담은 봄꽃

▲ 흰얼레지 가리왕산에서 담은 봄꽃 ⓒ 김민수


식물들 다른 곳으로 이식하고 스키장 만든다고?

그런데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인 가리왕산 중봉에 스키 활강코스를 건설하겠다니 이런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과연 제 정신인가 싶다. 그것도 모자라, 이 일대의 수목을 다른 곳으로 이식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이가 과연 생태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수목을 이식시키는 것은 그 생물의 뿌리를 흔드는 일이기에 실패할 확률도 높을 뿐더러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이식을 한 뒤 본래 자연의 본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 건강한 본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만일, 스키 활강코스를 만들어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다고 하자. 그 다음 스키 활강코스 유지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의문이고, 만일 동계올림픽유치에 실패라도 한다면 참으로 소중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만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아닌가?

미래에는 유전자를 어떻게 지키고 이용하는가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국가경쟁력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불법도 불사해가며 개발하겠다는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미래 국가의 경쟁력을 좀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리왕산, '거기 내가 가봐서 아는데' 그곳에 있는 식물들은 이식시킬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자연경관과 산림유전자를 가진 산은 대한민국에 많지 않다. 그곳의 생태를 아는 많은 분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일 터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강원도민의 숙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스키 활강코스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나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반대하겠다.

가리왕산 평창동계올림픽 한계령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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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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