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지난 18일 중동 2연전을 끝으로 2014년 A매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지난 9월 한국 축구의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후 4차례 평가전을 치러 2승 2패를 기록했다. 화려한 성적은 아니지만 부임 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브라질월드컵 쇼크'로 침체된 대표팀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 성공했다. 또, 다양한 선수 점검과 전술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다음 시험무대는 내년 1월 열리는 호주 아시안컵이다. 한국은 55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 성적으로 벌써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한 대표팀의 본격적인 재정비를 위한 '중간평가'다.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는 무대다.

불호령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불호령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정관념 없는 '제로베이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원점에서 무한 경쟁을 할 것을 선언했다. 외국인 감독답게 기존 대표팀의 전술이나 선수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였다.

대표팀은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4경기에서 평가전마다 큰 폭의 변화를 단행했다. 이전 대표팀에서 핵심으로 꼽히던 유럽파 선수들에게 무조건 주전을 보장하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부동의 주전으로 꼽히던 기성용(스완지)과 이청용(볼튼), 손흥민(레버쿠젠)도 선발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받던 국내파와 중동파 선수들이 슈틸리케호에서 새롭게 조명됐다. 이동국-차두리 등 베테랑들이 대표팀에 귀환했고, 남태희(레퀴야), 김진현(세레소), 조영철(카타르), 김민우(사간 도스), 한교원(전북)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비주전급으로 분류되던 선수들이 재평가 받는 계기가 마련됐다.

전술적 유연성을 강조한 것도 슈틸리케 감독의 특징이다. 대표팀은 그간 다소 경직되고 단순해진 4-2-3-1 전술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역삼각형 미드필드진을 배치하는 4-1-4-1을 구사하는 등 변화의 폭이 넓어졌다. 타깃맨을 배치하는 원톱 전술과 2선 공격수를 활용한 제로톱 전술을 병행했다. 조영철의 원톱 기용과 기성용의 전진배치 등 과감한 '포지션 파괴'도 두드러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피드와 체력을 앞세운 빠른 공수전환과 측면 공략이라는 색깔을 부활 시켰다. 이는 한국 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으로 꼽혔었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이 평가전에서 기록한 4골은 모두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에서 나왔다. '한국축구의 보물' 손흥민은 슈틸리케호에서도 부동의 왼쪽측면 공격수로 활약하며 사실상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이청용의 부활과 공격형 미드필더 남태희의 재발견은 대표팀의 최대강점인 2선 공격진의 무게를 한층 더했다.

또한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외적으로도 사려 깊고 신중한 언행으로 선수단과 팬들의 신뢰를 받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전의 대표팀 감독들이 보였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자세와 유연한 소통을 강조하며 눈길을 끌었다.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하여 K리그와 아마추어 경기까지 일일이 챙기는가 하면, 선수선발에서는 '소속팀 활약'과 '선수를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불필요한 잡음을 사전에 차단했다.

대표팀의 뜨거운 감자였던 박주영(알 샤밥)의 재발탁, 기성용의 주장 선임 등 다소 파격적인 결정에도 슈틸리케 감독의 신중하면서도 분명한 일처리를 바탕으로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최선 다하는 한교원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한교원이 볼을 빼앗으려 다리를 쭉 뻗고 있다.

▲ 최선 다하는 한교원 지난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한교원이 볼을 빼앗으려 다리를 쭉 뻗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안컵 대비한 희망과 과제

슈틸리케 감독은 4번의 평가전을 통하여 아시안컵을 대비한 선수단의 윤곽을 어느 정도 잡아놓았다는 평가다. 현역 시절 명수비수 출신답게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일단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는 데 주력했다. 슈틸리케호에서 매 경기 가장 변화가 심했던 포지션은 골키퍼와 포백 수비라인이었다. 그만큼 아직 베스트 멤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골키퍼를 두루 기용했다. 베테랑 정성룡(수원)과 아시안게임 우승 주역 김승규(울산)가 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넘버3로 꼽혔던 김진현(세레소)의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사실상의 정예멤버로 분류된 이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김진현에게 주전 장갑을 맡겼다.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는 1실점을 허용했지만, 김진현은 시종일관 뛰어난 선방으로 제몫을 다했다.

중앙수비 조합은 적극적이고 제공권이 좋은 곽태휘(알 힐랄), 위치선정과 수비조율이 뛰어난 장현수(광저우 부리) 조합이 중동 2연전을 통하여 다소 우위를 점한 모습이다. 1실점을 내준 조합이지만, 오히려 무실점을 기록했던 요르단전의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 조합보다 내용 면에서는 더 안정적이었다. 다만 곽태휘-장현수 조합이 스피드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부상으로 이번 중동 원정에는 빠졌지만 김주영(서울)이 아시안컵 복귀가 가능성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측면은 오른쪽 한 자리는 차두리(서울)가 입지를 굳힌 모습이다. 요르단전에서 한교원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안정된 수비와 몸싸움, 예리한 크로스,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 등에서 고루 좋은 점수를 얻었다. 반면 윤석영(QPR)과 김창수(가시와)의 경기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크로스의 정교함이나 2선 공격수들과의 시너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이란전 실점도 측면 수비가 무너진 데서 비롯됐다. 이미 멀티플레이어 박주호(마인츠)가 건재한데다 이번 중동원정에 합류하지 못한 김진수(호펜하임)나 이용(울산)이 대표팀에 복귀할 경우, 주전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전망이다.

미드필드진은 기존 유럽파 기성용-손흥민-이청용의 위상이 굳건하다. 기성용은 특유의 패싱과 경기조율능력에 리더십까지 더하며 슈틸리케호에서도 핵심 전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기성용의 파트너인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놓고 박주호와 한국영(가시와)이 경합하는 모양새다. 손흥민과 이청용도 각각 좌우측면의 주전 자리를 굳혔다. 다만 구자철이 중동원정에서 극도로 부진한 모습으로 불안감을 남기며 남태희, 이명주 등 대체선수들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대 고민거리는 역시 최전방 공격진이다. 타깃맨 자원으로 분류되던 이동국(전북)과 김신욱(울산)이 부상으로 아시안컵까지 복귀가 불투명한 가운데, 이번 중동 2연전에서 대안으로 거론됐던 중동파 이근호(엘 자이시)와 박주영은 모두 실망스러운 모습에 그쳤다. 올해 A매치 일정이 모두 끝났고, K리그 일정도 종료된 상황이라 아시안컵까지 젊은 공격수들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다. 그나마 경험이 있는 박주영-이근호를 한 번 더 믿고 가거나, 제로톱이나 포지션 파괴 등 변칙적인 전술을 시도해야하는 상황이다.

평가전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은 본격적인 아시안컵 체제로 전환된다. 대표팀은 오는 12월 9일까지 AFC에 50명의 예비명단을 제출하고, 이후 30일까지 23명의 최종 명단을 확정해야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컵까지 남은 기간 어떤 전술적 대안과 깜짝 카드를 꺼내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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