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오후 9시대 일일사극으로 <허준>를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1999년 제작된 <허준>의 리메이크작인 이 작품은 허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그리며, <선덕여왕>의 김근홍 PD가 연출을 <허준>의 최완규 작가가 극본을 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보다는 걱정과 아쉬움이 앞선다. <허준>를 리메이크하는 것이 김재철 사장이 그토록 주장하는 MBC표 혁신인가 싶어서다.

"혁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다못해 분식집도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 것처럼 MBC도 혁신을 해야 한다." MBC 창사 기념식에서 김재철 사장이 쏟아낸 말이다. MBC 뉴스가 8시대로 옮겨간 이유도, <일밤-승부의 신><엄마가 뭐길래><놀러와><최강연승 퀴즈쇼Q>가 줄줄이 폐지된 이유도 모두 김재철 사장이 주장하는 혁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최고시청률 63.7%를 기록했던 드라마 <허준>

2000년, 최고시청률 63.7%를 기록했던 드라마 <허준> ⓒ MBC


'허준' '대장금2' '마술쇼', MBC의 과거 회귀 전략

그러나 최근 MBC의 행보는 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특히 일일 사극으로 편성 예정인 <허준>의 제작은 전형적인 우려먹기 행태다. MBC가 뜬금없이 13년이나 지난 허준을 다시 만들겠다며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 시청률 63.7%를 기록했던 드라마 <허준>의 명성을 등에 업고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전략인 것이다.

MBC가 <허준>과 함께 <대장금> 속편 제작에도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9월 김재철 사장은 중국 호남위성방송사를 방문해 <대장금2>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저작권자인 김영현 작가 뿐 아니라 주연배우 이영애마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재철 사장은 <대장금2> 제작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2013년 방송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밤-승부의 신> 대신 편성 된 <일밤-매직콘서트> 역시 고루하기는 마찬가지다. 각 방송사가 명절마다 만드는 마술쇼를 아예 주말 프라임 시간대로 가져 온 까닭은 단순하다. 마술쇼 특유의 익숙한 형식으로 어려운 예능을 기피하는 장년층 시청자를 끌어 모으려는 것이다. 과거 MBC 예능이 자랑하던 도전과 실험정신은 시청률 지상주의 앞에 자취를 감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김재철 표 혁신의 실체는 명확해 진다. 미래 비전 제시나 프로그램의 질적 강화 대신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많은 수익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김재철 사장이 MBC에 강요하는 혁신이다. 13년 전 드라마를 리메이크해도 좋고, 10년 전 드라마의 속편을 만들어도 좋고, 식상한 마술쇼를 보여줘도 좋으니 무조건 시청률만 높이라는 것이다. "내년에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 매출도 1등, 영업이익도 1등, 시청률도 1등을 해야 한다"던 김재철 사장답다.

 김재철 MBC사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원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김재철 MBC사장 ⓒ 조재현


MBC 김재철 사장의 참 '이상한 혁신'

하지만 이런 과거 회귀 전략이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허준>이나 <대장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충격적일만큼 '새로웠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리메이크작 <허준>이나 <대장금> 속편은 태생적으로 전작의 그늘에 갇힐 수밖에 없다. 별반 새로울 것 없이 전작의 명성에만 의존한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열광하기는 힘들다. 이런 식의 안일한 접근 방식은 MBC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시청률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 공영방송 MBC에 걸맞은 자세다. 시청률이 하나의 중요한 잣대인 것은 맞지만, 모든 것을 재단하는 절대적 기준일 수는 없다. 13년 전 드라마를 리메이크하기보다는 지금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정직하고 옳은 접근이다. 시청률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사로서 갖춰야 할 품격과 품위기 때문이다.

과거 MBC는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송사였다. <사랑과 야망><사랑이 뭐길래><여명의 눈동자><허준><대장금>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매해 만들어지며 시장을 선도했고, <토토즐><일밤><느낌표><무한도전><황금어장> 등의 예능이 트렌드를 주도했다. 1966년 창사 이래 '드라마왕국 MBC' '예능천국 MBC' 라는 명예로운 별칭이 생겨난 이유다.

허나 지금의 MBC는 혁신이라는 가면을 쓴 시청률 지상주의에 난도질당하고 있다. 콘텐츠 강화, 인적 쇄신, 질적 수준 상승, 미래 비전 제시는 사라지고 과거 회귀, 무사안일주의, 성과제일주의, 시청률 놀음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공정 언론의 기치 대신 편향된 정치색만이 남았고 자유로운 소통과 의견교환 대신 서슬 퍼런 문책과 처분만이 존재한다.

과연 시청자들은 언제까지 이와 같은 김재철 사장표 혁신을 참고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혁신'을 강요받고 있는 MBC의 오늘날이 참 씁쓸하고 슬프다.

MBC 허준2 대장금2 김재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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