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서울 SK의 비상이 눈부시다. 서울 SK 나이츠는 9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2-20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4라운드 경기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71-70, 1점 차로 극적인 4쿼터 역전승을 일궈냈다.

이날 승리는 SK에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올시즌 파죽의 10연승을 내달린 SK는 25승 5패를 기록하며 2위 모비스(21승 9패)를 네 경기 차이로 밀어내고 완전한 독주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올시즌 강력한 우승 경쟁자인 모비스를 상대로 상대전적에서도 3승 1패로 우위를 점하여 정규리그 우승에 절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 떨쳐낸 SK

 구제불능 같았던 SK 나이츠, 이젠 우승후보다.

구제불능 같았던 SK 나이츠, 이젠 우승후보다. ⓒ SK나이츠

SK의 팀명은 '기사단'를 뜻하는 나이츠다. 하지만 팀에 창단 첫 우승과 황금기를 이끈 서장훈이 FA로 팀을 떠난 2002년 이후 SK의 '잃어버린 10년' 흑역사가 시작됐다. 이 기간 동안 SK가 6강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한 것은 고작 2007-2008시즌 한 차례에 불과했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과 명장급 감독을 보유하고도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는 초라한 성적으로 '농구판 LG 트윈스' '다크 나이츠'라는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

SK 구단은 2011년부터 국가대표 슈터 출신으로 SK에서 은퇴한 문경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선수에서 은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인 데다, 경험이 일천한 10개 구단 최연소의 초보 감독이었다. 그나마 정식 감독도 아닌 대행 딱지를 벗지 못한 상황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베테랑 감독들도 해결하지 못한 SK의 문제점을 극복하기에는 무게감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우려한대로 SK는 문경은 감독의 데뷔 첫 해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19승 35패(9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2년 차에 접어든 올시즌부터 문경은표 SK의 가능성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선수 파악을 끝낸 문경은 감독은 그동안 몸값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고액연봉자와 베테랑들을 과감하게 벤치로 밀어내고, 신인 선수들과 이적생을 중심으로 새롭게 팀을 개편했다.

SK 리빌딩의 중추가 된 것은 바로 김선형과 최부경. 2011년 신인 드래프트 2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은 중앙대 출신의 듀얼가드 김선형은 당돌한 배짱과 화려한 돌파를 앞세워 데뷔 첫 해 일약 팀의 주전이자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12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다시 1순위 지명권을 얻어 건국대 최부경을 지명하며 몸싸움과 궃은 일을 해줄 빅맨을 얻었다.

여기에 변기훈(2010년 4순위)과 김민수(2008년 2순위)까지 더하면 프로 시작부터 SK와 역사를 함께해온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팀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매년 부진한 성적으로 신인 드래프트마다 좋은 유망주들을 끌어모으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던 SK는 문경은 감독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리빌딩의 뼈대를 갖춘 셈이다.

문경은의 과감함, SK 살렸다

문경은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 개편과 함께 여러 가지 전술적 변화를 단행했다. 팀의 고질적인 약점인 3번 포지션에 FA로 박상오와 김동우를 영입하며 장신포워드 보강에 성공했다. 그간 애매한 포지션으로 애를 먹었던 김민수를 3.5번에 가까운 스윙맨으로 활용하며 장점인 공격력을 부각시켰다. 슈팅가드로 활약하던 김선형은 공격적인 포인트가드로 전환하는 과감한 실험을 시도했다. 외국인 선수 역시 KBL에서 검증된 애런 헤인즈를 영입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올해 SK의 전술적 색깔은 1가드-4포워드 시스템과 3-2 드롭존 수비로 요약할 수 있다. 정통 센터는 없지만 높이와 스피드를 두루 갖추고, 내외곽 플레이가 모두 가능한 4명의 포워드(김민수·박상오·최부경·헤인즈)를 동시에 기용하면서 포지션 변화와 미스매치를 통해 다양한 공격 루트를 파생시킬 수 있다. 수비에서는 장신임에도 기동력이 좋은 헤인즈나 박상오를 전방에 배치해 앞선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끊임없는 협력 수비로 골밑을 지원하는 변칙 수비를 도입했다. 지난해 최고 히트상품이었던 동부의 '변형 드롭존의 SK 버전'인 셈.

문경은 감독은 선수들의 개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포지션 분업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선수들은 각자 자신들의 주특기에 맞는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김선형을 포인트가드로 돌리면서 변기훈과 주희정의 활용폭도 넓어졌다. 김선형이 포인트가드로 활약할 때는 외곽슛과 허슬이 좋은 변기훈이 슈팅가드로 나서고, 김선형이 슈팅가드로 나서거나 체력안배상 벤치로 물러나면 노련한 주희정이 출격해 경기를 조율한다. 박상오·최부경은 SK 농구에 부족하던 궃은 일에 관한 팀플레이와 희생정신을 불어넣었다. 선수 가용폭이 넓어지면서 SK는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옵션을 지니게 됐고, 기복 없는 경기력이 가능해졌다.

문경은 감독은 마지막으로 그동안 팀내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잡지못하던 슈터 김효범과 크리스 알렉산더를 꼴찌 KCC에 내주고 1순위 외국인 선수 커트니 심스를 영입했다. 김효범은 슈팅력이 아깝지만 SK에서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알렉산더는 신장이 좋지만 기동력과 득점력이 너무 떨어져 활용도가 낮았다. 반면 심스는 206cm의 장신에 기동력도 준수하고 내외곽에서 모두 득점이 가능했다. 체력과 빅맨 수비에 한계가 있는 헤인즈의 부담을 덜어주고 높이와 벤치 득점력을 끌어올리는 화룡점정과도 같았다.

트레이드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은 성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SK는 트레이드 이후에도  최근 연승 행진을 '10'까지 늘린데 이어, 최근 17경기에서 무려 16승을 거두고 있다. 경기당 팀 최다득점 2위(77.1점), 최소실점 2위(67.8점) 득실마진 +9.3으로 리그 최고의 공수 균형을 자랑한다. 리바운드도 38.7개로 최다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팀 턴오버는 10.8개로 리그 최소다. 그야말로 리그에서 가장 균형잡힌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성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SK다.

야심 드러낸 SK, 이젠 당당한 '우승후보'

SK는 창단 3년 차인 1999-2000시즌 첫 챔피언전 우승을 달성했으나 정규리그 우승은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차지해보지 못했다. 정규리그 54경기 체제에서 SK가 거둔 최고 성적은 2001-2002시즌 32승 22패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SK의 페이스를 감안할 때 올 시즌 40승은 물론 지난해 동부(44승 10패)가 수립했던 정규리그 최다승 기록에도 도전해 볼 만하다. 같은 해 기록했던 팀 자체 정규리그 최다연승 기록(11연승) 타이에도 이제 불과 1승 차이로 근접했다. 모비스전 승리는 SK의 올시즌 돌풍이 잠깐의 우연이 아니라, SK가 어느덧 진정한 우승후보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나이츠의 흑기사가 된 문경은 감독은 사령탑 데뷔 2년 만에 구제 불능의 팀일 것 같았던 SK를 당당한 우승후보로 환골탈태시켰다. 본격적으로 우승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기사단의 비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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