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으로 지난해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이경규.

<남자의 자격>으로 201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이경규 ⓒ KBS


이경규가 흔들리고 있다. 위기의 근원은 단연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다. 이경규 부활의 1등 공신이었던 <남자의 자격>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된 모양새다. SBS <힐링캠프> <붕어빵>이 시청률 정체기에 접어든 것 역시 문제다. 백전노장 이경규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위기론에 휘청했던 '이경규 신화'

이경규는 예능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가 코미디언으로서, 예능 MC로서 방송가를 휘젓고 다닌 지 무려 30년째다. 주병진, 김병조, 심형래, 서세원, 남희석,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등 당대의 코미디언이 30년 세월 동안 수없이 세대교체를 반복하는 사이 이경규만은 오로지 이경규로 남아 대중의 곁에 머물렀다.

<일밤>의 좌장으로 MBC 주말 예능의 부흥을 이끌었던 그는 '개그맨 예능국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몰래카메라'를 시작으로 '양심냉장고' '건강보감' '대단한 도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메가 히트 프로그램이 이경규의 손을 거쳐 줄줄이 탄생했다. 6번의 MBC 연예대상 수상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은 그의 위엄을 증명해준다.

그랬던 그가 2007년을 기점으로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호동의 <1박 2일> 출범 이래 이경규가 이끌던 <일밤>의 아성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로 급변하는 예능 트렌드에서 이경규는 별다른 힘도 쓰지 못하고 주말 패권을 고스란히 강호동에게 반납했다. MBC 내부에서 '이경규 무용론' '이경규 퇴출론'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결국 이경규는 20년을 한결같이 함께 했던 <일밤>에서 일언반구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퇴출당했다. "오랜 시간 일한 직장에서 강제 퇴직 당한 느낌"이라던 이경규에게 <일밤>은 끝끝내 설욕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경규의 <일밤> 퇴출은 방송가에서 대단한 화젯거리가 됐다. 영원한 MBC맨임을 자처했던 이경규가 끝내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MBC에게 '토사구팽'당했다는 조롱부터, 이제 이경규 시대는 끝났다는 부정적 의견까지 속출했다.

<남자의 자격>으로 부활한 이경규 시대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2011 KBS연예대상에서 쇼오락MC부문 신인상(남자)을 받은 양준혁에게 이경규, 김국진, 윤형빈, 이윤석, 전현무 등 <남자의 자격>팀이 꽃다발을 전달하며 축하를 하고 있다. 축하를 받으며 한아름 안은 꽃다발에 양준혁의 얼굴이 묻혀있다.

지난 2011 KBS연예대상 당시 <남자의 자격> 팀 ⓒ 이정민


하지만 백전노장 이경규는 노회했다. 2008년 <놀러와>에 출연해 "다시 한 번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그는 KBS 2TV <해피선데이>에 둥지를 틀고 <남자의 자격>을 출범시키는 파격을 연출했다. MBC에서부터 절친한 관계를 맺어온 김국진, 이윤석을 필두로 김태원, 김성민, 이정진 등 새로운 파트너와 손을 맞잡은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가 숨겨 둔 필승카드이자 히든카드였다.

시청률 한 자릿수로 시작한 <남자의 자격>은 2009년 중후반부터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어나갔다. 경쟁작이었던 <패밀리가 떴다>에 더블 스코어차로 지던 시청률 차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급기야 <패밀리가 떴다>를 역전하면서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기염마저 토했다. 이경규의 절치부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 번 오른 기세는 끝없이 이어졌다. '합창단'이라는 메가히트 콘텐츠가 터지면서 급기야 시청률은 30%대를 왔다갔다하게 됐다. 전국적으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며 예능의 신기원을 마련한 '남자의 자격-합창단' 편은 이경규의 완벽한 부활을 선포하는 통쾌한 한 방이었다. 이경규 신화의 건재함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결국 그는 2010년 강력한 경쟁자였던 강호동, 유재석, 김병만을 물리치고 영예의 K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통산 7번째 연예대상 수상이자, 첫 KBS 연예대상 수상이었다. 이경규는 KBS 연예대상을 받으면서 "대상은 역시 운 좋은 놈한테 돌아가게 되어 있다"면서 너스레를 떨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2012년 이경규, 시험대에 올라서다

그런데 2012년, 이경규가 다시 시험대에 올라서고 있다. 가장 심각한 균열을 보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대상을 안긴 <남자의 자격>이다. 2011년 들어 시청률이 점점 떨어진 이 프로그램은 급기야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반납하며 표류 중이다.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하락세가 눈에 띄게 심각해지고, 별다른 타개책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성민 퇴출과 이정진 하차 이후 상승동력은 완전히 꺾였고 분위기 역시 침체됐다. 극약처방으로 제작진 및 멤버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결과는 여전히 시원치 않다. 인적 쇄신이라는 파격적 선택을 했지만 분위기 반전에는 실패한 것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지루하게 반복되는 합창단 미션은 <남자의 자격>의 올드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재미보다는 감동에 치중했던 '청춘 합창단' 미션은 주말 예능 격전지에서 다소 핀트가 어긋난 기획이었고, 최근의 '패밀리 합창단'은 예능과 감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제대로 된 결과물조차 내놓지 못했다. 합창단이란 킬러 콘텐츠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남자의 자격>이 자충수를 두고 스스로 나자빠진 셈이다.

<남자의 자격>의 하락세가 지속 되면서 <해피선데이>의 통합 시청률 역시 손해를 보고 있다. <1박 2일> 시즌 2가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남자의 자격>이 워낙 부진하다 보니 <해피선데이>는 동 시간대 2위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남자의 자격>의 좌장인 이경규의 책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경규로선 어떤 식으로든 반전을 모색할 때다.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2011 KBS연예대상에서 쇼오락MC부문 신인상(남자)을 받은 양준혁을 축하하고 자리로 돌아가던 이경규가 방청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2011 KBS연예대상 당시 이경규 ⓒ 이정민


<남자의 자격>이 휘청거리는 사이 이경규가 진행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도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때 월요일 밤 신흥강자로 떠올랐던 SBS <힐링캠프>는 최근 하락세에 접어들며 KBS 2TV <안녕하세요>에 밀리고 있고, SBS <붕어빵> 역시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tvN <화성인 바이러스>는 방송 때마다 논란이 되는 등 구설에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상태다.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모두 총체적 난국에 빠지면서 '이경규 위기론'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자칫 KBS가 MBC처럼 주말 예능 부진의 책임을 물어 이경규를 경질시키는 특단의 결정을 내릴 경우 이경규 신화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 이경규로선 어떤 식으로든 반전을 모색할 때다.

존폐 기로에 선 '이경규 30년 신화'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은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는 예전의 적극성이 사라지고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몸으로 움직이기보다 말로 때우는 일이 많아지고, 스스로 나서기보다 후배들을 내세우는 일이 잦아졌다. 이건 한 프로그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이경규가 이렇다 보니 김태원, 김국진, 이윤석 등 원년 멤버 역시 프로그램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차라리 새 멤버인 김준호와 주상욱의 활약이 더 돋보일 정도다. 지금의 이경규에게는 전체 멤버를 다독이며 분위기를 '붐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2011년 <승승장구>에 출연했던 이경규는 "다시 한 번 슬럼프에 빠진다면 극복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허나 불행히도 이경규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프로그램 전체에 혁신을 가하든, 아니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해 도전에 나서든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할 상황이 도래한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지금껏 이경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언제나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해 왔다. 과연 이번 위기를 맞아 그는 또 한 번 통쾌한 역전 홈런을 날리며 이경규 신화의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을까. 30년 동안 대한민국 예능계를 진두지휘했던 '이경규 신화'가 존폐의 기로에 아슬아슬하게 서게 됐다.

이경규 남자의 자격 힐링캠프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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