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 SBS 스페셜 > '우리 결혼했어요' 스틸컷

SBS < SBS 스페셜 > '우리 결혼했어요' 스틸컷 ⓒ SBS


스웨덴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책은 여러 출판사를 통해 세 편의 시리즈로 출간되었으며, 스웨덴과 미국 등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실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하다. 그가 쓴 책의 주인공처럼 스티그 라르손은 1995년 잡지 <엑스포>를 창간한 이래 일상의 파시즘과 인종 차별, 극우파, 그 외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개진해 왔다. 

그러던 그가 말년에 자신을 롤모델로 하여 <밀레니엄> 시리즈를 집필하던 중 돌연사로 세상을 달리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밀레니엄> 시리즈는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다 주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18살 때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에서 만나 평생 동반자이자 동지로 살아온 여성 에바 가브리엘손은 그 엄청난 부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이 법적인 부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부부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가장 아이러니한 사례다. 굳이 장황하게 스티그 라르손의 사례를 든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 존재조차도 아직 공개적으로 담론화하기 쉽지 않은 동성 결혼 합법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SBS < SBS 스페셜 > '우리 결혼했어요'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서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방영된 이후, 공식 홈페이지와 관련 기사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들로 가득 찼다. 마치 성서에 나온 소돔과 고모라를 다루기라도 한 것처럼 '사탄아 물러가라'는 식이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한 보수적 기독교인의 말처럼 한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보수적 신앙의 전통을 가진 국가라 한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상당수의 동성 커플이 존재하며, 이는 생물학적이며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다. 심지어 한 커플은 이렇게 증언한다. '성서의 해석은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열려있는 것'이라고.

동성 커플 법적 인정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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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 SBS 스페셜 > '우리 결혼했어요' 스틸컷 ⓒ SBS


'우리 결혼했어요'는 새삼스레 동성 커플의 존재를 운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미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동성 커플의 법적 인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좋으면 좋은 거지, 법적인 인정까지 필요한 것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에 등장한 한 30대 남성 커플은 양가 친지들을 모아놓고 부부가 되었음에도 한 사람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때, 또 다른 한 사람이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아플 때, 그리고 위기에 빠졌을 때 정작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상황. 바로 여기에서 동성 커플의 법적 인정 문제가 '인권 문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보수적 전통을 운운하는 한국의 사정을 피해 '우리 결혼했어요'의 카메라는 시선을 밖으로 돌린다. 일본의 유명 동성 커플 중 한 사람은 광고 모델을 할 정도로 유명인이었지만, 뜻밖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의 동반자는 일하는 형태까지 바꿔가며 상대방의 치료와 회복에 물심양면으로 애쓴다. 과연 이렇게 희생적인 커플에게 '동성애'나 '이성애'라는 판단의 척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

이들에게 지원자가 등장했으니 바로 이 커플이 집을 옮긴 도쿄 시부야구의 동성애 커플에 대한 인정 조례다. 비록 시부야구를 넘어서면 별 의미가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서 이들은 인정받은 부부로서 사회적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또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처럼 공개 결혼식을 올린 일본의 여성 커플은 자신들의 식을 여러 사람에게 알린 이유를 두고 동성애 결혼을 인정해줄 것을 사회적 담론화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들을 축하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두 명의 신부가 입장해 식을 올리고, 그들을 인정해 주는 곳에서 살림을 차릴 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오물을 들고 쫓아온 종교 단체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괜찮아요, 행복해요'라며 오히려 사람들을 진정시키던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공개 결혼식과 대비된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이미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곳에서 만난 40대 동성 커플의 하루는 갓 태어난 아이로 인해 충만하다. 이 아이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정자를 대리모에게 수정해 낳은 아이다. 정자를 수여하지 않은 나머지 한 사람은 혹시나 자신이 아이에 대한 정이 없을까 두려워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업조차 잠시 쉬고 있다고 말한다.

동성이냐 이성이냐가 아니라, 부부로서의 권리 누릴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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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따르게 되는 2세에 대한 희망, 과연 동성 부부에게도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 결혼했어요'는 법적인 부부로서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지역을 옮겨가며 세 번의 결혼식을 올린 동성 부부이자, 정신의학자의 연구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30여 년 동안 동성 부부 자녀의 성장과정을 추적한 연구는 자녀들이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동성이라는 사실에 때론 혼란을 느끼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일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결과를 얻는다. 문제가 있는 이성 부부보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동성 부부의 자녀가 훨씬 더 사회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연구는 증명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동성이냐 이성이냐가 아니라, 부모가 일관되게 사랑으로 가정을 꾸려가느냐라는 것'이 연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한 동성 부부의 이야기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8살이 된 아들은 과거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몇 번의 수술을 거쳤고, 앞으로도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두 아빠의 사랑으로 거듭난 그는 우려와 달리 올 A의 우등생이 되었다. 두 번째로 입양된 딸은 동성 커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자유로운 동네에서 이를 범사처럼 여기며 커나간다.

과연 이 두 아빠가 없었다면 이 오누이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커플은 법적으로 인정된 부부였기 때문에 이들을 입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호혜가 아니다. 그들을 사회적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다하게 하는 것이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역시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호된 통과 의례를 겪으며 결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아이가 첫 번째 사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지난 5월 룩셈부르크 수상이 자신의 동성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렸고,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는 국민 투표를 통해 62%의 압도적 지지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표본으로 여기는 미국에서도 38개 주가 동성 결혼을 사실상 합법화하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초기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던 '핵가족'의 의미는 붕괴되고 상실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결혼율과 출산율 하락이 가장 대표적인 증거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사회를 떠받칠 수 있는 대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이미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인 인정이다.

그들을 법적인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들을 이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게 하고, 그들을 통한 2세의 건강한 보육으로 사회를 뒷받침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허용이나 관용이 아니라, 가족이 붕괴되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바람직한 대안으로서의 접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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