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민국, 10대들과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 다양한 문제들로 학생, 교사, 학부모들까지도 애를 태우고 있다. 해결이 시급한 과제로 거론되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왕따문제, 날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학교폭력 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어린 10대 학생들이 최근 연이어 자살하고 있다. 경쟁교육을 강화한 MB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09년부터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교통사고에서 자살로 바뀌었는데, 최근 급증하고 있는 10대 학생들의 자살률 또한 2009년에 지난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청소년 자살의 주요 이유로는 단연 학교폭력과 성적 스트레스 등이 거론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러한 입시 위주의 교육현실을 풍자한 듯한 영화가 있다. 바로 11년 전인 2001년에 부천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일본 영화 <배틀로얄>이다.

오직 최후의 1명 만이 살아남는 살인게임, 배틀로얄

 영화 <배틀로얄> 포스터

영화 <배틀로얄> 포스터 ⓒ 영성프로덕션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이다.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다소 극단적인 설정을 함으로써 현실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영화 속 사회는 실업률이 치솟는 등 전체적으로 침체되고, 교육제도 또한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제시하지 못한다. 이에 학교생활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 듣기를 거부하고, 이에 동참한 학생들의 수가 무려 80만에 육박한다.

추락한 교권은 학생들을 설득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한다. 이미 어른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극에 달한 학생들은 되려 자신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교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저항하기 시작하고, 이에 희생되어 순직한 교사가 1200명에 달하는 처참한 지경이다.

이에 정부는 'BR(Battle Royal)법'을 제정하여 학생들을 길들이기 시작한다. '말 잘 듣고, 경쟁력 있는 학생들을 기르기 위함'이라는 목적으로 시행되는 경쟁체제, <배틀로얄>이라는 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의 한 학급, 42명의 학생들은 외딴 곳에 떨어진 무인도에서 살인게임을 시작한다. 각자에게 하나씩 배낭이 지급되고, 그 안에는 일정량의 물과 음식을 비롯한 생필품과 무기가 들어있다. 총과 칼, 석궁이나 도끼같은 무기로 3일 간의 제한시간 동안 같은 학급의 친구들을 모조리 죽여서 살아남아야 한다.

단 1명 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되며, 3일이라는 기간 동안 마지막 생존자를 가려내지 못하면 전원 탈락으로 간주하여 모두 죽게 된다. 게임 시작시에 학생들의 목에 채워지는 목걸이(개목걸이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다)가 제한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여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선택권 없는 경쟁 강요...우리나라 교육현실과 뭐가 다른가

 영화 <배틀로얄>의 한 장면

영화 <배틀로얄>의 한 장면 ⓒ 영성프로덕션


처음에 학생들은 "말도 안되는 짓이다"라며 살인게임에 참가하기를 거부하지만, 무장한 군 부대가 동원된 강한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체념한 학생들은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적이 되어버린다.

"인생은 게임이다. 다들 필사적으로 싸워서 가치있는 어른이 되는거야!"

극중 '배틀로얄' 게임 진행 과정에서 담임을 맡은 그의 말은 선택권이 없는 학생들을 마치 조롱하는 듯 하다. 심지어 "열심히 친구들을 죽여서 살아남으라"고 학생들을 격려하는 장면에서는 소름끼칠 정도다.

게임 초반, 다수의 학생들은 살인게임 참가를 거부하고 극 중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비쳐지는 '자살'을 택한다. 친구들에게 총을 겨누고 경쟁에서 자신이 우위에 서는 잔인한 행위를 차마 할 수 없었던 그들은 현실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눈물을 흘리며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목을 매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최근 끊이질 않는 중고생 자살 뉴스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파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교육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6월 16일,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 촉구 및 직무유기 교과부장관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6월 16일,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 촉구 및 직무유기 교과부장관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 윤근혁


최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1일 평균 수면시간은 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명 학생들이 학교에서 밤 늦은 시간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해야하거나, 하교 후에도 학원이나 과외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그럼에도 학습을 위한 교육 방법은 여전히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국영수 위주'의 성적 중시 풍토는 21세기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내신성적을 위한 '고사',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 등의 시험결과 만을 우선시하는 입시경쟁은 최근에 더욱 과열되고 있다.

MB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제고사'가 그 예이다. 정부 출범 직후 공교육 강화를 목적으로 탄생한 전국연합 학업성취도평가가 매년 시행되고 있는데, 경쟁위주의 주입식 교육 만을 부추겼다는 평가와 함께 최근 전국적으로 '일제고사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영국과 일본, 프랑스 등 세계적으로도 일제고사는 폐지되고 있는 추세이다.

'문제만 잘 풀면 된다'는 식의 교육은 효율성 만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감성을 위한 미술이나 음악같은 예체능 과목은 점차 소외되었다.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것 역시도 성적을 위해서 마지못해 할 뿐, 교육과정에서 중시되지 못하고 밀려났으며, 심지어 역사 과목은 한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밀려나는 논란의 과정을 겪기도 했다.

한창 감성적으로 예민할 나이인 10대 청소년들이 이러한 교육방식으로 인하여 피폐해지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성적 스트레스가 심한 부담으로 다가오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교폭력 및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청소년들의 비율이 많았던 대구에서는 대구교육청 후원 하에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청소년 자살예방책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학교폭력과 왕따문제도 같은 이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과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이 강화되자 학생들은 정신적으로 공허해진 데다가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해졌다. 거기다 감성과 인성을 기르기 위한 과목의 비중은 줄어들었으니 죄의식과 감정은 자연히 메마르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의 탈선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임시방편에 불과해보인다.

한국판 배틀로얄, 이제는 끝내자...교육철학과 정책 변화 필요

"이제 어른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영화는, 마지막 대사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이 이토록 괴로워하는 현실이 오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진작 물어보았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2년, 효율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강압적인 정책들이 쏟아지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이제 어른들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가 되고 있는 일제고사의 폐기를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암기와 주입식의 교육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찾아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본질을 다시 떠올릴 때다. 공식을 외우는 능력, 문제의 답을 잘 찾는 능력이 아닌 진정 사람됨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와 시대를 단편적인 지식으로 잠시 머릿속에 집어넣는게 아니라, 직접 생각하게 해주고 가슴에 와닿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나서 다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한 나라의 미래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너 자신 만을 위해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교육이 변해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경쟁사회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1등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칠텐가. 대한민국은 사람 사는 곳이지, '동물의 왕국'이 아니지 않은가.

배틀로얄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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