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6일은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있던 날이었다. 2승을 먼저 거둔 후에 한 경기를 내준 두산은 4차전에서 22승 투수 다니엘 리오스를 내세웠다. 리오스는 그 해 SK를 상대로 완봉승 두 번을 포함해 4승 평균자책점 0.23이라는 거짓말 같은 성적을 올렸던 '비룡킬러'였다. 두산으로서는 완벽히 시리즈의 승기를 잡기 위해 내세운 필승카드였다.

이에 맞서는 SK는 1차전 패전 투수였던 케니 레이번의 선발 등판이 유력했다. 하지만 '야신' 김성근 감독은 의외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신인 투수 김광현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6년 경력을 가진 통산 90승의 외국인 에이스와 입단 첫해 프로의 매운맛을 본 3승짜리 신인 투수의 맞대결. 누가 봐도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미스매치'였다.

고교시절 세계 무대를 평정했던 슈퍼루키가 자신감을 잃을 지도 모를 거라고 걱정했지만, '야신의 한 수'는 정확했다. 김광현은 7.1이닝 동안 1피안타 2볼넷 탈삼진 9개를 기록하는 눈부신 투구로 두산 타선을 압도했다.

그 해 한국시리즈 MVP는 2개의 홈런을 때려 낸 '캐넌' 김재현(은퇴)이었지만, 끌려 가던 한국시리즈의 분위기를 SK쪽으로 끌고 온 선수는 단연 김광현이었다. 그런 김광현에게 얼마 전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 왔다. 항상 건강하고 씩씩하게만 보였던 김광현의 뇌경색 병력이 공개된 것이다.

역대 7번 째 다승왕 2회에 빛나는 만 22세 '특급 좌완'

 김광현은 지난 3년 동안 류현진보다 많은 승수를 올린 유일한 투수다.

김광현은 지난 3년 동안 류현진보다 많은 승수를 올린 유일한 투수다. ⓒ SK 와이번스

호쾌한 투구폼에서 내리꽂는 시속 150km의 강속구와 마치 커브처럼 크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유명한 김광현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다.

중·고시절부터 투수가 많지 않은 팀 사정 때문에  모든 대회에서 거의 전 경기를 홀로 완투했고, 다승왕과 탈삼진왕을 휩쓸며 시즌 MVP에 올랐던 2008 시즌에도 162이닝을 소화했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짜릿한 승부 중 하나로 기억되는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김광현의 8이닝 2실점 역투가 없었다면 8회 말 이승엽의 극적인 투런 홈런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광현은 2009년에도 8월 2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김현수의 강습 타구가 손등을 강타해 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며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지만, 이미 138.1이닝을 던져 생애 첫 평균자책점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2010년 역시 김광현의 해였다. 김광현은 데뷔 후 가장 많은 193.2이닝을 던져 17승으로 생애 두 번째 다승왕을 차지했다. 박철순이나 최동원, 송진우 같은 '전설' 들도 해보지 못한, 프로야구 30년 역사에서 단 6명(김시진, 선동열, 이상훈, 정민태, 손민한, 리오스) 밖에 경험하지 못한 다승왕 2회의 위업을 김광현은 만 22세의 어린 나이에 이룬 것이다. 동시대에 류현진(한화 이글스)이라는 '괴물'이 있어 언제나 2인자 소리를 듣긴 하지만,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승수는 오히려 김광현(45승)이 류현진(43승)을 능가한다.

관리가 생명인 뇌경색,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길...

  마운드에서 해맑게 웃고 있을 때 김광현은 가장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

마운드에서 해맑게 웃고 있을 때 김광현은 가장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 ⓒ SK 와이번스

김광현은 만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불참도 뇌경색 때문이었다고 한다. 뇌경색이란 뇌졸중 증상 가운데 하나로 혈액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뇌혈관이 막혔다는 이야기다. 뇌혈관이 막혀 좁아지면 '뇌경색', 막힌 혈관이 터지면 '뇌출혈'이다.

뇌경색의 원인은 과도한 음주와 흡연, 과로,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이 있지만, 현역 선수, 그것도 훈련을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SK 소속의 김광현이 과하면 과했지 운동부족일 리는 없다. 어쨌든 20대 초반, 그것도 스포츠 선수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불운인 것은 분명하다.

김광현은 마운드 위에서 표정이 무척 밝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운드 위에서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은 오승환(삼성 라이온즈)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할 수 있다.

김광현의 표정은 그날의 투구내용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리오스와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2007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도,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로 구성된 강타선을 제압할 때도 김광현은 마운드 위에서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소년마냥 해맑게 웃고 있었다.

논어에 나오는 말 중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는 문구가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최강 SK 마운드에서 항상 밝은 표정으로 공을 던지던 김광현은 분명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던 청년이었다. 그리고 김광현은 그 긍정적인 성격과 자신감으로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올랐고, 수많은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다.

지금 SK 구단은 김광현의 병명을 누설한 병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김광현이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미 병원에서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김광현보다 먼저 비슷한 질병을 경험하고 있는, 그리고 김광현의 호쾌한 투구를 보며 많은 용기를 얻었던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뇌졸중은 꾸준한 관리가 생명이다. 부디 긍정의 힘으로 다시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그날까지, 김광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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