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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가 화제 속에 17일 종영했다. 종편 최초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해냈다. 

높은 시청률에 고무 된 JTBC는 마지막 녹화를 마친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일본여행'이라는 선물까지 줬다. 과연 '시간 불문, 시대 불문, 세대 불문'을 자랑하는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작품답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는 속담처럼 김수현도 항상 높은 시청률의 드라마만 쓴 것은 아니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체면을 구긴 적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김수현 드라마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양상을 보였다.

90년대 김수현 드라마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양상을 보였다. ⓒ MBC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던 김수현의 1990년대

<사랑과 진실>(1984년) <사랑과 야망>(1987년) <모래성>(1989년)의 연속 히트로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 작가로 성장한 김수현에게 90년대는 예상 외로 '혹독한 계절' 이었다. 김수현이 쓰면 모두 히트한다는 방송가의 공식이 때때로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이다. 시청률 게임에서는 절대로 실패해 본 적이 없다는 김수현 신화에 첫 번째 상처를 낸 드라마는 바로 <배반의 장미>였다.

1990년 1월, 총 7개월 동안 방영 된 MBC 주말드라마 <배반의 장미> 는 남성훈·김자옥·정애리·강부자·정혜선 등 이른바 '김수현 사단'의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김수현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곽영범 PD가 연출을 맡아 시작부터 방송사의 기대가 상당했었다. <사랑과 진실><사랑과 야망>으로 이미 1980년대 MBC 주말드라마 전성시대를 이끈 김수현 드라마이기에 방송사와 시청자의 기대가 최고조에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배반의 장미>의 초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이미 고정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KBS <달빛가족>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꾸준히 지켜냈기 때문이다. 결국 <배반의 장미>는 <달빛가족>이 끝난 3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동시간대 1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썼다 하면 대박"이라는 김수현 신화에 미뤄본다면 다소 실망스런 결과였던 셈이다. 다행히 김수현은 <배반의 장미>를 끝내고 1991년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자신의 이름값을 다시 입증할 수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로 단번에 명예회복을 했지만 1990년대 그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MBC를 떠나 SBS에서 발표했던 드라마 <작별>이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수현의 단짝친구인 윤여정과 연기파 배우 한진희, 톱스타 손창민과 고현정이 출연했지만 시청률은 18%~20%대에 머물러 '김수현 드라마' 여섯 글자를 무색하게 했다. 당시 경쟁작은 차인표, 신애라 주연의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 였다.

<작별>은 한진희와 불륜 관계에 있던 임예진의 폭력 장면이 구설수에 올라 시청자들의 항의가 폭주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곤욕을 치룬 작품이기도 했다. 다행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불치병에 걸린 한진희와 아내 윤여정의 열연이 빛을 발하면서 잔잔한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이 드라마를 "문제적 작품이었던 동시에 SBS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작별>의 여주인공 윤여정 역시 "<작별>은 그이(김수현)의 생각대로 맘껏 울 수 있게 했던 슬프고 아름다운 드라마였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감동받았다' '정말 잘했다'는 시청자들의 찬사를 어떤 작품보다도 많이 들었던 드라마였다"(<김수현 드라마에 대하여> '그이와의 지난 28년 동안의 만남' 중)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김수현의 시청률 파워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해 진한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작별>의 만족스럽지 못한 시청률을 1995년 <목욕탕집 남자들>로 가뿐하게 만회한 김수현은 1997년 <사랑하니까>로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긴다. 이영애, 오현경, 김규리 등 신세대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지만 시청률도, 작품성도 그리 대단치 못했다. 1980년대 김수현 드라마가 언제나 시청률 면에서 '정답' 이었다면, 1990년대 김수현 드라마는 추락과 부활을 반복하는 이상 현상을 겪었던 것이다.

<사랑하니까>는 15~16%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조한 시청률로 방송 관계자들의 아쉬움을 샀다. 아버지 장용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세 딸의 인생살이를 그린 드라마였지만 나문희, 배종옥이 영혼으로 출연하는 등 당시 TV 드라마가 소화하기엔 생경한 장면들이 워낙 많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의 CG 기술로 영화 <사랑과 영혼> 같은 자연스러운 장면을 그려내는 것도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야말로 김수현의 작가 인생 45년을 통틀어 대중적으로도, 작품적으로도 가장 '별 볼일' 없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사랑하니까>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얼마나 싸늘했는지는 기사 몇 줄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세상사 관심은 연애와 결혼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끌어왔던 서울방송 <사랑하니까>(극본 김수현)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엠에프 조미료를 너무 쳐대는 바람에 느끼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장소로서도 어울리지 않는 골프 연습장에서 "경제 망친 친구들, 두들겨 패는 심정으로 두들기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드라마가 아무리 상투적으로 아이엠에프를 외쳐도 여전히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인기 드라마 'IMF 양념' 듬뿍', <한겨레> 1998년 1월 27일 기사 중)

<사랑하니까>의 뼈아픈 실패 덕분일까. 2년 뒤인 1999년, 김수현은 <청춘의 덫>을 내놓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만방에 과시한다. 자신의 1970년대 작품을 재해석해 리메이크 한 <청춘의 덫>은 5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심은하 신드롬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김수현의 2000년 작 <불꽃>은 예상 외의 고전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김수현의 2000년 작 <불꽃>은 예상 외의 고전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 SBS


김수현 드라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년 뒤 발표한 밀레니엄 작 <불꽃>의 성적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김수현-정을영 콤비가 손을 잡고 톱스타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은 이 작품은 처음부터 50%대 시청률을 자랑한 최지우-류시원 주연의 MBC <진실>에 가로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진실>이 종영한 뒤에도 안재욱 주연의 <나쁜 친구들>이 30~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바람에 시청률 16~20%에 맴도는데 그쳤다. <청춘의 덫>에 비한다면 형편없는 성적이었다.

<불꽃>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불꽃'을 피운 것은 <나쁜 친구들>이 종영하고 난 뒤의 일로 그 때는 벌써 스토리가 후반부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대진운이 유달리도 좋지 않았던 이 작품은 마지막 회에 최고 시청률 36.8%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허나 21세기를 시작하는 김수현의 첫 작품치고는 그리 훌륭한 수치는 분명 아니었다.

<불꽃> 이후, 삐거덕거리던 '김수현 신화'는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는다. <내사랑 누굴까>은 오랜만에 KBS 주말극을 동시간대 1위로 올려놨고, 김희애 주연의 <완전한 사랑>은 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부모님 전상서>는 작품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수작이었다. 여기에 명절 단막극인 <혼수><홍소장의 가을> 조차도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18년만에 리메이크 된 <사랑과 야망>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18년만에 리메이크 된 <사랑과 야망>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 SBS


허나 2006년, 잘 나가던 김수현에게 찬물을 끼 얻는 작품이 하나 탄생한다. 바로 <사랑과 야망>이다. 1987년 남성훈, 이덕화, 차화연, 김청 주연으로 방송되어 최고 시청률 75%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던 <사랑과 야망>의 리메이크 작인 이 작품은 오리지널 콤비인 김수현-곽영범 PD가 다시 뭉쳐 시작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사랑과 야망>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시큰둥' 했다. 1980년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어색한 세트, 이제는 낡아버린 드라마의 갈등 구조,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력을 시청자들이 용서할리 만무했다. <사랑과 야망>은 떠들썩한 홍보와 제작진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10%대 초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오랜 시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김수현 스스로 "불량품으로 만들어 놨다"며 한탄했던 2006년 <사랑과 야망>은 결국 50부작 작품을 80부작으로 연장하고 오리지널에 없던 이야기를 대거 첨가하고 나서야 시청률이 오르기 시작했다. 최고 시청률은 겨우 27.3%였다. 오리지널에 비한다면 작품성에서나 시청률 면에서나 처참할 정도의 실패를 기록한 것이다. <사랑과 야망>에 열광하기엔 시대도, 시청자도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랑과 야망>의 예상외의 실패로 타격을 입은 김수현은 2007년 <내 남자의 여자>, 2008년 <엄마가 뿔났다>, 2010년 <인생은 아름다워>를 연달아 내 놓으며 다시 안방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2011년 발표한 미니시리즈 <천일의 약속>은 기대 이하였다. 가까스로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켜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그리 뜨겁지 못했다. 일각에선 "한계에 부딪혔다"는 혹평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김수현이 오랜만에 내 놓은 멜로드라마였던 <천일의 약속>의 최고 시청률은 19.8%로 단 한 번도 시청률 20% 고지를 밟지 못하고 퇴장했다. 1994년 <작별> 이후, 18년 만에 김수현 드라마가 시청률 20%를 넘지 못한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한동안 방송가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충격적인 성적표였다. 김수현 드라마의 흥행력에 붙은 의문 부호는 1년 뒤, <무자식 상팔자>가 방송 되고나서야 겨우 떨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흥행보증수표' 김수현 역시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다. 남들에 비해 높은 기대치 덕분에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1990년대 들어서부터 그의 흥행 타율이 다소 낮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자식 상팔자>로 다시 한 번 건재함을 과시한 그는 과연 다음 작품에서도 여전한 흥행력을 과시할 수 있을까. 시청률이란 절대반지를 자랑하며 지난 45년간 '드라마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김수현이 내놓을 새로운 작품이 새삼 궁금해진다.

김수현 무자식 상팔자 사랑과 야망 불꽃 청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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