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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폭력 조직의 왕회장(송영창 분)이 지욱(차승원 분)을 만났던 '썰'을 풀고있는 것이다. 한증막에서 만난 지욱은 말근육에 눈에 띄는 외모를 지녔고, 자신을 보고도 위축되지 않는 배짱을 가졌었다고. 그런 지욱에게 자신은 흠씬 두들겨 맞았었다고 왕회장은 이야기한다. 이 얘기는 일종의 복선이다. 얘기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않아 왕회장은 또한번 지욱에게 흠씬 두들겨맞게 되니까.

<하이힐>을 감독한 장진 감독에겐 팬덤이 존재한다. 장편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1998)부터 보여준 색다른 영화들에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장진식 유머와 틀에 박히지 않는 이야기와 캐릭터 설정과 이른바 '장진 사단'으로 불리운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진 그의 영화들은 이제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하이힐>도 그런 장진 스타일에 기초를 둔 느와르 영화다. 하지만, 장진 감독도 예전보다는 자신감이 부족해진 모습이다.

 <하이힐>의 주인공 '지욱' 역을 맡은 차승원.

<하이힐>의 주인공 '지욱' 역을 맡은 차승원. ⓒ 장차앤코


전보다 재기발랄함이 줄고, 클리셰적인게 늘어난 느낌

영화 초반까진 괜찮았다. 지욱이 장미(이솜 분)의 도움을 받아 왕회장이 놀던 룸을 급습해서, 수많은 조폭 부하들을 총없이 제압하는 액션 신. 합이 딱딱 맞고 촬영과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한데다 차승원의 명품 연기력이 발휘돼 근래 보기드문 쾌감을 주었다. 이어서 검거를 위해 왕회장의 얼굴을 구타하는 신도 코믹한 편집으로 처리돼 '그래, 이런게 장진식 유머지'하는 생각으로 흐뭇해졌었다. 오랜만에 마음껏 웃을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욱이 상대하는 폭력조직과 검사는 기존에 있었던 한국 누아르에서, 지욱의 여성성을 전달하기 위해 등장하는 어린 지욱의 장면들은 역시 한국의 저예산 영화나 독립 영화들에서 이미 봐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오는 거리에서의 격투신은 중국이나 홍콩의 무협영화가 떠올랐다. 

왕회장의 똘마니 허곤(오정세 분) 무리들과 지욱의 경찰 선후배들은 장진 영화 특유의 코믹한 캐릭터들 같았지만, 이들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뻔하게 변화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면밀히 관찰해보니 장진 특유의 스타일과 진부한 한국 영화 스타일 둘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는 것이 맞나 확신이 다 안선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와 연출이 확신이 안 서있어서 영향을 받은듯 보였다.

 <하이힐>에서 감동적인 내면 연기를 보여준 차승원.

<하이힐>에서 감동적인 내면 연기를 보여준 차승원. ⓒ 장차앤코


장진 감독의 장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여자가 되고싶어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이런 느와르와 퀴어 무비적 틀에 담아, 결국 '산다는 게 뭔지' 얘기하는 영화를 이 정도 재미로 만든건 훌륭한 일이다. 장진 감독의 장점도 군데군데 자리하고있다.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서도 사람이 주는 감동을 닭살스럽지않게 전해주는 힘, 그런 힘이 지욱과 장미 등 지욱의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보였다. 장진 감독이 완전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아니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달라진 것은 필자의 영화보는 시각일지도 모른다. 피가 터지고 칼부림이 일어나는 장면들에서 사망하는 이들이 뜬금없거나 지루하게 여겨지고, 여자가 되고싶어하는 이들의 이야기나 여장을 한 차승원의 모습이 이해는 되면서도 웃기지도 와닿지도 않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필자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닌척해도 너무 기대를 했었을지도.

하지만 필자가 볼때 뭔가 각 인물들과 영화의 소재와 주제, 그리고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는게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인한 장면들이 잔인하다기보다는 어색한 느낌. 지욱의 삶을 깊이 바라보게 하는데에 누아르적인 부분들이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 기분. 그런게 떠오르면서 '왜 장진 감독까지 이런 잔인한 영화를 만들어야하지?'하는 의문에 이르기도 했다. 퀴어 무비로서의 논란이나 재미의 유무를 떠나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영화 속에서 지욱과 장미 사이에 대한 스토리 설정은 다소 슬프지만 좋았다. 뻔한 연인 사이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공감가는 두 캐릭터의 '캐미'였다. 차승원의 내면 연기와 액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오정세와 이솜도 최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감성적인 배경음악도 듣기 불편하지않고, 독특한 소재를 다루기위해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서 확실히 느껴졌다.

그렇다. 장진식 유머 빠졌다고, 전과 다르다고 서운할 필요는 없다. 때론 장진 감독도 이런 영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장진 감독이 어떤 한국 영화 스타일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는것 같이 보였지만, 그조차 필자의 장진 스타일에 대한 강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에게 <하이힐>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다른 이에게 보여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자신이 하고싶은것뿐 아니라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을 위해 때론 희생하고 관객들과 소통해야한다. 아니면 아예 강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대로 밀고 나가든가. 필자가 볼때 <하이힐>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감성 느와르라지만 감성이 약했고, 느와아르는 억지스러웠다.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 보게한건, 차승원의 힘이었다. 차승원은 정말 멋졌다. 여장한 모습까지도.

덧붙이는 글 영화 <하이힐> 상영시간 125분. 6월 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하이힐 차승원 장진 오정세 이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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