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첫 메이저 대회인 아시안컵이 드디어 막을 올린다. 오는 10일, 오만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시작으로 호주 아시안컵이 한 달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한국축구는 무려 55년 만에 정상에 도전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아시안컵이라는 큰 무대를 맞이하게 됐다. 실질적으로 첫 지휘봉을 잡은 경기는 10월이었고 아시안컵 전까지 불과 다섯 차례의 평가전(3승 2패)밖에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팀을 만들 시간은 부족했다.

축구협회나 팬들 사이에서도 '우승하면 좋고, 못해도 이해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임기를 보장 받은 상황이다. 일단 아시안컵 성적에 대한 부담은 다소 덜하다.

하지만 기왕 아시안컵에 도전장을 던진 이상,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시안컵은 현실적으로 한국 A대표팀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컵을 노릴 수 있는 유일한 무대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자존심은 물론 차기 컨페드컵 출전권이라는 혜택도 주어진다.

무엇보다 이번 아시안컵은 의미가 크다. 앞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게 될 축구대표팀의 색깔과 방향을 확인해볼 수 있는 무대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꼽히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었지만 지도자로서의 이력은 그다지 화려하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한국축구도 아직은 서로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슈틸리케호의 행보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무조건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란 존재한다. 한국은 실업선발을 출전 시켰다가 예선 탈락했던 1992년 대회 이후, 최근 5번의 아시안컵 본선에서 모두 최소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3위를 차지한 것만 3차례였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에서도 최소 4강 정도가 슈틸리케호의 커트라인이 될 전망이다. 만에 하나 8강이나 조별리그 탈락 등의 실망스러운 성적이 나올 경우, 러시아 월드컵을 향한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이 초반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아시안컵 우승을 위하여 넘어야할 숙제들

불호령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불호령 지난 2014년 11월 14일 오후(한국시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슈틸리케호가 과연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하여 넘어야 할 숙제와 변수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역시 골 결정력이다. 대표팀은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이동국·김신욱·박주영 등 그동안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져오던 간판 공격수들이 대거 빠졌다. 조영철·이근호·이정협으로 구성된 슈틸리케호의 공격진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무게감 있는 정통 스트라이커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히 아시안컵에서는 2선 공격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슈틸리케호는 4-2-3-1 혹은 4-1-4-1 전형을 구사한다. 3~4인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자리를 바꾸면서 빈 공간을 침투하는 제로 톱 전술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손흥민·이청용·남태희·이명주·구자철·한교원 등으로 구성된 슈틸리케호의 2선 자원은 양과 질에서 모두 풍성하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골 결정력을 과시하고 있는 손흥민에 대한 기대가 높다. 주로 왼쪽 측면 공격수로 뛰었지만, 제로 톱 전술에서는 사실상 '프리 롤(Free Role)'에 가깝게 움직이며 직접 골 찬스를 노리는 임무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슈틸리케호에 아직 마수걸이 골을 신고하지 못한 손흥민의 득점포가 아시안컵 본선에서 얼마나 빨리 터지느냐가 관건이다.

두 번째 변수는 수비 조직력이다. 지난해 무실점 우승을 기록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증명되었듯, 토너먼트 대회를 우승하려면 수비가 강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뒤 5차례 경기에서 한 번도 같은 포백 라인을 세우지 않았다. 특히 중앙 수비수 조합은 매 경기 바뀌었다.

각 조합마다 장단점이 뚜렷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아직 확실한 베스트 라인업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평가전에서 계속된 수비 불안도, 개개인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손발을 맞춘 시간이 부족하여  호흡 불일치에서 나오는 실수가 잦았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던 좌우측면도 베테랑 차두리의 부상과 김진수의 부진,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풀백을 오가는 박주호의 최적 포지션 문제 등으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선수들 간 기량 차이가 크지 않다면 이제는 주전을 확정지어야 한다. 비교적 약체를 상대하는 조별리그 동안 조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으로 '리더'의 존재감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히 골을 많이 넣는 에이스나 경기운영을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 등과는 또 다르다. 팀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그라운드 위의 감독'으로서, 리더의 역할은 토너먼트에서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 축구가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을 당시를 생각해 보자. 위기 상황에서 박지성이나 이영표처럼 선수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노련한 리더의 부재가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을 주장, 이청용을 부주장에 선임했다. 두 선수는 아직 젊지만 대표팀 내에서는 경력이나 비중면에서 어느덧 고참이다. 차두리나 곽태휘같이 더 경험 많은 베테랑이 있음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두 선수를 선택했다. 대표팀 부동의 주전이라는 위상과 함께 4년 뒤 러시아 월드컵까지 장기적으로 감안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의 뼈아픈 시행착오를 자양분삼아 대표팀의 구심점다운 책임감과 근성이 두 선수에게 요구된다.

우승,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4일 오후 호주 시드니 파라마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대비 최종평가전 한국 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후반 이정협이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호주 시드니 파라마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대비 최종평가전 한국 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후반 이정협이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이저 대회 우승을 위해서는 좋은 전력과 사전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운도 따라야 한다. 한국이 비록 짧은 준비 기간과 공격수 부재라는 약점을 안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승을 기대해볼 만한 호재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경쟁국들의 난조를 꼽을 수 있다. 한국과 함께 이번 대회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호들도 최근 분위기가 썩 좋지 못하다. 한국의 영원한 숙적이자 아시안컵 최다우승국(4회) 일본은 하비에르 아기레(멕시코) 감독의 과거 승부조작 의혹으로 몇 달째 어수선하다. 오른쪽 주전 수비수 우치다 아츠토가 부상으로 아시안컵 출전이 불발됐다.

한때 중동의 강호로 꼽히던 사우디는 아시안컵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사령탑을 교체하는 우여곡절을 겪는가하면, 지난 한국과의 평가전에서도 0-2로 완패하며 불안감을 키웠다. 한국과 아시안컵 8강에서만 5회 연속 맞붙었던 천적 이란(C조)이나, 디펜딩 챔피언 일본(D조)은 이번 대회에서 조 편성이 갈라지며 최소한 준결승 이후에나 만날 수 있다.

홈팀이자 한국과 한 조에 속한 호주도 팀 케이힐 등 노장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2011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에 비하면 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홈팀 호주 정도를 제외하면 위협적인 팀이 보이지 않는다. 오만이 최근 4차례의 평가전에서 1무 3패에 그치며 슬럼프에 빠져있는 데다 쿠웨이트 역시 과거 중동의 복병으로 꼽히던 다크호스가 아니다.

결승전까지는 22일 동안 6경기를 치러야 한다. 빡빡한 일정이 변수이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한국은 체력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다. 기성용이나 이청용·손흥민처럼 아시안컵 직전까지 소속팀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온 해외파는 약체를 만나는 조별리그까지 어느 정도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2011년 아시안컵 당시 조광래 감독은 조별리그 최종전인 인도전에서 무리하게 베스트 라인업을 기용했다가 8강 이후부터 2경기 연속 연장전 승부를 치러야 했다. 당시 체력 고갈로 고전했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이 8강에서 오를 경우 '죽음의 조'로 꼽히는 B조 팀들을 만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중국·사우디·북한 등 어느 팀이 올라오더라도 전력상 앞서는 데다 전통적으로 한국이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였던 팀들이 많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준결승까지는 무난히 순항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축구에 정해진 운명은 없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국에게도 반드시 우승의 기회는 돌아올 것이다. 슈틸리케호가 반세기에 걸친 아시안컵 잔혹사와 지난 2014년 월드컵의 상처에 종지부를 찍는 힐링의 시간을 선물해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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