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를 마친 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자축하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월드컵 레전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축구대표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지난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를 마친 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자축하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월드컵 레전드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최강희호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임무를 완수하며 1년 6개월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2011년 겨울, 최종예선 진출도 불투명할 정도로 표류하던 태극호의 수장을 맡아 고군분투한 최강희 감독은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는 데 성공하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월드컵행 티켓은 따냈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낙제점이라고 할 만큼 최강희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했던 이란과의 최종전마저 졸전 끝에 무너지며 자력으로 월드컵행을 확정 짓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골득실을 따져야 했던 마무리도 아쉬웠다. 안방에서 축제 분위기로 치러져야 했을 본선 출정식은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 속에서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당장의 성과에도 웃을 수 없었던 현실은 단지 최강희호만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수년간 한국축구의 구조적인 딜레마가 누적돼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강희호의 1년 6개월은 과연 한국축구에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한 시한부 감독 체제

선제골에 아쉬워하는 최강희 감독 최강희 감독이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자 고개를 숙인채 아쉬워하고 있다.

▲ 선제골에 아쉬워하는 최강희 감독 최강희 감독이 지난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자 고개를 숙인채 아쉬워하고 있다. ⓒ 유성호


최강희 감독은 2011년 12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조광래 감독의 뒤를 이어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최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최종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만 지휘봉을 잡고 본선행 여부와 상관없이 소속팀 전북으로 복귀하겠다는 깜짝 선언으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축구사에 전례 없는 '시한부 감독' 체제의 등장이었다.

최 감독은 역대 대표팀 사령탑을 통틀어서도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다. 최 감독은 원래 대표팀 사령탑을 원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클럽팀에 더 어울리는 지도자'로 규정한 최 감독은 2011년 전북을 K리그 정상에 이끌며 지도자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을 무리하게 경질하고 대안이 없었던 축구협회 전 집행부는 최 감독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최 감독은 결국 한국축구의 위기극복이라는 임무를 받고 최종예선까지만 지휘봉을 잡는다는 '조건부 승낙'으로 대표팀에 입성했다.

시한부 감독 체제는 장단점이 갈린다. 일단 스스로 임기가 정해진 만큼은 감독이 외부의 압박이나 눈치를 볼 필요없이 팀 운영의 주도권을 잡고 소신껏 일할 수 있다. 본인이 원치 않게 떠안았던 대표팀 감독직이었던 만큼 시행착오를 겪어도 언론과 팬들은 비교적 관대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의 비전을 설계하기 어렵고, 선수단의 충성심과 동기 부여를 끌어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후반기로 갈수록 최강희호는 이와 같은 단점들이 두드러지는 모양새였다.

최강희호의 태생적인 한계는, 이미 출범 당시부터 안정적으로 자신만의 팀을 설계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대표팀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1년 반에 걸친 세대교체와 재정비를 위한 시간이 있었으나, 조광래호의 실패로 모든 과정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최강희호는 출범과 동시에 쿠웨이트와 3차 예선 최종전에서 최종예선 진출을 결정짓는 벼랑 끝 승부를 펼쳐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해야 했다.

최강희호는 선수 구성에 있어서도 초창기부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 대표팀은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또한 최강희호 초기에는 전력의 핵심인 유럽파 선수들의 경기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해 열리는 런던올림픽과 일부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연령대가 겹쳐 올림픽에 선수들을 양보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최 감독은 K리거·베테랑의 재발견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동국·이근호·정인환·이명주 등 한동안 대표팀과 멀어졌거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국내파' 선수들이 최강희호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최강희호는 쿠웨이트와의 3차 예선 최종전(2-0) 승리를 시작으로 카타르(4-1)·레바논(3-0)과의 최종예선 1·2차전에서 연이어 유럽파와 올림픽팀 멤버없이 국내파 위주로도 승승장구하며 정면 돌파에 성공했다. 월드컵 본선행 조기 확정에 대한 희망도 부풀었다.

선수단 장악 실패와 플랜 B 부재

 0-1패배에 아쉬워하는 축구대표팀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0대 1로 패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0-1 패배에 아쉬워하는 축구대표팀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하지만 지난해 9월 우즈베크(2-2)와의 최종예선 3차전을 기점으로 최강희호에 서서히 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최강희호는 월드컵 예선의 최대분수령이었던 우즈베크와 이란(0-1) 원정에서 1무 1패에 그치며 위기를 맞았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유럽파 선수들이 가세하며 팀 전력이 최고조에 올랐어야 할 시점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때부터 최강희호의 발목을 잡는 두 가지 불안요소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바로 유럽파와 국내파 간의 조화 문제와 세밀함이 사라진 '뻥축구' 논란이다.

최강희호가 전력 극대화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조직력 난조에 있었다. 최 감독은 1년 6개월간 최상의 선수조합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지만, 끝까지 확실한 베스트11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공격진에서는 초창기 이동국과 박주영의 공존 문제, 후반기에는 손흥민과 김신욱의 활용 방식에 정답을 찾지 못했다, 수비진에서는 곽태휘를 제외한 포백라인이 거의 매 경기 바뀌는 혼란을 거듭했다. 올림픽팀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였던 기성용·박주영·구자철·지동원 등 유럽파들은 정작 최강희호에서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최 감독은 매 경기 라인업을 새롭게 짜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잦은 선수교체는 조직력의 안정감에 독으로 작용했다. 조직력이 생명인 세트피스에서 최강희호는 유난히 많은 실점을 허용했고, 이란전처럼 수비진에서의 불필요한 패스 미스로 어이없이 골을 내주는 장면도 잦았다.

최강희호에서 가장 많은 A매치에 출전했던 이동국과 곽태휘 등 베테랑들은 꾸준한 경기력과 리더십을 선보이지 못했다. 짜임새 있는 팀플레이와 패싱 게임의 실종으로 후반기의 최강희호는 거의 매 경기를 김신욱의 머리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롱볼 축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뻥축구' 외에는 분위기를 전환할 플랜B 자체가 전무했다.

최종 예선의 최대 분수령이었던 2013년, 최강희호는 결국 실험만 거듭하다가 마무리됐다. 홈에서 열린 카타르(2-1)전에서 손흥민의 극적인 인저리타임 결승골로 위기를 탈출한 한국은 최종예선의 운명을 좌우할 마지막 3연전에서 또한 파격적인 모험을 시도했다. 부상과 경고 누적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중원의 핵이었던 기성용과 구자철을 가장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한꺼번에 제외한 것은 무리수였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곽태휘와 김남일·이청용의 부상까지 연이어 겹쳤다. 베테랑의 경험을 중시하는 최 감독은 중요한 고비에서 A매치 경험이 일천한 신예들을 미드필드·수비 라인에 대거 중용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레바논 원정(1-1) 무승부. 우즈베크(1-0)전 자책골 신승, 이란(0-1)과의 최종전 패배 등 세 경기 모두 좋은 경기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경기력을 떠나 대표팀의 결속력과 비전에 대한 지적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은 하나 된 팀워크에서 나왔지만 이번 대표팀에서는 그런 끈끈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다.

사실 이 문제는 유럽파들을 편애한다는 의혹을 받았던 조광래 감독 시절부터 제기됐던 문제지만, 최 감독 체제에서도 역시 이런 잡음이 계속됐다는 것은 결국 최 감독 역시 완전한 선수단 장악에는 실패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최 감독이 최종 3연전에서 기성용과 구자철을 제외한 것도 부상 외에 팀 기강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유럽파와 국내파 간의 파벌, 스타급 선수들 간의 갈등설이 연이어 거론된 것은 유럽이나 남미는 몰라도 한국 대표팀에서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끌어갈 수 없었던 시한부 감독 체제의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제2의 최강희 같은 희생양 만들지 말아야

최강희호 A매치 성적표
2012년
우즈베크(홈): 4대 2 승(평가전)
쿠웨이트(홈): 2대0 승 (월드컵 3차예선 최종전)
스페인(중립): 1대4 패 (평가전)
카타르(원정): 4대1 승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
레바논(홈): 3대0 승 (월드컵 최종예선 2차전)
잠비아(홈): 2대1 승 (평가전)
우즈베크(원정): 2대2 무(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
이란(원정): 0대 1 패(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
호주(홈) 1-2 패(평가전)

2013년
크로아티아(중립) 0-4 패 (평가전)
카타르(홈) 2-1 승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레바논(원정) 1-1 무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우즈베크(홈) 1-0 승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이란(홈) 0-1 패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년 6개월 동안 남긴 성적은 7승 2무 5패. 승률은 5할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홈에서는 6승 2패(월드컵 예선 5승 1패)로 강했으나, 원정에서는 1승 2무 3패(월드컵 예선 1승 2무 1패)에 그쳤다. 경기력의 편차가 컸다. 23골을 넣고 20골을 내줬다.

7승의 대부분이 모두 홈과 약체팀에게 거둔 승리였다는 점은 최강희호가 넘지 못한 가장 큰 한계다. 크로아티아(4-0)·스페인(4-1) 등 유럽 강호들과의 정면승부에서 완패했고, 아시아권에서도 호주(1-2)과 이란(0-1·2연패)을 넘지 못했다. 특히 이란에게 홈과 원정 두 번 모두 무득점 패배와 함께 안방에서 2863일 만의 월드컵 예선 패배를 당한 것은 최강희호에게 가장 뼈아픈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 감독은 사실 불운한 감독이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대표팀 감독이라는 옷을 입고 매  경기 성적을 내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팀을 만들어갈 시간도 부족했고, 선수 구성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1년 6개월간 최강희호가 월드컵 예선전을 제외하고 치른 평가전은 다섯 경기에 불과했다. 나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대표팀을 운영하려고 던 최 감독의 의지는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 속에 오히려 여론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아쉬움과 논란을 남기고 최강희호의 항해는 이제 닻을 내렸다. 비록 최 감독 본인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이었을지 몰라도, 그의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완수해낸 월드컵 8회 연속 본선진출의 성과는 어쨌든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최 감독이 이루지 못한 미완의 숙제들과 대표팀의 선진화는 이제 후임 감독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최 감독의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한국축구와 팬들이 해야 할 일은, 다시는 최 감독같은 불행한 희생양이 또다시 나오지 않도록 한국축구의 장기적인 틀을 혁신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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