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한 골만'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알제리전 거리응원을 나온 한 시민이 손을 모은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한 골만' 지난 6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알제리전 거리응원을 나온 한 시민이 손을 모은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이희훈


다가오는 2015년을 앞두고 한국 축구는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꿈꾸던 한국 축구는 1무 2패로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나온 최악의 성적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한·일 월드컵 4강,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축구였다. 암흑기였던 20세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줄 정도의 충격이었다.

브라질월드컵은 그간 양적 성장과 결과 지상주의에만 치우쳐 '절차와 과정'을 무시해왔던 한국축구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와도 일치하는 어두운 자화상이기도 했다. 남아공월드컵의 성공을 이끈 허정무 감독 이후 지난 4년간 3명의 국내파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원칙 없이 잦은 감독 교체... 대표팀을 망치다

조광래-최강희는 K리그를 통해 검증받은 최고의 명장이었고, 홍명보는 런던 올림픽을 통해 지도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과적으로 A대표팀에서는 모두 실패했다.

세 감독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집단에만 의존하는 축구를 추진했다. 조광래 감독은 '유럽파', 최강희 감독은 '국내파', 홍명보 감독은 '런던 올림픽 세대'로 대표된다. 이는 결국 대표팀 전체를 장악하고 전력을 극대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K리그나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A대표팀에서 겪는 경험과 수준의 차이는 다르다는 것도 확인했다.

또한 이들의 실패는 단지 감독 개인의 능력 문제만이 아니다. 충분한 검증과정과 장기적인 비전 없이 그때그때 감독을 바꾸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축구협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원칙의 원칙'은 지난 브라질 월드컵의 4년 과정을 관통하는 한국 축구행정의 키워드였다. 허정무-조광래-최강희-홍명보에 이르기까지 국적을 제외하면 이들은 각자 추구하는 축구스타일도 지도철학도 상이한 지도자들이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아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성적부진으로 자주 교체됐다.

대표팀은 자연히 선수구성이나 조직력을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팀이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연속성은 사라지고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감독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감독을 영입하는 절차도 하나같이 깔끔하지 못했다. 2007년 마지막 외국인 감독이던 베어벡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후임 감독 영입에 실패한 축구협회는 당시 3순위였던 허정무 감독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조광래 감독이 3차 예선에서 부진하자 기술위원회도 열지 않은 밀실행정으로 경질됐다.

그리고 축구협회는 대표팀 사령탑을 원하지 않았던 최강희 전북 감독을 K리그에 빼와서 강제로 지휘봉을 넘겼다. 최강희 감독이 최종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이끄는 초유의 시한부 감독이 됐다. 본선에서 지휘봉을 넘겨받은 홍명보 감독은 아예 성인팀을 맡은 경력이 전무한 인물이었다.

축구협회는 위기 때마다 '시간이 촉박하다, 한국축구를 잘 아는 감독이 필요하다'라는 논리로 모든 비판 뒤에 숨었다. 이는 결국 한국축구와 대표팀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축구협회의 면피용 선택에 가까웠다.

지휘봉 잡은 슈틸리케... 이번에는 다를까?

불호령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불호령 지난 11월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브라질 월드컵에서 세계와 벌어진 격차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한국축구는 쇄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공신이었던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복귀했고, 제2의 히딩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7년 만의 외국인 감독이 부활했다.

당초 1순위였던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과의 협상은 계약조건의 이견차로 성사되지 못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쫓길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기술위원회는 인내심을 가지고 새로운 인물을 물색했다. 결국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60) 감독을 선임하는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한국에는 생소한 인물인데다가 지도자로서 그리 인상적인 업적을 남기지 못해 의문부호가 붙은 게 사실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1970~1980년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지도자로서는 독일 축구대표팀 수석코치에 유소년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당초 기술위원회가 내걸었던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서의 성공경험은 없었다. 자격조건을 완화하는 대신 한국축구의 전 연령대를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안목과 장기적인 비전이 있으리라 기대를 걸었다.

축구협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보장하며 확실한 신뢰를 보여줬다.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A매치 때만 주로 한국에 머물던 이전 외국인 지도자들과 달랐다. K리그뿐만 아니라 유소년-대학 리그까지 가리지 않고 선수들을 물색하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줬다.

그는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제로 베이스' 경쟁을 선언했다. 기존의 유럽파와 주전들 외에도 소외받던 무명이나 노장 선수들을 적극 중용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지난 10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통해 한국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을 치른 슈틸리케 감독은 4차례 평가전을 치러  2승 2패, 4득점 4실점을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내년 1월에 열리는 호주 아시안컵을 통하여 메이저 대회 데뷔전을 치른다. 한국축구가 지난 55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아시안컵은 한국축구가 슬로건으로 내건 '변화할 시간'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다. 실패와 성공이 반복되면서도 축구는 계속된다. 이제는 대표팀이 '자랑스러운 국민들의 팀'으로 되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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